지극히 사적인 나의 취향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8개월이 되어간다.
용기 1. 운동을 배울 마음을 내기
체력하나는 자신 있었건만, 이제 체력도 예전 같지가 않고 목, 어깨, 허리, 무릎, 발목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어 이제는 더 이상 운동을 미룰 수가 없었다. 이왕 운동을 시작할 거면 자세부터 제대로 배우라는 남편의 강력한 권고에 운동 센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떤 운동을 하면 좋을까? 헬스는 어쩐지 좀 부담스럽고, 수영장은 수강신청부터가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그러다가 현관에 붙은 광고지에서 발견한 재활 필라테스.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서 운동한 결심 했기에, 재활이라는 말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필라테스 딱 붙는 레깅스를 입고 멋진 몸매를 드러내며 하는 화려한 이미지가 있었던 지라 좀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필라테스는 조셉필라테스라는 사람이 창시한 재활을 목적으로 한 운동이라고 한다.
"재활도 하고, 운동도 하고 좋네 해보지 뭐."
용기 2. 필라테스 센터 등록하기
알고 보니 동네에서 나름 입소문이 난 곳이었고, 때마침 할인행사도 한다고 해서 그렇게 야심 차게 필라테스 학원을 찾아갔다. 한참 상담을 받다가 예상보다 비싼 비용에 멈칫하게 되었다. 물론 1개월 보단 3개월이, 그보단 1년을 한 번에 등록하면 할인율이 올라가긴 하지만 처음 필라테스를 접하는 입장에서 선뜻 등록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드디어 운동을 결심했건만 비용 때문에 운동을 망설인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뭐 어쩌겠나 싶던 때에 나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당장 등록하라며 고맙게도(?) 등을 떠밀어 주었다. 맨날 골골대며 다니는 병원비는 안 아깝냐며... 그렇게 딱 눈을 딱 감고 3개월 수강권을 결제했다.
용기 3. 운동복 고르기
요즘은 운동 센터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활동복으로 레깅스를 많이 입긴 하지만, 레깅스는 치마 안에만 입어본 나에게 운동복 고르기는 정말 큰 숙제였다. 재질도 다르고, 무슨 기능도 있고 어쩌고 저쩌고 종류도 색깔도 어찌나 많은지... 하의만 그러한가 상의도 여러 종류가 다양했다. 가격대도 어찌나 다양한지... 고민만 하다가 운동하러 가보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컬러는 가장 무난한 검정으로, 가격대는 저렴한 라인으로 골랐다. 근데 몇 개월 해보니 운동복은 템 빨긴 맞긴 한 것 같다. 자꾸 예쁜 컬러의 운동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ㅎㅎ
용기 4. 비교하지 않는 마음
유별난 몸치에,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처음 운동을 하러 갔더니 필라테스는 생각보다 만만한 운동이 아니었다. 세상에 내게 만만한 운동이 어디 있겠냐 마는... 선생님 한분에 4명이 함께 하는 수업이라 수준도 조금씩 차이가 났다. 첫 수업은 그렇게 동작의 반의 반도 따라 하지 못하고, 쭈뼛쭈뼛 옆사람을 따라 하다 끝났다. 첫 수업이 어땠냐는 강사님의 질문에
"글쎄요... 해봐야 알 것 같아요."
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3개월은 다녀야 하는데, 나 잘할 수 있을까?
처음이라 서툰 건 당연한 일인데, 어쩐지 착착 동작을 따라 하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것이다. 잘하려고 온 게 아닌데, 배우려고 온 건데...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 주문을 외운다.
'나는 필라테스를 잘하려고 온 게 아니다, 운동을 배워서 건강해 지려 온 것이다.'
용기 5. 거울 속의 나와 마주하기
운동을 하러 가면 룸에는 전면 거울이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거울을 보면 운동 자세를 스스로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보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울룩불룩 한 곳곳의 살들, 초췌하고 퀭한 피곤한 얼굴, 부스스한 머리. 이게 나라고?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닐 줄 알았는데. 거울은 정직해도 너무 정직하다.
그동안 나라는 사람을 얼마나 방치해 온 걸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위하는 일은 쉽지만 나라는 사람을 돌보는 일은 가장 뒤로 미루어두었다. 그런 내 삶의 방식들이 나라는 사람의 외형 곳곳에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는 일은 여전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다. 오늘은 다른 날 보다 표정이 좋아 보이네 잘하고 있어 기특해, 오늘은 쉼이 좀 필요한가 봐 잘 먹고 잘 쉬자 하고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꾸준히 다니던 센터를 이사로 그만두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마지막날 강사님께 그동안 감사했다고, 덕분에 재밌게 운동할 수 있었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활짝 웃으시며, 처음에 왔을 때 보다 표정도 많이 밝아지고, 자세도 힘도 좋아졌다고, 꼭 무슨 운동이든 ㅇㅇ 위해서 계속 운동하세요 ! 말이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다.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이말이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