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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잘 놀다 보면 스스로 놀이를 만든다-창조 놀이(1)

아이가 주인으로 자라고자 하는 맞춤형 놀이

by 빛숨 김광화

'어른이 아이한테 배운다'라고 할 때, 그 결과는 어른에게도 좋지만 아이에게는 더없이 좋다. 여러분은 자라면서 '지금 내가 자라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 느낀 적이 있는가? 그 기쁨, 그 뿌듯함... 막 외치고 싶고, 부모님에게 달려가 당장 알려주고 싶고... 세월이 흘러, 기억이 아련하다면 뒤로 이어지는 실제 이야기를 보면 생생히 떠오를 수도 있으리라.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심지어 나는 아이들 덕에 기억을 되찾는 건 물론 '창조 놀이'라는 개념까지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다.


놀이가 중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특히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동하는 AI 시대에, 놀이는 더 이상 가볍게 볼 주제가 아니다. 놀이 가운데서도 창조 놀이! 사실,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직접적인 동기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창조’란 어렵지 않다

잘 놀면 아이 스스로 새로운 놀이를 만들더라. 규칙을 넘어, 자기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다.

나는 '창의성'보다 ‘창조성’이란 말을 더 좋아한다. 사실 둘 다 추상적인 단어라 말 자체부터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성(性)'이란 꼬리를 떼고, ‘창조’란 말은 어떨까? '네이버' 사전을 보면 간단하다.


1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2 신(神)이 우주 만물을 처음으로 만듦.

3 새로운 성과나 업적, 가치를 이룩함.


이 가운데 1번만 보더라도 창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2번과 3번에 밀려, 잊고 있을 뿐이다. 사실 1번과 3번은 그 경계가 애매하다. 그 당시에는 하찮게 여겨지던 것이 세월이 흐른 뒤, 위대한 가치로 재평가되기도 하지 않나? 결국 창조란 부담 없이 ‘전에 없던 걸 내 손으로 해보는 것’에서 시작하면 되리. 놀이처럼 하면 더 좋으리. 시행착오조차 더 나은 창조로 가는 징검다리일 뿐.


자라는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창조 본성을 가진 존재다. 새로운 걸 참 좋아한다. 본인이 나날이, 순간마다 자라기에 전에 없던 새로움에 곧잘 눈을 뜬다. 그 결과물로 이따금 아이가 툭 던진 한마디가 어른 가슴을 울리거나, 머리를 번쩍 뜨이게 만든다면 이 또한 귀한 창조가 아니겠는가! 눈에 보이는 작품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깨달음도 큰 가치다. 앞으로 기술이나 문명이 더 발달할수록 무형의 가치 역시 더 돋보이는 세상이 되리라. AI나 로봇이 그동안 사람이 힘겨웠던 노동을 쉽게 대신할 것이며, 사람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때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이는 부모 창조물

사실 아이부터 바로 ‘창조물’이 아닌가. 아이는 부모가 함께 만들어낸 ‘전에 없던 존재’다. 그러니 아이가 자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같은 놀이를 반복하기보다 자기 방식으로 바꾸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며,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려 한다. 창조성은 아이가 배워야 할 그 무엇이기 전에, 이미 아이 안에 잠자는 본성에 가깝다고 할까. 어쩌면 그 창조성은 빨리 드러나기를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이를 볼 때 '창조자'로 본다. 사실 '창조자'라는 말이 좀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근데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어떤가? 요즘은 자신을 소개할 때 크리에이터라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요즘 아이들 꿈 가운데도 크리에이터가 적지 않다. 나는 크리에이터보다 창조자라는 말이 더 좋다. 더 설레고, 더 폭이 넓으니까. 집이나 학교 같은 공간도 그 나름 무대가 되지만 대자연이야말로 창조를 위한 무대가 아닌가.


실제 이야기: ‘밭갈이(?) 눈썰매’

자, 이제 실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내가 '창조 놀이'라는 주제를 처음으로 떠올리게 된 계기는 겨울 캠프 때다. 당시 초등 2학년 ‘갓남’이와 1학년 ‘웃꿀’이는 함께 눈썰매를 탔다. 사실 우리는 시설 잘 된 곳에 가서, 눈썰매는 물론 스키나 스노보드를 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른이 먼저 장비와 돈 그리고 시간을 책임져야 하는 놀이다. 사람이라도 많이 몰려들면 차례를 기다리는 건 하세월. 게다가 타기 전에는 미리 지켜야 하고 또 배워야 할 것도 많아, ‘지금 당장 여기’서 놀고 싶은 아이들한테는 거리가 멀 수밖에. 특히나 창조적인 놀이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에겐...


그런 점에서 우리 동네 앞산이 좋았다. 눈이 쌓이면 곧장 썰매장이 된다. 장비? 다이소에서 산 눈썰매 하나면 충분했다.


두 아이는 처음에는 지형을 익힐 겸, 낮은 곳에서 타더라. 점차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아이들은 한번 타고나서는 같은 방식으로 타는 법이 없다. (참고로 시설이 잘 된 썰매장에서는 규정된 방식 말고는 금지한다!)

“이번엔 조금 더 올라가 보자."

"그래, 좋아!”


그런 식으로 점점 출발 지점을 높이니, 썰매 속도도 덩달아 빨라진다. 완만한 경사에서 조금씩 타다가 이제 굴곡이 제법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처음에는 약 5m 남짓 내려가던 썰매가 이젠 20여 미터를 달린다. 게다가 굴곡진 곳에서는 비행에 가깝게 공중으로 살짝 솟았다가 떨어진다.


아이들이 바꾸는 건 위치와 속도만이 아니더라. 혼자서 타다가 둘이서 탄다. 둘이서도 처음에는 둘 다 앞을 보고 타다가 바꾼다. 한 사람은 앞을 보고, 또 한 사람은 뒤를 보고. 자신들이 상상했던 모습으로 타고나면 또 새로운 놀이가 떠오르나 보다. 엎드려서도 타고, 누워서도 타고...


이때부터 아이들은 한번 타고난 썰매를 들고, 위로 올라가면서 곧잘 큰소리로 외친다.

좋은 생각났어!

이번엔 썰매 뒤에다가 삽을 매달고 타는 거야.”

(이 삽은 눈을 ‘관리’하려고, 내가 챙겨둔 것이다. 눈이 부족한 곳은 눈을 더 보태고, 썰매 길 끝에는 가속에 의한 사고 방지를 위하여 눈을 치우려고 둔 것이다.)

그렇게 타고나서는 기고만장하여 또 크게 외친다.

“썰매도 타면서 밭도 갈았어!”

이렇게 큰소리로 외친다는 건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속마음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아이들은 ‘밭갈이 눈썰매’란 새로운 놀이를 만들었다. 이 놀이는 현실과 맞물려 더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올 수 있다. 누군가의 좋은 생각은 또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 마음껏 노는 놀이 자체가 일이 될 수도 있고, 에너지를 생산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밭갈이보다 먼저 안전을 위한 제동 장치로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세상과 꼭 나누어야겠다는 '글쓰기 충동'을 느꼈다.


이 날,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시도한 놀이는 서서 타는 거였다. 앉은뱅이 눈썰매를 스노보드처럼... 쉽지 않았다.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날이 저물어, 다음을 기약하며 놀이를 마무리했다.


창조 놀이의 다섯 가지 본질

이후에도 나는 아이들을 창조자로 보면서 함께 다양한 놀이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창조 놀이의 본질을 우선 다음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보았다.


1 창조 놀이는 본성이다.
아이가 이미 창조된 존재이기에, 새로운 걸 만들려는 본성은 배우려는 본성보다 더 뿌리 깊다. 이래저래 만들어 보면서 배우는 건 또 얼마나 많은가. '다 배운 다음 만들어라'라고 강조한다면 행여나 아이가 가진 창조 본성과 창조적 성장을 왜곡하거나 억누르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 창조 놀이는 맞춤형으로 몰입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딱 맞는다’고 느낄 때, 불꽃같은 생각이 일어난다. 놀이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라면 그저 타는 재미에 머물게 된다. 아이는 매 순간 자란다. 맞춤형 놀이를 통해, 아이는 자신의 성장을 그 자리에서 바로 느끼게 된다. 창조는 몰입으로 가능하고, 몰입은 다시 창조를 더 북돋운다.

3 창조 놀이는 두뇌 발달과 뗄 수 없다.

“좋은 생각났어!”를 외치는 순간은 그야말로 '유레카!'다.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때, 우리 뇌는 특정 부위가 단독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여러 영역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한단다. 얼마나 기뻤으면 그렇게 외침으로 나올까? 호기심이 뇌를 깨우는 스위치라면 '창조심(창조하고자 하는 본성)'은 뇌에 불이 환하게 켜진 상태라 하겠다.

4 창조 놀이는 오감을 온전히 살려, 잘 놀 때 제대로 빛난다.

뇌로 가는 혈류 흐름이 좋아야, 좋은 생각도 잘 나는 법. 오감을 살려, 온몸을 움직일수록 피 흐름이 좋아지고, 창의적인 생각도 솟구친다.

5 창조 놀이는 아이가 주인일 때 지속된다.
놀이에서 어른 욕심이 자꾸 앞서면 동기는 흐려지고, 과정에서 흥미는 떨어진다. 결과 또한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사고 위험도 따른다. 아이가 자기 나름 시행착오를 거치며, 창조 놀이를 넘나들 때, 잔소리는 노(No!), 가르침이나 제안은 아이들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만큼. 어른은 지켜보면서 아이한테 하나라도 더 배우고, 영감을 얻자. 더 나아가 같이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으리.


아이가 주인으로 우뚝 서는 건 놀이만이 아니다. 말하기, 글쓰기, 노래 짓기, 그림책 만들기, 춤추기, 음식 만들기, 심지어 돈 벌기까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이를 창조자로 보고, 이를 조금씩 살려가기만 한다면... 가장 좋은 건 아이 스스로 자신을 창조자로 자각하는 것이리라. 어른은 곁에서 북돋우고, 함께 성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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