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하게 꽉 찬 하루
우리 아이를 키울 때는 몰랐다.
아기들이 제 스스로 얼마나 열심히 자라고자 하는가를….
아기가 잠들면 그저 내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가지고 싶었으니까…. 아이 성장을 ‘충분히’ 기뻐하지 못하고 키운 셈이다.
이제 나는 부쩍 나이가 들었지만, 그 사이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미니’라는 아기는 이제 돌 지나, 아장아장 걸음을 익히고 있다. 나는 초등 아이들과 계절형 캠프를 꾸리고 있는데 일 년에 한 번쯤은 온 가족이 다 함께한다. 이 때는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로….
그렇게 나는 올봄에 미니를 처음 만나, 이 아기랑도 이틀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요즘은 아기가 얼마나 귀한가? 너도나도 ‘아기 돌보는 체험’을 해본다. 아기 안아보기, 업어보기, 놀아주기, 밥 먹여 주기…. 이 정도면 체험 수준을 넘는다.
예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뷰티플 그린(La Belle Verte)'은 주인공 밀라(Mila)가 지구보다 200년 앞선 문명, 즉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초록 별'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주제는 묵직하지만 줄거리는 코믹하다.
밀라는 지구에 도착했지만 공기는 나쁘지요, 음식은 오염되어 제대로 먹지를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행성과 교신하면서, 지구에서 에너지를 얻는 방법을 알게 된다.
바로 ‘갓 태어난 아기를 안는 것’. 그곳 사람들은 자연과 온전히 교감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아직 지구의 문명에 물들지 않은 아기라면 순수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갖고 있으리라. 밀라는 병원 신생아실에 몰래 들어가, 가족이 없는 아기를 안고, 에너지를 얻는다. 어쩌면 필요한 에너지를 서로 나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사실 그날 우리 모두는 아기랑 놀면서 밀라 비슷한 충만감을 느꼈다. 아기 덕분에 이번 캠프는 한결 더 풍성한 놀이터이자, 배움터가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기를 본 나는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잘 내려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기는 또 어땠을까? 저 나름 얼마나 바쁘던지…. 아기가 워낙 잘 논다. 아기는 형이나 어른들이 하는 게 다 궁금하다. 다 알고 싶고, 다 끼고 싶어 한다. 다른 이들이 아기 돌보기 체험을 하고 싶어 하듯이 아기는 형 그리고 어른 체험을 하고 싶은 거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아직 잘 걷지를 못하니까, 급하다 싶을 때 네 발로 발발 기어가는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아기의 빛나는 눈빛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보는 상대를 빨아들이는 눈빛. 마치 이렇게 말하는 거 같다.
“당신은 이제 내 거야!”
흔히 몰입을 예찬한다. 한 사람이 가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단계라고. 일에서도 그렇지만 아이 교육에서도 몰입은 큰 자산이라 하겠다. 근데 아기는 이 몰입을 말이 아닌 그야말로 몸으로, 눈빛으로 보여주고 있다.
젖을 빨고, 음식을 먹는 과정들이 말 그대로 몰입이다. 놀이에 몰두하는 것 역시 젖 빠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도 그 연장이리. 정말 잘 잔다. 밤에 한번 잠들면 밤새 거의 깨지 않는단다. ‘아이는 자면서도 자란다’는 표현이 그냥 눈앞에 보인다. 이래저래 아기가 부럽다.
그렇게 2박 3일 캠프를 마치고 나서도 미니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내 생각을 찬찬히 정리하다 보니, 배움을 넘어, 그 어떤 깨달음이 온다. 아기가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는 건 ‘바쁘다기보다 그냥 꽉 찬 삶이구나’ 싶다.
오감을 온전히 살려, 자란다. 쉬지 않고, 자란다. 충만하여 뿌듯한 하루. 바르게 성장한다는 건 그 어떤 모자람도 버거움도 아닌, 그냥 꽉 찬 삶이구나 싶다. 삶이 바쁘다는 건 그 반대급부로 어딘가에는 빈 구석도 따르기 마련.
이렇게 아기 덕에 한달음에 동시를 쓰고, 여러 날 뜸을 들이면서 동요로 완성했다. 이 동요를 들을 때면 나는 입가에 미소가 돌고, 지금도 여전히 아기처럼 충만한 하루하루를 꿈꾼다.
<아장아장 아기도>
(1절)
아장아장 아기도 저 나름 바빠요
크느라 바빠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아장아장 두 발로 걷다가
급할 땐 네 발로 빨 빨 빨
조심조심 만져보고
조금조금 먹어보고
냠냠 냠냠 흘리고 뭉개도
(후렴)
아장아장 꽉 찬 하루
잠도 쿨쿨
(2절)
아장아장 아기도 저 나름 바빠요
크느라 바빠요
눈보다 위가 궁금하면
까치발 들고 더 더 더!
맘대로 안 될 땐 끙끙
가끔은 몸 비틀며 으앙
똥도 똥도 잘 싸요
하루에 서너 번도 거뜬!
할 게 많아 쉬는 법이 없어요
(후렴)
아장아장 꽉 찬 하루
잠도 쿨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