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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놀이, 그 뿌리를 찾아

몸 놀이 자체가 즐거움

by 빛숨 김광화

아이들과 캠프를 꾸리자니 관련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게 될 묵직한 질문들과 끊임없이 마주해야 한다. 나 자신이 가진 개별 경험으로 머물 수는 없다. 나는 근본을 파고드는 편이다. 질문하고 다시 또 질문하면서 뿌리를 파헤쳐야 직성이 풀린다.

아이에게 배운다 뇌과학 책들.jpg

그러다가 올 초에는 완주군에 있는 ‘미래행복센터’에서 그곳 초등 6학년 아이들과 놀이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이 아이들과는 또 무슨 놀이를 할까. 6학년이면 이미 머리가 어느 정도 굵어, 호기심보다는 나름 자기 세계를 어느 정도 가질 나이가 아닌가. 게다가 놀이 환경이 내 사는 곳과 다를 수밖에. 고민 끝에 도서관에서 놀이 관련 책을 잔뜩 빌렸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놀이가 있더라. 이참에 어디 한번 그 뿌리를 파보자. 그랬더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달리기와 숨바꼭질’이 가장 오래된 놀이라고 주장한다.


“나 잡아 봐라!”

“나 찾아봐라!”

그렇다면 이는 ‘놀이란 살아남기’라는 앞선 내 정의하고도 잘 맞지 싶다. 달리기는 원시 시대라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했겠다. 사냥감을 잡으려고 달리고, 쫓아오는 맹수로부터 살아남으려면 달려야 하니까.


어린이들은 어른에 견주어, 달리기가 더 절실하다. 그래서일까.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곧잘 달린다. 혼자서도 달린다. 궁금해서 달린다. 하고 싶은 게 많아도 달린다. 아이에게 달리기란 그 자체로 놀이다.

“나 잡아 봐라!”

둘 이상이 하는 술래잡기 역시 사냥놀이다.


그다음 숨바꼭질 놀이. 이게 또 흥미롭다. ‘살아남기‘에서 역시 중요하다. 살아남자면 먼저 자신을 노리는 천적한테 되도록 눈에 띄지 않아야 하리. 거꾸로 사냥하는 쪽이라면 사냥감이 어디 있는지를 찾게 된다. 이때 우리 몸은 크게 깨어난다. 사냥감이 어디 있을까…. 두리번두리번.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한다. 흔들리는 갈대조차 허투루 보지 않는다. 바람 때문인지, 어떤 짐승이 움직이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이렇게 온몸 감각으로 둘레를 보면, 고정된 자세로 스마트 폰을 보는 것과 달리, 눈이 밝아진다. 마찬가지로 귀도 밝아진다.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귀를 쫑긋한다. 코 역시 예민하게 바뀐다. 흠흠! 자기 둘레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낌새를 맡는다. 눈 번쩍, 귀 쫑긋, 코 흠흠…. 이 모든 행동이 따로 떼어지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합치면서 판단을 도와준다.


만일 어린이들이 나보고 같이 숨바꼭질 놀이를 하자고 한다면 나는 내가 먼저 술래 하겠다고 나서겠다. 몰래 숨어서 웅크리기보다 술래가 되어,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면서 찾으려고 다니는 게 훨씬 더 좋기 때문이다. 좁은 곳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어 봤자, 온몸으로 피가 잘 안 돌아, 그저 답답하고 몸만 저릴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를 수밖에. 살아남는 게 먼저다. 부모가 늘 자신을 지켜주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 그러니 술래가 되어 찾는 재미보다 숨는 짜릿함을 더 즐기지 싶다.


그렇다면 ‘살아남기’가 정말 놀이의 본모습일까? 사실 나로서는 여기까지 도달한 그것만 해도 뿌듯하다. 하지만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아직 더 남은 걸 어떡하랴.


<고루고루 힘차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자라면서 몇 살부터 놀았을까? 각자가 기억하는 첫 놀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5세 안팎이다. 그 이전에도 많이 놀았을 텐데, 뇌 발달 과정으로 기억에서는 묻혀버린다.

어쨌든 그렇게 거슬러 가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된다. ‘뱃속 아기도 논다’. 그렇다.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전, 엄마 뱃속부터! 산모가 태동을 느낄 때면 하는 말

“얘가 움직여! 꼼지락거려! 발로 차! 얘가 놀아!”


그럼, 다시 궁금하다. 왜 태아는 꼼지락거리고, 또 손이나 발로 톡톡 차며 ‘놀까?’ 심심해서일까? 놀이가 갖는 그 뿌리를 찾기 위해, 태아에 대해 더 알아보았다. 흥미로웠다. 아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발달은 대략 다음과 같단다. 심장은 임신 3주 정도에 모양을 갖추고, 5주쯤 심장 근육이 발달하면서 뛰기 시작하고, 7주면 혈관이 생기면서 피가 흐른단다. 그렇게 발달하다가 12주(3개월)쯤 심장이 완성된단다.


그럼, 손과 발은 어떨까? 심장보다 뒤늦게 생겨나지만, 역시나 12주쯤에 손 발가락 모양이 또렷해지고, 팔과 다리를 움직인단다. 그러니까 심장은 손과 발, 손 발가락과 아주 밀접하다.


많은 부모의 관심사인 두뇌 발달은 어떤가? 임신 한 달쯤 뇌 기본 구조가 만들어진다. 근데 이 구조가 발달하는 건 4개월 넘어서다. 6개월쯤이면 날마다 약 5천만~6천만 개의 뉴런이 만들어질 정도로 빠르게 두뇌가 발달한단다.


자, 놀이 본질이 조금씩 드러난다. 뇌가 발달하자면 영양이 필요하다. 손발 역시 마찬가지. 심장이 발달하고 혈관이 생기면서 피가 흘러줘야 한다. 심장 근육만으로 온몸으로 피를 흐르게 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심장을 도와주고, 더 나아가 피가 더 잘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심장에서 가장 먼 곳이 발가락이다. 꼼지락꼼지락. 그렇게 태아는 손과 발을, 손 발가락을 움직인다.

건강 관련해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종아리와 발이 제2의 심장이다.’


네발짐승과 달리, 두 발로 걷는 사람에게 심장은 무리가 따른다. 심장에서 발까지 피가 아래로 내려가는 건 쉽다. 하지만 그 피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가는 건 어렵다.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까. 심장으로 돌아와야 할 피가 그 힘을 잃으면 거꾸로 흐를 수 있다. 마침, 정맥에는 이를 막는 장치가 있다. 바로 판막이다. 심장으로 올라가던 피가 다시 내려가려고 하면 판막이 닫힌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따라서 심장이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심장을 움직이게 하는 심근은 쉽게 지치지 않는 근육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다른 여러 근육이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근육을 잘 움직여 줄수록 피가 심장으로 잘 돌아간다. 그 원리는 이렇다. 텃밭에 물을 주는 호스가 있다고 치자. 그 호스를 발로 밟으면 물이 힘차게 죽 흐른다. 호스는 혈관, 물은 피다. 혈관은 근육과 연결된다. 근육을 움직이는 건 호스를 발로 밟는 행위다. 온몸 구석구석 잘 움직여 줄수록 피가 고루고루 잘 돌아, 몸은 따스해지고, 기운이 솟는다.


‘고루고루’. 이게 참 어렵다. 머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특히 발바닥 근육은 아주 중요한 근육이다. 그 이유는 엄청난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호스를 손으로 누르는 힘과 발로 밟는 힘의 차이를 생각해 보시라. 게다가 우리가 걸을 때 그냥 걷는 게 아니다. 바닥을 발로 밀듯이 힘을 주면서 그 반작용을 활용한다. 심지어 달리기까지 한다면 발에는 자기 몸무게의 얼추 세 배가량 힘이 들어간단다. ‘발이 제2의 심장’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우리 몸에서 발이 심장에서 가장 먼 곳이듯이 발가락은 다시 그 발에서도 가장 먼 곳이다. 호스를 발로 밟아도 다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 한 방울마저 쥐어짜는 건 호스를 꺾는 것이다. 그렇다. 필요할 때는 발가락을 ‘생긴 모양 그대로’ 꺾어주어야 한다. 큰 힘을 내야 할 때는 엄지발가락이, 넘어지려고 할 때는 새끼발가락이 잘 버텨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발가락 마디마디, 그리고 발톱 그 끝까지 제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다. 많은 시간을 신발과 양말에 갇혀 지낸다. 길이란 길은 죄다 평평하다. 그나마 그 길마저 대부분 차로 이동한다. 당장 열 발가락으로 가위바위보를 해보자. 바위를 해보면 맨주먹처럼 가지런하고, 보를 해보면 부채처럼 활짝 펴지는 사람이 많지 않으리라. 이는 우리 몸을 그만큼 ‘고루고루 힘차게’ 움직여 주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에 ‘제대로 잘 놀면’ 힘이 나고, 힘이 찬다. 뇌 발달도 그 연장이리라. 손발을 비롯한 온몸을 고루 쓰지 않고, 머리를 많이 쓰는 건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다. 요즘 일부 지나친 조기 교육이 사회 문제로 되고 있지 않는가. 뇌가 필요로 하는 만큼 충분한 피와 영양이 가지 않는 상태에서 두뇌 활동이란 발달이 아니라 혹사라고 하겠다.


그래서 나는 ‘종아리와 발이 제2의 심장’이라는 말에다가 다음 말을 덧붙인다.

“발가락은 심장의 샘이다.”

심장을 활기차게 하는 샘. 조금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되도록 열 개 발가락 마디마디 잘 움직여 주어야 한다. 참고로 갓난아기들은 태어나서도 한동안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엄마 뱃속에서 하듯이 그냥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소중하면 그렇게 하겠는가? 어른들은 아이들과 달리, 대부분 의식으로 운동을 한다. 여기에는 게으름도 끼어들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다치기도 한다. 반면에 몸이 알아서 한다면 게으름이 끼어들 틈이 없다. 나는 이처럼 갓난아기한테도 배우는 게 많다.


자, 이제 결론이다. 나는 태아한테서 답을 찾았다.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가끔 꼼지락거리는 건 몸을 몸답게 하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놀이 그 뿌리는 ‘움직임’이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이 나온다. 논다는 건 곧 움직이는 거다. 하지만 그 뜻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재미있어 노는 게 아니라, 노니까 (몸을 놀리니까 그 자체로) 재미있는 거다. 그렇게 놀다가 더 나은 놀이를 궁리하여 필요하다면 규칙도 만들어 본다. 또 그 규칙을 바꾸기도 한다. 새로운 놀이도 만들곤 한다. 더 즐겁고자, 더 활기차고자, 더 보람차고자....


반면에 놀이 그 근본을 벗어나, 재미나 승부를 앞세우는 놀이라면 참다운 놀이라 하기 어렵겠다. 승부에 휘둘리면, 반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자신조차 속이기도 한다. 놀다가 아예 다치는 줄도 모르거나 뻔히 알면서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재미만을 좇다가는 삶이 망가지기도 한다. 게임중독, 도박, 약물 의존, 친구 괴롭히기….


그러므로 놀이란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놀이다운 놀이는 삶을 즐겁고 활기차게 한다. 이런 놀이는 성장이요, 건강이며, 배움이자, 예술이다. 제대로 잘 놀아야 잘 크며, 잘 놀아야 건강하다. 잘 노는 아이가 뇌로도 피가 잘 흘러, 호기심도 많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기꺼이 배운다. 예술이란 것도 거창한 게 아니라 그 뿌리를 더듬어 보면 자신을 표현하는 놀이라 하겠다.


이렇게 아이들 덕에 놀이를 새롭게 보고 나니, 내 삶도 이전과 또 달라진다. 이제 나는 밥을 먹으면서도, 자려고 누워서도 갓난아기처럼 틈틈이 발가락을 움직인다. 또한 일상의 자잘한 일들이 이전보다 더 흥미롭다. 꼼지락거리며 하는 일조차 다르게 느껴진다. 모든 일에는 놀이다운 면이 스며들어 있구나. 자신이 하기에 따라 ‘삶이 다 놀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요즘 우리가 맞이하는 인공지능 시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변화하는 환경에 ‘살아남기’ 그리고 창조적으로 대처하는 길은 바로 놀이, 그 뿌리에 답이 있을 수밖에. 인류 수만 년에 걸쳐, 쉼 없이 뻗어온 뿌리….

이렇게 놀이에 관한 생각을 그 근본에서 정리할 수 있게 해 준 이 땅의 아이들아!


“고마워! 덕분에 나도 더 잘 놀도록 노력할게.”

발가락 꺾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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