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계기는 박문희 선생 덕이다. 선생은 오래도록 서울 강남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계시고, 우리는 그곳에서 한동안 글쓰기 모임을 같이 했다.
박 선생은 그동안 ‘마주 이야기’라는 깨달음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그 요점은 이렇다. 아이 말을 들어주고, 알아주고, 감동해 주는 것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거다. 이는 아이 자율성과 자신감 그리고 자존감을 길러 주며, 사회성이나 정서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자란다. (참고로 요즘 아이들 정신 건강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를 보자.)
선생은 관련 책을 여러 권 내셨다. 아래 맛보기로 두 가지를 보자.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
서울 아람유치원 일곱 살 김민석
민석 : 내가 엄마 말 잘 들어야 엄마 오래 살아?
엄마 : 그럼
민석 : 그럼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
엄마 : 왜?
민석 : 엄마 말 잘 들으려면
엄마가 하라는 대로 다 해야 하는데
공부하라면 공부해야 하고
밥 먹으라면 밥 먹어야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해야 하는데
그럼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
다음은 엄마 아빠가 싸운 뒤, 아이가 부모를 화해시키는 과정이다.
<아빠도 사과해>
엄마 : 혜미야, 아빠 전화도 안 하고 늦게 오니까
문 열어주지 마.
혜미 : 안 돼. 그래도 열어줘야 해.
엄마 : 아냐, 미워서 잠글 거야.
혜미 : 안 돼. 열어줘야 해. 엉엉.
(혼자 뛰어갔다, 온 다음에)
내가 의자에 올라가서 문고리 벗겨났어.
(아빠 퇴근)
혜미 : 엄마 아빠! 서로 사과해.
엄마 : 싫어! 싸웠는데 무슨 사과.
혜미 : 엄만 싸웠더라도 사랑이 있으니까 사과하는 거야.
엄마 : 호호 그래 맞다. 여보, 미안해.
혜미 : 아빠도 빨리 해.
사과해. 안 하면 이름 부른다. 유경우 빨리해!
아빠 : 그래 알았어, 미안해.
*참고로 ( )안에 설명은 읽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넣은 것임.
보다시피 말문이 트인 아이는 모든 힘을 다한다. 빌고, 설득하고 심지어 을러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아이 말보다 더 감동은 몸짓이다. 어린 혜미가 무거운 의자를 들고, 문 앞으로 가져다 놓고, 문고리를 열기 위해 그 위로 올라간다. 그때 혜미 눈을 본다면 어떤 빛일까? 사실 혜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데는 평소에 그 부모가 아이 눈높이에서 아이 말을 잘 들어주었기에 가능하리라. 이렇게 아이가 해준 말을 흘려버리지 않고, 기록해 둔 걸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나. 어쨌든 혜미 이야기는 마음이 얼어붙은 부모를 녹였고, 이 글을 읽는 또래 아이들에게 큰 용기를 줄 것이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마주 이야기’는 훌륭한 교육 방식이지만 아쉬움도 있다. 아이가 유치원을 마칠 무렵이면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들어주고, 알아주고, 감동해 주는 걸 넘어서야 한다. 정말 ‘감동했다’면 어른 삶이 달라져야 하리.
사실 처음이 어렵지, 한두 번 해보면 쉽다. 행여나 아이 답이 예상보다 못할 수도 있다. 뭐, 어때? 아이랑 소통의 문을 넓혀가는 덤이 따르는걸…. 근데 직접 해보면 아시리라. 아이가 부모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부모는 또 아이를 통해 얼마나 성장하는지를….
누군가는 그랬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적어도 자녀 교육이란 틀에서만 본다면 썩 괜찮은 정의라 나는 생각한다. 아이가 어떻게 나올지가 두려워서 선뜻 아이 눈을 더 깊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쌓여, 나는 우리 아이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도 마주 이야기를 해보면서 정말 눈이 번쩍 뜨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란이는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넌 왜 그렇게 노래가 좋아?”
“노래 한 곡 부르면 책 한 권 읽은 거나 다름없거든요”
그렇구나. 이참에 작가들에게 권하고 싶다. 당신이 낸 책 한 권으로, 노래 한 곡을 만든다면 어떤 노래가 나올지 궁금하다.
마주 이야기는 아이를 대하는 어른의 태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어떤 질문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답이 크게 달라지더라.
우리 아이가 자라면서 가끔 감기에 걸리곤 했다. 병원 가면 일주일, 집에서는 7일 걸린다는 우스개 농담이 있는 감기! 너무 안쓰러워,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생각할 때, 왜 감기에 걸린 거 같니?”
아이가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한다.
“아무래도 형들과 오랜만에 너무 흥분하면서 놀아서 그런 거 같아요.”
이렇게 스스로 답을 찾은 아이는 고요히 자신을 돌보며 감기를 이겨냈다. 다음에는 같은 잘못을 되도록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절제하는 힘이 나보다 나았다. 아이는 부쩍 자신감을 회복하고, 나는 안쓰러움을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마주 이야기는 자녀 교육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어른과 어른 사이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는 어쩌다 자녀 교육을 주제로 부모 강의를 할 때면 참여한 부모님들에게 곧잘 하는 질문이 있는데 다음 두 가지다.
첫째, “여러분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둘째, “아이들은 저희 나름 부모를 선택해서 온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은 부모에게 올 때, 선물을 가져온다고 해요.
여러분은 아이에게 어떤 선물을 받았습니까?”
참으로 다양한 답이 나온다. 질문은 같아도 그 답은 사람마다 다르더라. 보통 강의라면 내용이 강사에서 수강생으로 치우쳐 흐르는 편이다. 근데 마주 이야기를 토대로 한 강의는 그렇지 않다. 서로 대등하게 마주하며, 모두가 주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나야 강사로 앞에 서, 마중물 역할을 할 뿐. 정작 깊은 지혜는 부모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안에서 뜨거운 용암으로 솟는다고 할까. 나는 그저 들어주고, 알아주고, 감동하면서 같이 성장할 뿐이다.
사실 내 질문에 대해, 그 자리에서 선뜻 대답을 못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날 시간을 두고, 곱씹어 답을 내느라고…. 다음 내용은 그날 강의에 참여했던 분이 내게 문자로 보내준 내용인데 길어, 조금 간추려 소개한다.
<<나는 그 질문을 받고 머릿속에 내 아이들을 그렸다.
우리 딸들은 왜 나를 선택했을까?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힘든데 큰 아이가 항상 나를 힘들고 귀찮게 하는 듯 느껴졌다.
화낼 일도 아닌 데도 매를 들곤 했다.
큰 아이는 그래도 나에게 안아달라고 매달린다.
내가 소리를 쳐도 "엄마~사랑해요~”라고 안긴다.
그러고 있는 아이에게
"무얼 잘했다고 안아달라니?"하고 뿌리쳤다.
아이가 울다 지쳐, 잠들어 집안이 고요해지면
이내 화가 가라앉으며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닌 것에
내가 방금 24개월 큰아이에게 했던 행동들을 후회하며
가슴이 아팠다.
이 아이가
나보다 더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좀 더 넉넉한 부모를 만났더라면….
좀 더 사랑해 줄 부모를 선택했다면…. 좋았을 텐데….
어쩌다 나 같은 엄마를 만나서….
가슴이 아팠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임에 속상해 울고, 이것밖에 안 되는 나를 만난 내 아이가 불쌍해서 울었다.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육아서적들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기술…. 방법 등이 나와 있는 똑똑하고 나름 유명하신 박사님들이 펴낸 책들이 많았지만 내 가슴에 와닿지 않았고 실천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아는 지인의 집에 갔다가 우연히 육아 책을 보게 되었다.
그 책을 한장 한장 넘기는 순간 가슴에 얹혀있던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아이를 다루는 방법도 기술도 없는 내용들인데….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요?'
(아이들에게 엄마는 온 우주고, 세상의 전부입니다.)
눈만 마주쳐도 나를 보고 이유 없이 행복해하며 웃어주는 딸….
꼭 끌어안아 주면, 세상 다 얻은 것 같이 좋아하는 딸….
"사랑해~" 한마디에 너무도 행복해하는 딸….
나는 내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구나.
아니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는구나.
온전히 나만 사랑해 주는 완전한 사랑….
내가 옷을 추레하게 입고….
내가 예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게 없어도….
내 존재 하나 자체만으로 기뻐해 주며 웃어주는 사람….
내가 세상에 태어난 걸 가치 있게 빛나게 해주는 사람….
매를 가져와 딸 앞에 놓으며
"미안해. 이제 엄마가 다시는 너를 때리지 않을게. 미안해. 엄마 딸…."
그리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매를 부러뜨리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고는 나는 펑펑 울었다.
그 어린아이도 철퍼덕 방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바닥을 치며 한 맺힌 듯 울었다.
그러고는 울고 있는 나에게 화장지로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마, 괜찮아~"
라고 나를 위로하며 내 머리를 끌어 않았다.
그 상처를 줬는데도 이 아이는 지금 나를 용서하고 있다.
나는 알았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의 끊임없는 사랑 공세를 받는다.
아무 때나 뽀뽀를 해대고….
하루에도 몇 장씩 편지를 건네받고….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은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다.
내가 힘들어하면 위로의 말도 건네고, 위로의 선물도 만들어준다.
울고 있으면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눈물도 닦아주고, 꼭 끌어안아 주기도 한다.
내가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확인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사랑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조금씩 나누어지겠지만
지금까지의 받은 사랑만으로 평생의 치유를 받은 나는 이제 아이에게 받은 사랑을 평생 갚아 줄일 만 남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니까….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눈빛을 맞춰주고
사랑 듬뿍 담아 안아 줄 것이고
아이를 인정해 주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를 선택해 내 삶을 빛나게 해주었듯
나 또한 아이가 스스로 삶을 빛낼 수 있도록
지지자가 될 것이고, 뿌리가 되어줄 것이다.
사랑한다. 내 딸들….>>
여러분은 자녀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