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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창조 놀이(2) 아이들 덕에, 함께 ‘나우리 춤’을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놀이

by 빛숨 김광화

아이를 어떤 존재로 볼 것인가? 거기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고, 아이 삶 역시 달라진다. 그런 관점에서 아이들에게 배울 게 많다고 보면 정말 그렇다. 나는 아이들한테 용기도 배운다. 아니, 솔직함을 배운다. 안에서 솟아나는 흥을 배운다. 아이들 덕에 나만의 끼도 살린다.


그럼, 아이들은 어떨까? 이런 나를 아이들은 기꺼이 동무로 받아준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또는 자신이 잘하는 걸 누군가 따라 배우고자 할 때, 얼마나 기쁜가!


무한 경쟁에 휘둘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받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결핍과 갈망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심지어 들고나는 숨마저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를 되묻게 만드는 세상이 아닌가. 최근 청소년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통계는 이런 현실을 깊이 돌아보게 한다. 게다가 AI가 빠르게 발달하면서 AI 도움으로 '쉽게' 생을 마감하는 청소년이 있다는 뉴스에는 정말이지, 말이 안 나온다.


물론 나 역시 이런 세상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이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적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을 뿐이다. 내가 몸담은 어른들 모임 역시 대부분 진지한 편이다. 좀 즐겁고 각자가 가진 끼를 살리면 어떤가? 더 나아가 뒤풀이 시간만이라도 같이 춤을 추면 더 좋을 텐데. 게다가 나는 나 혼자만이 꿈꾸는 춤이 있는데 기회가 되면 이를 여럿이 같이 해보고 싶었다. 내 ‘버킷 리스트’에 담아두었던 춤.


근데 마침 아이들 덕에 그게 가능하게 되었다. 내가 참여하는 모임 가운데 ‘토종 과일나무 살리기 모임’이라고 있다. 총회를 치르기 위해 전체 참석 인원을 미리 파악하자, 부모 따라오는 아이들이 셋이란다. 5살, 6살, 7살. 나보고 임시 유치원을 맡아, 이 아이들을 좀 봐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자면 나로서는 아이들에 대한 사전 정보를 조금이나마 알아야 했다. ‘슬아’는 7살 여자아이다. 슬아 엄마가 단톡방에 올린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슬아도 윷놀이에서 지면 울거나 화를 냈어요. 거듭되다 보니, 이제는 지고 이기는 것에 속상해하면 즐거운 놀이가 안 된다는 걸 알고 나서 좀 나아졌습니다. 반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지금은 자기가 독주하듯 이기면 저희를 봐줍니다. ^^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역할놀이. 이야기 짓기. 끝말잇기…. 계속 놀자고 합니다….

저희가 바쁘게 살다 보니 아이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드는 요즘입니다. 어쨌든 노래도 좋아하고, 함께 손잡고, 둥글게 둥글게 춤추는 거 좋아하고, 강강술래도 좋아합니다. 백조의 호수 음악에 맞춰 발레 흉내 내고, 박수받는 거 아주 좋아합니다. ^^”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옳다구나!’ 싶었다. 사실 몸 놀이가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맞는 놀이로 뭐가 좋을까를 계속 생각해 오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아이 소개를 보면서 내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내가 만나본 슬아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활기차다. 어른들이 하는 웬만한 일정에는 다 끼고 싶어 한다. 자기소개 시간에는 저만이 아니라 저희 부모 소개까지 아이가 도맡아서 할 정도다. 춤을 추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춘다.


슬아가 이렇게 활발하게 움직이자, 그 아래 동생들도 잘되었다는 분위기로 바뀐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다 같이 거실에서 곧잘 춤을 추며 뛰어논다.


<음악이 없어도 춤이 가능한 아이들과 음악이 있어도 머뭇거리는 어른들>


사실 춤이라는 게 얼마나 위대한 몸놀림이자, 몸 놀이인가. 내가 말하는 춤은 화려하거나 틀이 짜인 춤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흥과 끼를 살리는 춤이다. 리듬 역시 깊이 들어가면 우주적 리듬과 내 몸 리듬이 만나는 지점에서 춤이 나온다. 우주적 리듬이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리듬과 천지 운행이 갖는 리듬을 말한다. 우리 안에서는 심장과 호흡이 중력에 대응하면서 그 나름 리듬을 갖는다. 이렇게 자기 몸과 몸 밖의 리듬이 조화를 이룰 때, 춤이 저절로 나온다. 춤은 그 근원을 따지면 이렇게 음악보다 먼저다.


혹시 돌 지난 아기들 가운데 음악 없이도 춤추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 들썩들썩, 무릎 굽신굽신. 아기에게는 말보다 노래(울음과 웃음)가 먼저요, 노래보다 춤이 먼저다. 따라서 자라는 아이들 몸은 그 누구보다 이런 리듬에 열려 있다고 하겠다.


내 삶의 주된 관심사가 몸 공부, 마음 나누기다. 그런 내가 춤이라면 마다할 수 없지. 나도 아이들 몸짓을 따라 하며 거실에서 같이 뛰고, 뒹굴고, 춤을 추었다. 이런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여러 어른의 얼굴은 한결 밝고, 곧잘 웃음이 돈다. 아이들은 나를 한결 더 가깝게 느끼는 거 같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뛰고, 춤추는 걸 좋아한다. 게다가 그런 자신을 봐주는 사람이 많다면 더 신난다. 더 나아가 박수까지 받으면 흥이 더 난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연예인 ‘아이돌’에 가까워, 주목받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한테는 춤이 이렇게나 쉬운 몸짓인데 어른들은? 쉽지 않다. 음악이 나와도 머뭇거리는 어른들이 대부분. 번쩍이는 노래방 같은 곳에서 얼큰하게 취해야만 그나마 숨은 끼를 드러내는 편이다. 그건 끼라기보다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는 몸짓에 더 가깝겠지만….


솔직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나 역시 눈치를 봐야 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아니면 연예인처럼 춤 동작이 아름다워, 남들도 즐겁게 해 주어야 하리. 그런 재주가 없는 나는 아이들 덕에 용기를 낸다. 아이들이 뛰고, 춤추며 놀 때, 나는 슬쩍 끼기만 하면 되니까.


이쯤에서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비법’ 한 가지를 잠시 소개하고 넘어가자. 내가 오래전에 읽은 자폐 아이에 관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이가 자폐였던 부모는 세계 곳곳을 돌며 온갖 치료법을 시도하지만 아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그런 아이가 너무 답답한 나머지 무작정 아이를 따라 해 보기로 한다. 당시 아이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포크로 먹는 게 아니라 개처럼 입으로 핥아먹고 있었다. 바로 이 몸짓을 아버지가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그러자 아이는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동안 그 누구도 자신이 하는 식사법을 알아주기는 고사하고,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바꾸려고만 했다. 근데 지금 아버지는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아이는 처음으로 부모를 받아들이게 되고, 이어서 세상으로도 한 발 두 발 ‘자폐의 동굴에서 걸어 나온다’는 이야기다. 이 아이는 나중에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발달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을 교육하게 된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주인이고자 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따라주길 바란다. 모두 그렇다. 자폐라는 동굴에 깊숙이 갇혀있던 아이조차!


그렇다면 각자가 주인이면서 모두가 주인이 되는 길은 없을까? 적어도 잠시 추는 춤에서만은 가능하지 않을까?

당시 내 버킷 리스트에 들어있던 춤은 이렇다.

‘나의 춤이 우리 모두의 춤이 되고

나 아닌 모두의 춤은 다시 내 춤을 북돋운다.’


요령은 참여한 사람들이 적당한 원을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가운데로 나온다. 음악에 맞춰, 자신만의 춤을 추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사람의 몸짓을 따라 하며 함께 춘다. 가운데 사람이 자신만의 몸짓을 다 했다 싶으면 제자리로 돌아가고, 이어서 다음 사람이 가운데로 와, 자기만의 춤을 춘다. 이렇게 하여 자기만의 고유한 춤을 추되, 모두의 춤이 되는 셈이다.


이런 춤이 아이들 덕에 가능했다. ‘나 살아생전에 가능할까?’ 싶었던 춤이 바로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심지어 이날은 밤하늘의 별과 바람과 어둠과 모닥불도 함께 하는 춤으로까지 번졌다. 그래서 나는 이를 ‘나우리 춤’이라고 이름을 붙여보았다. 내 춤이면서 우리 모두의 춤이기도 하다고.


낮 동안 아이들이 춤추고 놀 때는 뻘쭘하던 어른들도 이젠 달라졌다. 그 사이 아이들이 어느 정도 분위기를 잡아주어서인지, 뒤풀이 시간에는 어른들이 더 신났다. 정말 개성 만점의 춤이 나온다. 틀에 짜인 춤과 달리, 각자 자신만의 춤은 그 자체로 창조 놀이다. 이 세상에 없는 자신만의 춤, 자신만의 리듬, 자신만의 몸짓, 자신만의 끼와 흥. 몸을 살리고, 마음도 살리는 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춤.

나우리 춤은 집단적 창조 놀이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참여하고, 서로를 살리며, 서로를 북돋우며, ‘우리’로 나아가는 춤. 아이와 어른, 남녀의 경계를 허물고, 너와 나가 하나가 되는 춤. 그리하여 나는 또 새로운 버킷 리스트를 추가했다. 언젠가 수 십억 인류가 함께 ‘나우리 춤’을 추고 싶다는….


아이는 먼 미래 희망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창조된 존재. 아이 성장이란 창조성을 가진 자신을 밝혀가고 또 펼쳐가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어둠은 밝히고, 아픔은 고치고, 가능성은 열어가는…. 이렇게 창조 놀이는 그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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