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우 Mar 04. 2022

서촌, 대화가 필요해

 유난히 누군가와의 대화가 고픈 날이 있다. 그 ‘누군가’가 정말이지 ‘아무나’라도 상관없는 날이 있다. 마음속에 맺혀있는 생각들이 이제는 묶여있던 결박을 견디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나오고자 하는 날. 누구라도 붙잡고 이 모든 생각들을 쏟아내고 싶은 날. 그런 날이면 아무나라도 불러 나란히 서촌을 걸어야 한다.     

 

 광화문의 정면을 향해 걷다가 이내 인사를 건네며 왼쪽으로 향한다. 끊임없이 이어진 궁궐의 담장을 지난다. 그렇게 고궁박물관을 지나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에 닿자 담장의 키는 서서히 낮아진다. 담장의 완만한 경사와 걸맞게 소박한 돌담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느긋하게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며 어깨 높이까지 오는 회갈색 담장을 이따금 손으로 훑는다. 어쩌면 이 담장보다 길게 이어질,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사람과 사랑과 삶과 살아간다는 것과... 두서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사람과 함께 길을 걸으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한다. 무해하고도 유해한, 생각과 감정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서촌의 돌담길에 흩뿌린다.          

 

 돌담을 따라가다 보니 여러 갈레의 골목길이 나온다. 꽤나 튼튼해 보이는 갈색 벽돌집과 담쟁이로 둘러싸인 오래된 한옥이 따스한 햇볕을 비스듬히 받고 있다. 골목 사이사이 통유리로 된 감각적인 갤러리와 원두 볶는 향을 잔뜩 풍기는 작은 카페들이 지나가는 이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군데군데 식당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와 달그락달그락 그릇 씻는 소리가 걷는 이들의 배를 출출하게 만들기도 한다. 갤러리 안 미술작품을 구경하면서도, 카페에 앉아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파스타면 삶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식당에서도, 침묵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이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말이 말을 낳는다. 작은 끄덕임과 묵묵한 대답이 새로이 말을 낳는다. 때론 듣는다. 듣는 말의 주제는 물론 엇비슷하다. 상대방의 혀끝에서도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걷는다. 두 다리에 힘을 채웠으니 조금 더 경사진 길을 걷기로 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자연히 수성동 계곡이 된다. 서촌에서 가장 높은 그곳을 쉬이 오를 수 있을 것만 같다. 굽이진 골목을 지나 완만한 능선을 넘는다. 가끔씩 나타나는 급경사에 숨이 차면 잠시 말을 멈춘 채 고개를 들어 인왕산을 본다. 가까워지는 산새 소리를 응원가 삼아 발걸음을 위로위로 내딛는다. 마침내 산허리에 닿는다. 인왕산이 지켜주고 있는 계곡과 돌층계의 조화로운 풍광을 바라본다. 계곡 저 편에서 물소리가 들려온다. 물소리가 들려오는 작은 폭포로 가까이 다가간다. 폭포의 부서지는 물길을 바라보며 숨을 돌린다. 숨을 돌리며 말을 이어간다. 다시 말은 산처럼 쌓인다. ‘산’과, 산과는 비슷한 발음의 ‘삶’과, 그러다 또다시 ‘사람’과... 장소가 바뀌어도 대화의 주제는 결국 또 사람 이야기. 여전히 사람과 사람 이야기를 한다.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이 가득한 통인시장으로 향한다. 분주히 움직이는 시장 사람들 쪽으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먹자골목에 닿자 앞치마를 두른 전집 할머니는 긴 나무젓가락으로 동태전을 뒤집는다. 지글지글 기름 끓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반복적인 소리에 우리의 마음이 약동한다. 더 깊은 얘기를 꺼내야만 할 시간이 온 듯하다.

“자리 있어요?” “어여 들어와”

주인 할머니의 반가운 대답과 동시에 가게의 문이 활짝 열린다.  

동태전과 고추전, 산적꼬치와 호박전, 형형색색의 전들이 듬뿍 담긴 나무 소쿠리가 상을 가득 메운다. 술은 아직 시키지도 않았는데 할머니께서는 황금색 주전자를 가져오신다. 대접 가득 막걸리를 채우고 아직 채 식지 않은 전을 입 안 가득 밀어 넣는다. 우물우물 전을 씹다가 입술 주변에 묻은 기름을 막걸리로 닦아낸다. 술기운이 돌자 설움이 차오른다. 하루 진종일 그렇게나 많은 말을 꺼내놓고도 혀끝에서 머뭇거리던 몇 가지 말들을 들추어낸다. 이 사람은 어땠느니 저 사람은 어쨌느니, 사람들에게 받은 슬픔과 노여움을 말로 풀어낸다. 그이들과 관련 없는 아무개를 부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오늘이 지나면 나는, 아무개가 모르는 그 사람들과 다시 또 다정과 친절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하므로.


 말을 맺는다. 말을 실컷 쏟아내고 나니 서러움이 풀린다. 얼마 남지 않은 막걸리 잔을 부딪치고 외투를 입는다. 두둑이 차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광화문 저 편 청계광장까지 걷기로 한다. 서촌의 빌딩 숲을 지나 조계사의 울타리를 빙 둘러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청계천이 보인다.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한 건 아닐까 속으로 생각한다. 말이 말을 낳는 과정에서, 사방으로 발산하는 말들에 혹여 아무개가 불쾌하진 않았을까 고민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이내 접기로 한다. 아무개의 귀보다는 서촌의 담벼락에 훨씬 더 많은 말이 묻어있을 거라 믿어보기로 한다.

청계광장의 인공폭포가 푸른 조명에 물든다. 쏴아아 소리가 그 짧은 고민을 말끔히 씻어준다. 광장에 우뚝 솟은 소라탑에 500원짜리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어본다. 다음에 다시 서촌에 오는 날엔, 오늘보다는 적은 말을 해도 될 정도만큼만 서러우면 좋겠다고 빌어본다. 조금 더 나아가 기쁘고 밝은 이야기들만 할 수 있길 빌어본다.


 아무개를 버스에 태워 보낸다. 말을 멈춘다. 나도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처럼 말이 쌓이는 날엔 다시 또 서촌에 오기로 한다. 오늘 걸은 방향 반대로 걸어보면 조금 더 유쾌한 말들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빙긋이 웃어본다.   






작가의 이전글 완도, 도망쳐서 도착한 그곳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