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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Nov 08. 2022

여행자와 생활인 사이, 그 어딘가에서

6개월 간의 유럽살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난날, 기어이 올 것이 왔다. 온몸엔 힘이 없었고, 음식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얼마간의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나의 몸이 그간의 노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고장 나버린 것이다. 이곳은 서울이 아니므로 여유를 가지고 느린 속도로 살아보자 했던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지 못하며 이곳저곳을 쏘다닌 것이 그 이유라면 이유였다.      


 열심히 더 열심히, 빠르게 더 빠르게. 이미 내 몸 깊이 밴 한국에서의 생활습관은 지구 반대편에 왔다고 해서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다. 무진 걷고 적게 자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람블라스 거리를 왕복하고,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흔적을 좇았다. 피카소가 자주 들르던 4guts에서 커피를 마셔야 했고, 그 뒤로는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타파스를 먹어야 했다. 그 멋지다는 카탈루냐 음악당에, 끊임없이 치솟는 몬주익 분수에, 끝없이 이어진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거리 곳곳에 놓인 명소들에 분주히 발도장을 찍어야 했다. 그러다 결국 이 사달이 난 것이다.     

 

 9월 지중해의 더위에도 등줄기 가득 느껴지는 한기를 지우려 온몸에 이불을 둘둘 감았다. 2주간 잡아놓은 임시거처의 좁은 침대에 누워 나는 생각했다.

“여기서도 이렇게 바쁘게 살면 여기까지 온 의미가 있을까?”  

익숙한 분주함에서 도망쳐온 내가, 그 도망의 비행기 값만큼의 보람도 없이 다시 또 분주한 삶을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서울에서와는 반대로 여유롭게 더 여유롭게, 천천히 더 천천히 사는 방식을 배우기로 했으면서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것 같았다. 6개월 간의 유럽살이를 단 몇 주 만에 실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어느새 희미해진 나의 결심을 되새겨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충분히 긴 호흡으로 살아보자. 그러기 위해서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으로 살아보자. 이곳을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처럼 보이는 한 명의 생활인으로. 이곳 바르셀로나의 낭만 가득한 풍경들, 내게는 하루하루가 아까운 이 풍경들을 오늘이 아니면 내일 보면 되는 현지 사람들. 이 풍경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이 사람들처럼 그렇게 지내보자. 궁리 끝에 내린 나의 방법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로부터 2주가 더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그 결심을 착실히 지키고 있다. 구경이나 관광, 여행에도 나만의 휴일을 정하기로 했다. 때론 계획했던 일정을 미루고 늘어지게 누워 낮잠(시에스타)에 들기도 했다. 황금 같은 주말, 진종일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스스로를 위한 근사한 한 끼를 느긋느긋 준비하기도 했다. 빨래를 널기 위해 오른 옥상에서 약간의 볕을 쬐는 것으로 하루치의 외출을 갈음했다. 달그락달그락 설거지를 하고, 소파에 등을 대고 누워 하염없이 천장의 무늬를 세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일의 시간이 이다지도 빨리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약간의 아쉬움도 느껴보았다.     

 

 휴일마저도 부산스럽게 보내던 서울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여유를 만끽하며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우리 삶에는 이완과 긴장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 앞으로 앞으로 부지런히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우리에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 휴식은 죄악으로, 여유는 터부로 여기며 스스로에게 채찍질만 하던 나는, 나 자신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을 탓했다. 휴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텐데, 아주 잠깐의 여유를 더 가졌더라면 무엇이든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따위의 늦은 후회들을 어루만졌다.


 한 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온몸을 웅크렸다가 이내 활짝 펴는 애벌레처럼, 적당한 리듬감 속에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어쩌면 한 발자국 더 멀리 나아갈 수도 있음을 온몸으로 배워가는 중이다. 서울에서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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