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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Dec 20. 2020

춘설(春雪)서정

늦었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밖은 흰 도화지를 펼쳐놓은 풍경이다.
입춘이 지난 봄의 초입에서, 요 며칠 따스한 봄기운이 감돌았다. 두터운 윗옷을 장롱 한구석에 밀어 넣어두곤 옷차림을 가벼이 하였건만, 날은 또다시 서늘하게 식고 하늘에선 봄눈이 폭폭 내린다.

  어제 하루 진종일 내리던 때아닌 봄눈은 그칠 기색도 없더니, 밤새워 열심히도 내렸나 보다.
창으로 반쯤 들이치는 아침볕에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니 이 도시는 완연한 설국이었다. 회백색 콘크리트 건물 위에도, 검붉은 벽돌 주택 지붕 위에도, 저 거리의 가로수 텅 빈 가지 위에도 순백의 눈이 소복소복 쌓여있었다.

 몸을 재촉해서 밖으로 나가, 걸음걸음 눈에 푹푹 빠지는 발자국의 끝을 바라보며 너른 눈길에서 기다리던 봄눈을 맞으니, 어느새 마음이 들떴다.
따뜻해진 기온 탓인지 지난겨울엔 눈을 보기가 참 어려웠다. 추운 겨울을 도탑게 덮어주어야 할 눈이 오지 않자 이 도시를 채운 것은 드나드는 이들의 찬 입김과 길가의 날카로운 결빙뿐이었다. 그래서 때늦은 이 눈이 더욱 반갑나 보다.

 때가 늦은 봄눈은 되려 때가 늦었기에 더욱 반갑다. 그만큼의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 어느 겨울철 눈보다 더욱 은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봄눈을 보며 무명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낸 나이 지긋한 중년의 배우가 주목을 받았을 때의 반가움이 떠올랐고, 여태껏 힘들었던 친구의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의 미소가 얼굴에 가득 피어났다.

  내 처지가 비슷해서 그런지 내 주변에는 유독 때를 놓친 이들이 많다. 저마다의 사연은 가지각색이지만, 그 어떤 이유로 사회가 정해놓은 속도보단 조금 더 뒤처져 걷는 이들 말이다. 그들은 인생길에서 남들과 자신이 걷는 속도를 비교하며, 때론 절망하고 때론 굽혔으며 더러는 울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특유의 해맑음은 조금 덜어냈으나, 겪지 않은 이들은 닿을 수 없을 만큼의 깊이를 얻었을 것이다.

 작은 분에 나무를 가꾸어 한 그루의 노거목을 만드는 분재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분재 중 굴곡 없이 쭉 뻗은 것을 직간이라 하고, 굽이굽이 굴곡진 것을 곡간이라 한다는데, 수집가들은 직간보다는 곡간의 수형을 가진 나무를 상품(上品)으로 친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애호가들은 키우기에 시간과 품이 더 들더라도 나무를 이리저리 굽혀 곡선을 의도한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곧음보다는 굽어짐이 더 자연스럽고 은은해서 그렇지 않을까 하고 이유를 찾아본다. 그리고 찾은 이 이유를 우리의 속도와 굴곡에 비추어본다.

 느리거나 굽은 것들은 은은하다.
조금 느리거나 더러 굽은 이들은 깊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그 느림과 굽어짐이 좋다.
느림과 굽어짐이 주는 그들의 그윽한 잔향이 다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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