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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Dec 20. 2020

장소를 그리며, 그날의 대천

당신의 대천은 어디인가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 심은 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버지는, 서울에서 자라 서울에 자리 잡고, 서울에 온 어머니를 만나 서울에서 나를 낳으셨다. 각박한 서울살이에 중간중간 서울 밖으로 내몰린 기억은 있으나, 가봐야 서울과 맞닿은 서인천이었다. 그것도 아주 잠깐씩.
나고 자란 내력 탓에 서울 말고는 달리 고향이랄 데가 없는 나는, 어머니의 고향이자 내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이 시작된 짠 내 나는 대천 바다를 가슴에 품고 산다.

 보령시로 편입되면서 큰 내라는 옛 이름이 변한 대천이지만, 길게 두른 뻘로 인해 옅은 수심, 잔잔한 파도를 가진 바다는 여전하다. 때문에 대천 바다는 물놀이를 하기에 적당하여, 여름이면 해수욕을 즐기러 온 가족들과 연인들, 통기타와 돗자리 둘러멘 청춘들로 북적인다. 그들에게 대천은 젊음과 낭만, 사랑과 설렘이 가득한 장소일 것이다.
나의 대천은 그들의 대천과는 조금 다르다. 내게 대천은 외할아버지를 닮은 잔잔한 위로이다.

 어릴 적 작고하신, 외할아버지는 따뜻한 분이셨다. 말없이 살뜰하고 묵묵하게 식구들을 보살피셨다. 외할아버지는 조잘조잘 대던 철부지 막내 손자인 나를 유난히 예뻐하셨다. 남들에게는 그토록 말씀이 없는 분이셨지만 어린 손자의 끊임없는 조잘거림에는 꼭 대꾸하여 주셨다.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느리고 여유로운 충청도 말씨로.

 드르륵 열리는 오래된 미닫이문 소리와, 외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 눈 부비며 일어난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시다가, ''넌 차암 부지런한 아이구나'' 하시며 조심스레 데리고 나가 볕 잘 드는 툇마루에 앉히셨다. 조잘거리는 어린것을 앞에 두고 외할아버지는 집 뒤편에 기르는 닭들에게 모이로 줄, 보라색 옥수수 알을 옥수숫대에서 떼어내셨다. 닭들은 여름 햇살에 바짝 말린 옥수수를 좋아한다며 빙그레 웃으셨다. 자기도 그 재미난 일을 해보겠다며 떼쓰는 어린 손자의 작은 손에 놓아주신 그 여름날의 옥수수알은, 진주보다도 곱고 탐스러웠다.

  어릴 적 대천에 갈 때면 항상 외할아버지와 함께 갯벌에 가 조개를 캤다. 발이 쑥쑥 빠지는 질척 질척한 뻘을 어린 손을 꼭 잡고 조심조심 걸어가셨다. 진흙 범벅이 된 고사리 손으로 몇 개의 조개를 캐다 지쳐 저 편을 바라보면, 외할아버지는 오래된 페인트통을 가득 채울 만큼의 조개를 캐어놓곤 하셨다. 다시 어린 손을 잡고 펄에서 돌아와 평상에 앉히시곤 해감한 조개를 화롯불에 구워 먹이셨다.

나는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외할아버지가 주시는 조개를 잔뜩 받아먹곤, 배가 부르면 노곤함에 누웠다가 이내 평상 한 편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그때 돌아누운 내 귀에서는 펄에서 들어와 미처 나오지 못했던 미지근한 바닷물이, 나에 대한 외할아버지의 오롯한 사랑처럼, 지긋이 새어 나왔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게 대천은 왠지 슬픈 장소였다. 대천에 데려가는 어른들의 표정은 이전과는 달리,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어딘가 어두웠다.

외할머니께서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서울에 올라오셨고, 그 때문인지 우리 식구들이 대천에 가는 빈도도 눈에 띄게 줄어갔다.
후에는 아주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만 드문드문 대천에 갔다. 어린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어딘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참 많이도 벅차던 이십 대의 초입에 나는 다시 대천에 자주 갔다. 바라는 바가 많아 매일매일 '진인사대천명'이라 되뇌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진력을 다했으나, 매번 돌아오는 것은 뼈  아픈 실패밖에 없던 나날이었다. 돌이켜보면 내일의 나를 위해 끼니는커녕 잠조차도 거른 채로 악착같이 버텨낸 수많은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되는 최선과 그에 대응해 최선을 다해서 내게 다가오는 실패들 탓에, 살아왔다기보다는 살아냈다는 말과, 아니 어쩌면 버텨냈다는 말과 더 잘 조응하는 수많은 날들이었다.

때마침 나를 버티게 해 주던 소중했던 사랑도,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버텨내려고 발버둥 치는 몸과 마음은 휘청거렸다. 그렇게 휘청이는 몸과 마음으로 닿는 발걸음의 끝엔 언제나 대천이 있었다.

  오래된 장항선 열차에 울적한 몸을 싣고 대천에 닿으면, 외할머니께서는 철제 소쿠리 가득 꽃게를 쪄오셨다.

주눅이 든 눈으로 별 말은 없이 살이 꽉 찬 꽃게를 실컷 발라 먹고 누우면 마음과 몸의 헛헛함이 얼마간 채워졌다. 상을 한 편에 밀어 놓고, 어릴 적 그때 그 아이가 된 것처럼 아무 걱정도 없이 노곤함에 졸다가, 해가 지면 가로등 비추는 밤바다를 혼자 거닐었다. 걷다가 다시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들 때쯤에 왈칵 눈물이 나오면 바다가 보이는 나뭇등걸에 앉아 주책도 없이 엉엉 울었다. 그럴 때면 외할아버지를 닮은 바다는 더 큰 파도 소리로 덤덤히 나의 울먹이는 소리를 가려주었다. 이렇게 실컷 울고 나면, 내 가슴 한편엔 얼마간의 시간을 더 살아낼 힘이 차올랐다.

그렇게 대천바다는 내가 마음 안 깊은 슬픔의 시간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나를 천천히 천천히 부축해주었다.  

 나에게 조금은 벅찬 겨울이다. 이 추위가 그치고 봄이 오기 전에 대천에 가야겠다.
또 살아가는 동안 언제고 나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버텨내기 힘든 날이면, 나는 대천에 가겠다.

외할아버지를 닮은 대천 바다는 언제나 그랬듯이 오롯한 사랑으로, 덤덤하고 조용하게 잔잔한 위로를 내게 건네며 슬픔을 버텨낼 힘을 줄 것이다. 얼마간의 세월을 또다시 살아낼 힘을 건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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