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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Dec 25. 2020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최고의 처세, 진심이 담긴 존중

 사마천이 치욕적인 궁형을 견디고 써낸 불후의 역사서 '사기' 이 책은 수많은 영웅호걸의 삶에 대한 집대성이며, 온갖 인간 군상을 다룬 최고의 인간학 교훈서이자 처세서이다. 그중 의인 5명의 이야기를 담은 '자객열전'에는 '사위지기자사'라는 말이 나온다.
 
 진나라의 무인 예양은 일찍이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겼다. 그러나 그들은 예양을 예사 아랫사람과 다를 바 없이 홀대하였다. 이로 인해 예양은 그들을 떠나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고 자신을 남다르게 아끼고 존중한 지백을 주군으로 삼고 그에게 충성을 다한다. 훗날 지백이 그의 적 조양자에게 잡혀 멸문지화 당하자, 예양은 산으로 몸을 숨기고 목숨을 건 복수를 다짐했다. 그때 그가 남긴 말이 바로 ''사위지기자사-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이다.

 이 말을 한 후에 예양은 스스로 죄인이 되어 조양자의 궁궐 화장실 벽을 바르는 천한 일을 하거나, 몸에 옻칠을 하여 나병 환자로 꾸미고 숯가루를 먹어 목소리를 바꾸는 등 자신의 치욕을 견디면서까지 자신이 모시던 주군의 복수를 도모한다. 이내 조양자에게 발각되어 끝내 죽음을 면치 못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충심을 꺾지 않았다.

 내게는 이상의 '사위지기자사' 일화가 단지 선비의 충이나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방식에 대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이 일화를 뒤집어보자면 지백이 예양이라는 의리 있는 벗을 얻은 이유는 지백이 그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소중하게 대하였기 때문이다. 즉 이 일화는 사람을 대할 때 '진심이 담긴 존중'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유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수많은 이들과 관계 맺는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나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나의 연인이 되기도 한다.
그들 중 누군가는 나의 진가를 알아보고 나를 '나 자체로' 존중하고 소중하게 대한다. 반면 누군가는 '우정'이나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나를 폄하하고 자신의 구미에 맞게 나를 바꾸려 한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가진 가치는 빛을 받을 때 더 찬란하게 빛을 내는 '진열장의 보석'과도 같아, 나를 둘러싼 이들의 진심 어린 존중을 받을 때 극대화된다. 그래서 어느새 나를 바꾸려는 이들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이들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이 사회에서, 누군가를 진정 얻으려거나 소중한 어떤 이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처세는 바로 상대에게 '진심이 담긴 존중'을 보여, 상대의 가치가 더욱 빛을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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