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진종일 매스컴과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어느 경비 노동자의 죽음’.
입주민의 지속적인 ‘갑질’과 모욕을 이기지 못하고 억울하게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아무도 그의 아픔을 주목하지 않았다.
10년을 왕래한 이 도심 한복판 삐까뻔쩍한 고급 건물. 자주 안부를 묻는 청소노동자 아주머니께서 제대로 된 휴식공간도 없이 장애인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식사를 하시는 장면을 목도하기 전까지, 나는 그런 일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들로 대변되는 노동자들은 억울함과 서러움 속에서 그래도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데, 그 대단한 노동법은, 선거철에만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바쁘신 정치인 분들은, 심지어 약자를 위해 일한다는 진보정당은 여태껏 누구를 위해 존재했을까.
내가 아는 이가 지척에서 겪는 억울함과 슬픔조차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을 위해 작게나마 행동하지도 못하면서 ‘약자의 안녕’을 위해 배운다는 나의 전공 공부는, 나의 입과 글에서 간간이 나오던 노동자들의 아픔에 대한 거창한 생각들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가식적인 관심은 여태껏 무엇을 위해 존재했을까.
부끄럽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데. 왜 모든 인간이 다 존엄하게, 직업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살아가지는 못할까.
‘활자는 반짝거리며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의 시 '사령' 중
오늘, 부끄러운 마음으로 존경하는 시인 김수영의 시구를 고쳐 쓴다.
‘활자는 반짝거리며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약자들의 아픔을 말하는데... 우스워라 그들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2020년 5월 12일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