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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Feb 13. 2021

데생

예술가에게

 애써 웃는 이의 가슴 복판엔
 갇힌 슬픔이 가득합니다.

 콩테 자욱 손에 깊게 베인
 늙은 화가는 그의 숨은 슬픔을
 캔버스에 여실히 실어냅니다.

 가난하게 창백한 그의 마음과
 콩테 끝에 그려진 묵회색 얼굴은
 참 많이도 닮았습니다.


작가의 말.

 예술가의 작품은 분명 그 작품을 탄생시킨 예술가의 정신과 태도를 닮는다.

어떤 화가의 그림은 화가 자신의 사유와 시선을 닮으며, 하나의 글은 그 글을 써낸 작가의 삶과 생각을 빼닮는다.
이 점에서 예술은 끊임없이 작가 내면의 모든 굴곡과 모순을 바깥으로 진솔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숨기려 해도 도저히 숨겨지지 않는, 완벽하게 자신을 숨겼다 하더라도 이를 숨겼다는 사실마저도 이내 드러나지는 예술의 솔직성 앞에서 예술가는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자기만족의 양가적 부침 위에 서게 된다.

 글을 쓸 때면 나는, 문득 내 앞에 놓인 백지의 공백이 두렵다. 그 공백을 채워나가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드러날 스스로의 정신과 태도의 파급을 생각하게 된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그 글은 나의 부덕과 수치를 스스로에게 여실히 보여줄 것이고 이내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운이 좋아 누군가가 그 글을 읽어준다면, 그들에게 나의 그런 부정적 특성이 전해졌다는 사실이 언제고 나의 발목을 옭아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쭙잖은 글을 써내는 것도 예술이라면, 나는 안다.
예술을 한다는 건 생각과 마음을 오래도록 곰삭힌 후 마침내 자신만의 언어로 무언가를 지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 과정은 온갖 자기 부정과 자기기만, 자기만족과 오만 따위와 함께, 두렵고 외롭고 괴로운 시간들을 오롯이 홀로 감내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모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찰나 같은 충만함을 위해, 흰 종이의 두려운 공백을 홀로 견디며 자신만의 예술을 지어내고 있을 모든 예술가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들 자신을 빼닮을 그들만의 예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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