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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Nov 20. 2021

녀석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저마다의 삶에서 숱한 고비들을 너끈하게 넘어온 우리 식구들이지만, 단번에 그 모두를 울릴 수 있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삐'라는, 다소 촌스러운 두 글자이다.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가을날의 아침, 화장실서 나온 엄마는 품속에서 하얀 솜뭉치를 꺼냈다.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9살의 어린 나는 졸린 눈을 꿈뻑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게 도대체 뭐지?' 아빠와 누나는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새벽녘 아빠의 품에 몰래 안겨 우리 집에 침입한 작디작은 생명체가 마침내 우리 식구로 받아들여진 최초의 순간이다.


 그날 하굣길은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저 빨리 집으로 달려가, 하루아침에 내게 생긴 귀여운 선물을 품에 안고만 싶었다.

집에 도착해 보니 녀석은 눈치를 실실 보고 있었다. 벌써 마루에 실례를 해 엄마에게 한 번 혼이 났단다. 엄마는 녀석의 그런 모습이 무진 사랑스러워 녀석 몰래 빙긋 웃고 있었다. 나는 싱크대 아래로 숨어든 녀석을 불러 꼭 그러안았다. 고사리 손으로 녀석의 흰 털을 빗어주며 군데군데 붙어있는 먼지를 털어냈다. 녀석은 내 품에서 안도감을 얻은 모양이었다. 녀석의 콩닥거리던 심장은 서서히 잠잠해졌다. 내 손을 채우는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촉감 덕에 나는 나대로, 짙은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아주 잠시였다. 집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녀석은 컹컹 짖어댔다. 어렸던 나는 놀라 방으로 숨어 버렸다.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을 쓰다듬던 손길의 부재를 느낀 녀석은 더 크게 짖어댔다. 그러나 영문을 모르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 아직 아이에 불과했던 나는, 혹여 녀석에게 물리지는 않을까 방에 엎드려 작은 기척조차 내지 않았다. 녀석과 나의 팽팽한 대치를 끝낸 건 누나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누나는 방에 숨어있는 나를 다독였다.

"사람 소리가 나서 짖은 거야, 안 물어 괜찮아"

그리고는 능숙하게 녀석을 달랬다. 그때가 아마, 살면서 누나와 나 사이에 놓인 3살의 터울을 가장 크게 느낀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사건 이후 녀석이 나를 보는 눈빛이 어딘가 달라졌다. 마치 어린 동생을 보는 우리 누나의 익숙한 눈빛이 조막만한 녀석에게서도 느껴졌달까? 그렇게 한순간 나는 녀석의 보호자에서 피보호자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 뒤로 우리 둘은 장장 13년을 그렇게 지냈다.

"예삐야 오빠 학교 가게 깨워라"

아빠의 말이 들리면 녀석은 내 방으로 들어와 컹컹 짖었다. 때때로 정해진 시간이 되면, 아빠의 말을 듣기도 전부터 나를 깨웠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와 재수, 삼수 그리고 대학. 해마다 달라지는 나의 기상시간을 녀석은 귀신같이 알아챘다. 내가 잠시라도 더 자려고 늑장을 부리면 녀석은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잠결에 골이 난 내가 녀석에게 꿀밤을 놓는 경우가 많았는데도 녀석은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나보다 부지런한 건 늘 녀석이었으므로, 아침나절의 실랑이에서 나는 예삐에게 늘 질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녀석에게 준 것이라곤, 그저 맛있는 간식을 나누어 주던 것(예삐는 특히 쥐포튀김과 육포를 좋아했다. 이 점에서 나와 취향이 잘 맞았다.), 그리고 녀석의 요구에 맞추어 밥과 물을 주고 간간히 산책을 시켜주던 것 밖엔 없었다. 그러나 녀석은 언제나 내게 지고한 사랑의 몸짓을, 다정한 신뢰의 눈짓을 건네주었다. 부모님께 잔뜩 혼이 난 날에도, 친한 친구와 다투어 속상해하던 날에도, 첫사랑이 떠나 슬퍼하던 날에도 녀석은 언제나 내 방에 들어와, 남몰래 울고 있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곤 조용히 내 무릎 위에 올라 한참 동안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녀석은 보송보송한 자신의 털을 하염없이 적시는 나의 눈물방울을 모르는 척 견뎌주었다.


 열병처럼 삶을 앓던 스무 살의 나날, 생의 의지도 의욕도 잃어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있던 내 곁에도 늘 녀석이 있었다. 세월 탓에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하루 진종일 같은 자리를 지키던 녀석이 새벽녘이면 언제나 내 방 문을 긁었다. 소란에 깨 나가보면 언제나 녀석이 문턱에 턱을 괴고 엎드려 있었다. 처음에는 어딘가가 불편해서 저러나 싶어 녀석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건네 보았다. 그러나 녀석의 목적은 물도 밥도, 그 좋아하는 산책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의 온기와 기척을 느끼려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시절 녀석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다만 짐작해 보건대 하루하루 망가져가는 나를 돌보기 위한 녀석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덕분에 나는 매일 웃었고, 다시 하루하루 살아낼 힘을 얻었다.


 대입을 위해 재수와 삼수를 하던 시절, 식구들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녀석에게 거진 하루에 한 번씩 부탁했다.

"예삐야, 오빠 대학 가는 건 보고 가야지. 힘들어도 조금만 버텨줘. 네가 가면 성우가 많이 힘들어할 거야"

아빠도, 엄마도, 내겐 늘 틱틱거리던 누나조차도 서서히 죽어가는 녀석에게 마지막으로 바라는 건 단 한 가지였다. 오랫동안 휘청거려 조금의 슬픔에도 쉽게 무너질 것만 같은 나를 위해 예삐가 부디 더 오래 버텨주는 것.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고비를 능숙하게 넘어주는 것.

그런 식구들의 마음을 아는지, 녀석은 내가 가까스로 대학에 들어 간 그해 봄까지 내 곁을 지켜주었다. 늘어난 기도로 숨을 헐떡이면서도, 눈이 보이지 않아 집안 여기저기에 부딪히면서도, 밥을 잘 넘기지 못해 하루하루 야위어 가면서도 녀석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순서를 온몸으로 미루었다.

   

 녀석이 떠나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대학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3월 9일의 밤, 나는 친구들과 거푸 술을 마셨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활을 시작했다는 설렘을 만끽하며 새 학기의 시끌벅적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의 유쾌한 술자리는 예상보다 일찍 끝이 났다. 그럼에도 나는 집에 가기가 무척이나 싫었다. 평소 같으면 얼른 집에 가 몸을 뉘이고 싶었을 텐데 그날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나의 귀가를 최대한 늦추고만 싶었다. 자리를 함께하던 친구들을 차례차례 보내고 새로운 친구들을 맞이하는 일을 세 번이나 반복하는 동안에도, 나는 망부석처럼 그곳에 있었다. 그러던 중 휴대전화에 수신 신호가 울렸다.         

"아들, 예삐를 이제는 보내주어야 할 것 같아. 지금 바로 집으로 올 수 있니?"

수화기 너머 아빠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몸은 그대로 굳었다.

 

 굳은 몸을 허청허청 추스르며 술자리를 빠져나와 다급히 택시에 올랐다. 집에 도착해보니, 녀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녀석에게 다가가 울며불며 "예삐야" 하고 부르니 녀석은 천천히 귀를 쫑긋 세웠다.

녀석은 보이지도 않는 두 눈으로, 자신을 에워싸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식구들을 한 명 한 명 쳐다보았다.

"예삐야, 나는 네가 있어 너무 행복했고 정말 고마웠어. 그동안 나를 돌보느라 고생 많았어. 이제 그만 아파해도 괜찮아"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녀석은 내게 답을 하고 싶었는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끙끙거렸다. 그날 밤, 녀석은 처음 우리 식구들에게 와준 날의 모습 그대로, 아빠 품에 안겨 식구들을 떠났다.


 녀석이 식구들의 곁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되었는데, 나는 녀석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녀석에 대한 기억이 내겐 여전히 생생해서, 내 마음에는 녀석이 남긴 흔적이 너무나도 많아서.

녀석이 내게 건넨 사랑의 눈빛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길러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와 마주한 누군가가 혹여 불편하지는 않을까 자주 살펴보는 버릇도, 작고 여린 존재들에게 무언가를 자꾸만 챙겨주려는 모습도, 그렇게 내가 잔정이 많은 사람이 된 것도 다 녀석과 함께 보낸 시간의 흔적이다. 세상에 시달려 마음이 울퉁불퉁해 지는 날이면, 나는 언제고 녀석이 내 안에 남긴 그 흔적들을 천천히 짚어본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의 온도가 조금 더 올라가는 것만 같다.


 엄마와 아빠는 매년 한식 때마다 예삐가 묻힌 동산에 오른다. 예삐가 좋아할 쥐포튀김과 육포, 그리고 곁에 심어줄 예쁜 꽃을 한 움큼 들고서. 돌아오는 한식 날엔 엄마, 아빠와 함께 동산에 올라야겠다. 오랜만에 다시,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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