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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Oct 23. 2021

한 그릇 우주

 "밥은 먹었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첫마디는 또 '밥'이다.

가만 보자... 그러고 보니 아까 아버지와의 통화에서도 시작이 비슷했던 것 같은데...

의아함을 가질 찰나, 누나가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던 나는 묻는다.

"누나, 밥은?"


 시도 때도 없이 시작되는 우리 식구들의 밥타령은 그 계보를 헤아릴 수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아버지의 엄마도, 엄마의 엄마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늘, "밥은 먹었니" 물었다. 그 점에서 보건대 아마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우리 식구들은 늘 서로의 '밥 안부'를 물으며 그렇게 지내왔을 것이다.


 그런 집에서 자란 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묻는다.

"밥은 먹었니?" "밥은 먹고 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Yes 혹은 No.

밥을 먹었다는 대답에는 안도한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마음이 안절부절못해진다. 그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에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마저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는 빵이라도 먹여야 한다.

간혹 주전부리로 끼니를 대충 때웠다는 말은 No에 가까운 대답으로 간주한다. 그걸로 돼냐며 미간을 찡그린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그 사람에게도 기어이 무언가를 먹이고야 만다.


 함께 밥을 먹다가 친구들은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밥에 집착하느냐고, 혹시 그렇게나 배가 고프냐고.

나는 말한다. 밥 안부를 묻는 건 인정머리 있는 행동이라 생각한다고. 우리 집에서 밥은 그런 의미라고.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두 할머니의 품에서 나는 그렇게 배웠다. "밥은 먹었니"하며 묻는 행동은, "나는 널 생각하고 있다", "혹여라도 너의 마음이 지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다"라는 말의 함축이라고.


 그래서인지 내게 "우리 언제 밥 한 끼 하자"하는 사람들의 인사치레는 도무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말이다.
저 말을 건넨 사람의 마음은 무척이나 넓고 따뜻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마법 같은 주문이다.

그 말을 들으면, 나라는 사람은 저 사람을 둘러싼 이 넓은 우주 수많은 사람들 중 따뜻한 밥 한 끼 나누고 싶은 좋은 사람이겠구나 하며 호들갑을 떨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한 상에 마주 앉아 밥그릇을 부딪히는 짧고 긴 시간들은 서로에게 선사하는 헤아림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이의 마음에 안부를 건네고, 혹여 지쳤을지도 모를 서로의 마음에 넉넉한 위로를 건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밥 한 끼 먹자는 상대방의 말은 그 포근한 시간들을 함께 하자는 소망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의미란 의미는 전부 다 갖다 대며 흔하디 흔한 밥 한 끼를 주제로 이렇게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전례 없던 전염병이 우리의 일상을 뒤덮은 오늘날의 모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람을 향한 사람의 거리두기가 서로를 위한 배려로 둔갑한 요즘이다. 사랑할수록 우리는 더 멀어져야 한다. 상대방과 마주하고 싶은 나의 마음으로 인해 그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

따뜻하고 맛있는 밥 한 끼는커녕, 상대방과 마주한 채 물 한잔도 편히 마시지 못하는 시대를 우리는 견디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따뜻한 밥 한 끼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밥 먹자"라는 따뜻한 말조차 건넬 수 없는 이 시대의 슬픈 단면은, 반대로 우리로 하여금 함께 먹는 밥 한 끼의 소중함을 떠올리게 한다. 밥 한 끼에는 사람을 향한 사람의 넓고 깊은 마음이 담길 수 있음을, 그리하여 우리는 사람들의 밥 안부를 걱정하면서 그들의 마음속 표정이 혹여 어둡지는 않을지 헤아리고 있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듯, 어쩌면 밥 한 끼에는 우주보다 넓고 깊은 의미가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사랑하는 이들과의 밥 한 끼가 더없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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