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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Sep 24. 2021

낯선 이의 다정함

  낯선 이가 건넨 예상치 못한 다정함에 나 자신의 삶의 태도를 돌아본 기억이 있다.

7월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의 한복판이었고, 경기도 용인의 한 병원 앞이었다.


 당시 나는 경기도 용인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부대에서 내게 맡긴 임무는, 각자만의 사정으로 인해 군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고 호소하여 각급 부대에서 보내진 장병들을 2주간의 심사대기 기간 동안 큰 사고 없이 관리하고, 국방부의 심사 결과에 따라 원소속 부대나 사회로 보내는 일이었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사회복지학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곳에 보내졌고, 나는 내게 의무적으로 부여된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 그곳에서 열심히 '전공'을 살려나갔다.  

 

 전입을 간 첫날, 앞으로의 나의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스스로 다짐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름의 아픔을 가진 심사대기병들에게 친절과 다정으로 일관하자고, 그게 나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풋내기 이등병의 이러한 다짐은 얼마 가지 않았다.

내가 돌보던 사람들 중 몇몇은 자신이 가진 아픔 뒤에 숨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피해의식과 피해망상을 가진 몇몇은 말도 안 되는 모함으로 나를 곤경에 빠지게도 했다. 가만히 있어도 억울하고 갑갑한 군생활에서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자 나의 마음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끝내 찡그린 표정과 딱딱한 말투로 심사대기병들을 대하게 되었다.   


 잔뜩 찡그려 못나진 얼굴로 보낸 그 몇 달의 시간 동안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잠시 주춤하던 감염병이 다시 기승을 부려 모든 장병의 휴가가 통제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달 한 달이 쌓이고 쌓여 자그마치 8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여러모로 갑갑한 나날이 지속되자 나의 몸과 마음은 많이도 지쳐 어느덧 한계를 향해 가고 있었다. 누군가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화를 내며 드잡이를 했고, 전입 간 이래로 하루도 거른 적 없던 공부도, 틈틈이 연습하던 글쓰기도, 부지런히 하던 운동도... 무엇하나 제대로 이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스스로의 감정을 어떻게 해소할지 몰라 마음이 소란하던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돌보던 한 심사대기병이 혼절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화장실을 가는 도중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곁에 있던 나는 그를 들쳐 메고 의무대로 향했고,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곧바로 구급차를 타고 그를 다시 영외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그곳 의사가 진단한 혼절의 원인은 스트레스성 저혈압,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구급차로 돌아가 그의 회복을 기다렸다. 푹푹 찌는 구급차 안에서의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자그마치 7시간을 구급차 안에 쪼그려 앉아있어야 했다.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식사 때를 한참이나 놓쳐 배는 고프고... 놀란 정신이 돌아와 다시 마음속에서 짜증이 밀려오려던 차에 머리맡 차창에서 '똑똑' 소리가 났다.


 창문을 열자 한 어머님께서 내게 말씀을 건네셨다.

"아까부터 있던데 밥은 먹었어요?"

그 어머님의 따뜻한 한마디에 코 끝이 찡해진 나는 집에 계신 엄마에게 하소연하듯 답했다.

"아뇨, 여태 못 먹고 있어요! 그래도 곧 끝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시던 그 어머님은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멀리 떠나가셨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드신 채로 창문을 다시 두드리셨다.


 '똑똑'

"군복 입은 모습 보니까 우리 아들 어릴 때가 생각나네.

걔도 이렇게 늠름한 모습으로 얼른 회복해야 할 텐데, 이거 김밥인데 방금 샀어! 먹고 해요. 고생이 참 많아요"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오래된 병원 슬리퍼, 그리고 내게 건네신 짧은 말씀의 맥락에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어머님은 오랜 시간 아들의 병간호를 하신 모양이셨다. 건강했던 아들이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질까. 그분은 그 찢어지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으셨을 텐데도, 고생하는 낯선 이를 위해 다정함을 건네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크게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무일푼의 군인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감사를 표하는 일밖엔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부대로 돌아오는 구급차 안에서 나는 생각에 빠졌다.

'과연 나는 그 어머님처럼 내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타인을 위해 기꺼이 친절과 다정을 베풀 수 있을까?'

'반대로 내가 아무리 좋은 상황에 놓여있어도 낯선 이에게 조건 없는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나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조차 저렇게 타인에게 따뜻함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내가 여태껏 이토록 작은 일들에도 쉽게 화를 내고, 너무나도 쉽게 냉정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 나의 찡그린 얼굴은 맑게 개었다. 낯선 이가 건넨 낯선 다정함이, 내게 익숙해진 '불친절'을 내게서 밀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머님을 닮아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자, 부대 안에서 최대한 많이 웃고 최대한 밝게 지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금씩 더 친절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친절과 다정은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평생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

나는 그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스로를 이렇게 격려한다. 그날 나를 향한 그 어머님의 작은 친절은 내가 읽고 들은 몇백 권의 책, 몇십 번의 수업에서도 찾을 수 없던 값진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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