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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우 Nov 27. 2021

죄 없는 이들에게 부과된 잔인한 형벌, ‘기아’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인간성을 잃은 세계적 부조리 ‘기아’

 약 30년 전 진행된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이하 FAO)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농업생산물의 양은 약 120억 명을 1년 동안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수준을 능가했다고 한다. 당시의 농업 생산력보다 현대(21세기)의 농업생산력이 월등히 발전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세계 농업생산물의 양은 전 세계 인구의 약 2배 이상을 1년 동안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유엔(UN)에서 발표한 <2019년 세계 식량안보와 영양 상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약 8억 2000만 명의 인구가 기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26.4%에 해당하는 약 20억 명의 인구가  중간 수준 이상의 식량 안보 결여 상태에 놓여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세계 인구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정도로 과잉 생산되고 있는 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단한 정의의 원칙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우리는 이런 현상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세계적 부조리에 대한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 장 지글러의 처절하고도 철저한 기록이다.


 필자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가가 이 책에서 밝힌 논점에 따라 기아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생산되는 이 식량들이 도대체 왜 지구 한 편에서 굶주리며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못할까에 대한 원초적 질문에서 나아가. 세계의 인간성을 잃게 하는 이 지극히 부조리한 현상을 근절하는 데에 일조하기 위하여, 휴머니즘적 가치와 동료 인간의 존엄을 무시한 채 자행되는 여타의 행동에 대하여 면면히 고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세계의 절반을 굶주리고 있는가?

 흔히들 ‘기아’라는 말을 들으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 분포하는 제3세계 국가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국가들의 비교적 열악한 사회 정치적 인프라 등을 생각하며, 기아의 원인이 해당 국가 내부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장 지글러 역시 이 생각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실례로 칠레와 부르키나파소를 예시로 들며 각국의 정치적 혼란이 기아 문제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각국 내부의 문제로 보이는 이 원인의 이면에는 서구 열강의 이기심에서 비롯한 다양한 외부적 개입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저자가 예시로 든 ‘아옌데의 비극’과 ‘상카라의 비극’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아옌데의 비극 먼저 살펴보자.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 1970년 칠레 인민전선의 지지를 받아 칠레 대통령에 오른 아옌데는, 고국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5세 이하 아이들에게 매일 분유 0.5L씩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내건다. 처음에 이 정책은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채택되어 실제로 집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소아 영양실조로 인한 다양한 질병들을 비롯한 칠레의 기아 문제가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스위스 다국적 유제품 기업 네슬레의 방해로 이 정책은 무산되고 만다. 네슬레는 칠레 민주 정부의 출현을 꺼린 미국 닉슨 정부의 외압과 기업의 이윤이라는 목적에 의해 1971년 칠레 정부와의 협력 거부 방침을 내렸다. 이로 인해 분유 공급에 차질이 생긴 칠레 정부는 공약을 철회하고 만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인해, 아옌데는 정권을 잃고 무참히 살해되었으며 그가 추진한 이 정책 역시 무용지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결과 정권이 들어서기 전처럼 수만 명의 아이가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상카라의 비극이 있다. 쿠데타로 1983년 아프리카 극빈국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상카라는, 가난한 농민들을 괴롭히던 인두세를 폐지하고 토지를 국유화하는 등 개혁적인 정책을 통해 고국의 경제적 성장을 조금씩 이루어 냈다. 이를 통해 부르키나파소의 기아 문제는 해결될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도 잠시, 그의 좌파적 정치 성향을 견제한 미국의 개입으로 그는 살해되고 만다. 미국이 그의 측근 콩파오레를 포섭하여 그를 통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친미정권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패가 만연하고, 외국에 대한 극단적 의존과 방만한 재정으로 인해 농민은 다시 절망했으며 기아는 다시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서구 열강 탓에 비롯된 기아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1989년, 냉전 시대의 붕괴 이후 미국은 워싱턴 합의를 통해 제3세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경제체제를 금융 자본을 위시한 미국식 시장 경제 체제로 이행시킬 것을 선언한다. 이 결과 개발도상국에 정부의 규모 축소, 민영화, 시장 자유화, 관세 인하 등의 신자유주의적 가치들이 개발도상국의 국내적 정책으로 반영되었다. 이는 불가역적인 세계화의 물결과 맞물리면서 각국에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우선 사회적 인프라와 정치 문화적 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은 개발도상국 국가들이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국가 내부적 빈부격차를 불러왔다. 자본적 우위에 있던 국내 기득권자들에 의해 가난한 농민이 착취당하고 생계의 수단을 빼앗기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로 인해 가난했던 농민이 더더욱 가난해지는 역설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이러한 열악한 국내적 입지 속에서 세계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내몰린 제3세계 국가들은 금융자본을 독점한 서구 열강과 세계적 기업의 이기적 행태에 갈수록 궁핍해졌다. 실례로 뉴욕이나 런던 혹은 다른 곳에 본부를 둔 거대 다국적 기업 및 헤지펀드와 국가 펀드들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경작지를 헐값에 대대적으로 사들였다. 자국의 시장에 팔 채소나 과일 등을 기르거나 바이오에탄올, 바이오디젤과 같은 자국에 이익이 되는 연료를 생산하기 위한 사탕수수밭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이 때문에 2010년 한 해 동안 사하라 이남 지역 농부들은 4100만 헥타르의 비옥한 농지를 이들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또 다른 예시로는 시카고 곡물 거래소가 있다. 시카고 곡물 거래소는 전 세계 곡물 가격을 정하는 농업 원자재 거래소인데,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투자자들은 이곳에서 쌀, 밀, 옥수수, 콩 등의 주식 농작물을 헐값에 사 높은 가격에 되판다. 경제학자 하이너 플라스벡에 따르면 2008년 일사분기 동안 주식 농작물 가격 상승분 중 이들이 이곳에서 투기를 통해 가져 간 이득이 37%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선진국의 투기꾼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주식 농산물의 가격을 상승시키고, 제3세계의 국가들에서는 구매할 수 없는 수준의 높은 가격대를 형성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국에 제3세계의 기아와 빈곤을 유발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기아 문제 해결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제3세계 아이들이 요람에서부터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현실과 이유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기아 문제 해결의 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원인을 해결해야 할 것인지, 또 어디에 방점을 두고 이 현상을 해결할지에 대하여 고찰해보자.


 위에서 필자는 기아 문제의 원인을 크게 국내적 원인과 국외적 원인으로 나누었다. 이는 제3세계 당사국 국민이 아닌 우리의 입장에서 다시, 해결 불가능한 원인과 해결 가능한 원인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세계의 국내적 원인에 해당하는 여러 사회 정치적 문제들에 당사국의 국민이 아닌 우리가 개입하는 것은 타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며,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집중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원인은 우리의 입장에서 일정 수준 해결 가능한 원인, 즉 우리가 속해있는 범세계적 차원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제3세계 국외적인 원인일 것이다.


 우선 우리는 선진국의 정치공학적 이기심에서 비롯한 제3세계의 정치적 혼란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칠레와 부르키나파소의 예시에서 보듯이 선진국은 전통적으로 각국의 경제적 이익과 세계적 역학관계에서의 우위를 위해 제3세계의 국가들의 자립을 방해해왔다. 제3세계 나라들에, 각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세우고 이를 거부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경제적 제재를 가해왔다. 우리는 이러한 자국 중심적인 외교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개개인이 이 정치공학적 행위들의 비인간성을 깨닫고, 서로 연대하여 이 현상에 맞서는 세계시민단체를 구성해야 한다. 선진국의 얌체 같은 행위를 끊임없이 고발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인간성을 잃은 배금주의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해 고찰해 보아야 한다.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가져오는 기아라는 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돌이켜 보고 신자유주의가 과연 우리 인류의 경제와 문화를 융성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안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1948년 세계 인권선언으로 제시된 천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인의 인권이라는 가치를 다시금 상기하고 이 가치를 훼손하는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에 대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시민으로 맞서야 한다.


 이 모든 방법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우리를 비롯한 선진국의 국민 개개인의 의식변화와 기아문제 해결에의 자발적 참여일 것이다. 선진국의 국민 개개인은 인류애라는 거시적 가치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연대하여 기아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기민한 해결책들을 제시하는 등 세계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기아의 굴레에서 벗어나 어느덧 선진국 대열에 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은 이제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동료 국가의 국민들에 대한 책임 의식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모두 이 책을 들고 함께 고민하자.  인간만이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결국 기아 해결의 길은 우리 각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우리가 변해야 그들의 삶이 변한다. 우리가 변해야 그들의 굶주림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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