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를 잡지!

자발적 백수의 심심한 세상을 활자로 가득 채우다.

by 저니맨

잡지를 잡지!


할일없이 소일하는 날, 하루를 꽉 채우고 싶어지면 나는 집 근처의 도서관에 간다. 오늘도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도서관을 향해 걷는다. 그곳에는 내 하루를 다채롭게 채워줄 다양한 잡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장소에 가서 시간을 바쁘게 보내는 것을 두고 하루를 꽉 채웠다고들 한다.

그러나 내게 있어 꽉 찬 하루는 온전히 도서관에서 보내는 하루다. 잡지 속 시선을 사로잡는 광고 문구들과 다양한 정보는 나를 가득차게 만든다. 단순히 정보들의 나열과 축적이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사색과 상념들이 나를 채우는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여행부터 패션, 건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잡지를 도서관 책상위에 두고 탐독하기 시작하는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면 2시간은 어렵지 않게 삭제된다.

서른살의 ‘자발적 백수’ 시절, 나는 내 삶의 전부인 것 같았던 회사를 퇴사한 뒤였기에 항상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이 들었고 모든 일상에서 나를 조여오는 한가함과 자주 마주했다. 일이 없었기에 시간이 넘쳤고 분에 넘치게 부여된 시간의 파도에서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시간과 여유는 백수의 적이었다. 그 후로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문학작품이나 전문 서적을 진득하니 읽는 것도 좋았지만 집중력이 부족해 오래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비치된 화려한 색감의 여러 잡지들에 눈이 갔다. 지면의 글씨가 일반 책들보다 커서 눈에 쉽게 들어온다는 장점이 컸다. 하지만 이내 잡지만의 진짜 매력을 발견했다.

빳빳한 종이의 억센 질감, 코팅된 종이 특유의 냄새, 그리고 종이를 넘기는 소리까지. 문학작품과 달리 잡지를 읽으면 그 내용과 활자가 표창처럼 내 피부에 콕콕 박히는 느낌이었다. 잡지만이 가진 매력에 푹 빠진 이후, 월 초마다 나오는 월간지 새 책을 읽는 느낌은 나에게 새 옷을 입는 것 만큼이나 설레고 즐거운 일이 되었다.

이렇게 도서관에서 다양한 잡지를 읽으며 공허함을 밀어내고 내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잡지에 쌓여 꽉 찬 하루가 내 백수 생활을 내내 빼곡히 채웠다.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내던져진 뒤, 자신감을 잃고 일상에서는 아무런 감흥도 못 느낄만큼 무기력해졌던 내게 도서관은 그렇게 ‘구원처’가 되었고 잡지는 자연스럽게 ‘구원자’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잡지를 읽기 전, 항상 A4용지를 준비한다. 도서관에 가면 경건한 태도로 가방에서 미리 챙겨간 A4 용지를 꺼내 반으로 두 번 접는다. 잡지에서 본 이로운 정보나 마음에 드는 표현과 문구를 종이에 옮겨적기 위함이다. 나는 족히 백장이 넘을 이 종이들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책장 대청소에도 매번 살아남는 내 보물1호가 되었다.

잡지에서 옮겨적은 다양한 분야의 값진 정보와 비범한 표현들을 증발시킬 수 없었고, 이를 적고 간직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 종이들은 내가 수많은 취업시험의 논술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잡지를 읽던 내 일과는 그 당시 그 어떤 취업준비생보다 꽉 차고 알찬 하루였다고 자부한다.

이렇게 여행, 패션, 교육만 아니라 건강, 시사 등 다양한 분야의 잡지를 읽다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론, 읽은 잡지를 다시 제 위치에 놓아두는 것은 잊지 않는다. 잡지는 다양한 정보를 품고 여러 사람의 손을 탈수록 그 가치를 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잡지들을 읽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니 하루가 가득찬 기분이다. 도서관을 나오며 내 하루는 가득찬다. 오감도 가득찬다. 잡지의 질감, 종이 특유의 냄새,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로. 그리고 나는 다시 하루를 꽉 채우고 싶어질 때면 도서관에 간다. 잡지를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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