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첫 수업, 그리고 30묶음의 약속

by 몽땅연필

9월 28일.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 * *


노트북 앞에 앉았다.

화면 속 라파엘 선생님과 마주했다.

설렘과 긴장이 반반이었다.


* * *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은 프랑스어를 '어떻게' 공부할지 이야기해볼게요."


나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미리 풀어온 문법 문제지와 독해, 듣기를 함께 점검했다.

진도를 나가며 선생님은 프랑스어와 한국어의 사고방식 차이를 이야기했다.


같은 상황도 두 언어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단순히 단어를 치환하는 게 아니라, 프랑스어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좋은 표현을 많이 접하고, 그걸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 * *


그리고 선생님이 특별한 방법을 알려줬다.

"제가 스페인 어학연수 때 배운 방법인데요."


A4 용지를 9등분으로 나눈다.

그 작은 종이 한 장에 10개의 단어를 적는다.

앞면에는 프랑스어, 뒷면에는 한국어 뜻.

10장이 모이면 하나의 묶음.


"사람이 한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필요한 어휘가 약 3,000개예요. 10개씩 10장이면 100개, 30묶음이면 3,000개죠."


그렇게 들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숫자였다.


* * *


선생님은 두꺼운 단어장의 문제를 지적했다.

뒤에 수백 장이 남아있다는 압박감.

그래서 결국 포기하게 된다고.


"하지만 이 작은 종이 묶음은 달라요. 외출할 때 틈틈이 한 묶음씩, 10장만 외우면 되니까요. 그걸 다른 묶음으로 30번 반복하는 거예요."


300장의 작은 종이.

3,000개의 단어.

내년 3월까지의 시간.


막연했던 B2가 구체적인 숫자로 다가왔다.


* * *


첫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을 정리했다.

이건 단순한 단어 암기가 아니다.

300장의 작은 종이를 채워가며 프랑스어로 생각하는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 * *


30대 초반의 나는 이제 프랑스어를 다시 시작한다.

첫 번째 묶음을 완성할 때쯤이면, 나는 조금 더 프랑스어에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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