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ㅡ 내가 가진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제조업에 뛰어든지 15년. 세상이 나를 원하게 할 때

by 스르륵 달팽이 똥

사업가에게 삶이란 매 순간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냉혹한 전장이다. 누구보다 뜨겁게 달려왔고, 그 엔진의 소음이 곧 존재의 증명이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번아웃은 예고 없는 정지 신호였다. 세상이 원하는 속도와 숫자에 맞추느라 정작 ‘내가 원하는 나’를 놓쳐버린 순간, 나는 비로소 고백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나의 두 번째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라고.
열다섯의 사춘기가 세상을 향한 막연한 반항이었다면, 50대 길목에서 마주한 두 번째 사춘기는 남겨진 삶을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때 내 손에 쥐어진 최인아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는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그것은 먼저 그 길을 걷고, 먼저 그 고독을 통과한 선배가 건네는 서늘하고도 따뜻한 ‘생존 보고서’이자 위로였다.

책을 읽는 내내 억지로 삼켜야 했던 뜨거운 무언가는 결국 오랜만에 터져 나온 눈물이 되었다. 그 눈물의 점도는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터트렸던 발바닥의 물집과 닮아 있었다. 산티아고를 걷는 일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성취보다, 한 걸음 뗄 때마다 전해지는 통증을 온전히 받아내며 ‘지금 여기’의 나를 감각하는 과정이다.
작가는 말한다. “일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일에 나를 잡아먹히곤 한다. 저자가 카피라이터로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쏟아낸 30년의 시간이 나의 사업 현장과 겹쳐 보일 때, 나는 책속에서 그녀와 함께 산티아고길을 걷고 있었다. 물집을 터트리며 걷던 그 길 위에서 느꼈던 고독과 해방감이 문장을 통해 활자로 치환되는 경험은 경이로웠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는 말은 결국, 세상에 구걸하지 말고 내 안의 단단한 보석을 먼저 세공하라는 준엄한 꾸짖음이자 따뜻한 격려였다.

지난2년, 나는 큰 결단을 내렸다. 15년을 분신처럼 키웠던 개인사업을 법인으로 포괄양도양수하며 나의 자리를 조금씩 비워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책임감을 시스템이라는 틀에 나누어 주고 나니, 시원함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당황스럽게도 공허함이었다. 밀물처럼 들어찼던 일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나는, 그 빈자리를 견디기 위해 ‘공부’라는 명분을 선택했다.
남들은 박사과정이라 부르지만, 내게 이 시간은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비켜나기 위한 ‘자발적 고립’이자, 나를 다시 재정의하기 위한 ‘정밀한 사유’의 시간이다. 작가의 문장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나만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 30년 광고인으로 정점을 찍고 ‘최인아책방’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일구기 전, 그녀가 통과했을 그 고독한 시간들이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의 현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른새벽, 캄캄한 고요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물음표에 답없이 방황 하며, 가끔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자문할 때도 있었다. 사업가로서의 날카로운 감각이 무뎌질까 두려운 마음을 ‘공부’라는 핑계로 덮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자기 의심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작가는 단호하게 말한다. 성장은 계단식으로 일어나며, 정체기처럼 보이는 그 수평의 시간이 사실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가장 치열한 축적의 시간이라고.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박사과정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사업가라는 직함 뒤에 가려져 있던 ‘인간 김남주’의 본질을 세공하는 과정이다. 산티아고 길 위에서 물집을 터트리며 걸었던 그때처럼, 나는 지금 지식의 길 위에서 마음의 물집을 터트리며 나만의 논리를 세워가고 있는 중이다.

자리를 비워낸다는 것은 물러남이 아니라, 더 큰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한 확장이다. 시스템에 경영을 맡기고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것, 이것은 내가 가진 전문성을 더욱 객관화하고 고도화하여 ‘세상이 더 원할 수밖에 없는 가치’로 만드는 작업이다. 최인아 작가가 말한 ‘태도의 힘’은 이제 나의 논문 속에, 그리고 내가 써 내려갈 글 속에 깃들 것이다. 사업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직관에 학문적 깊이가 더해질 때, 나의 이 ‘두 번째 사춘기’는 비로소 찬란한 결실을 맺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여전히 사춘기를 지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전처럼 막막하지만은 않다. 오랜만에 터뜨린 눈물은 정화의 의식이었고, 비워진 그 자리에 저자가 건넨 ‘태도의 품격’과 ‘사유의 깊이’를 채웠기 때문이다.

“해답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겨야 세상도 나를 귀하게 대접한다.”
사업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하는 지금의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이것은 나 자신을 가장 귀하게 대접하는 행위이자,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더 단단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영혼의 재무장’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먼저 하고, 그 시간을 통과해 당당히 자기만의 세계를 세운 저자의 뒷모습이 있어 더는 외롭지 않다. 비워낸 자리에 돋아날 새살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나의 공부는 결코 핑계가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가장 정직하고도 뜨거운 준비다. 이제 나는 세상의 요구에 휘둘리는 기능공이 아니라,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세상이 나를 원하게 만들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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