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

오래된 첫사랑

by 스르륵 달팽이 똥

부부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뭘까?

쀼 ... 부부 같은 단어

함께, 똑같은...

34년 전 시작된 오래된 나의 첫사랑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그것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두 사람의 선택과 노력이었던 것 같다.


1991년 12월 18일.

그날의 공기가 어땠는지, 하늘이 맑았는지 흐렸는지는 이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내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그 떨림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첫사랑.

그 달콤하고도 설레는 감정 앞에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신을 선택했다.

법정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고 하셨다.

인연이란 그만큼 무겁고 책임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인연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연애 기간 동안 우리 사이에도 끊어질 뻔한 위기가 두어 번 있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이 붉은 끈이 정말 끊어지는 것일까? 하고.

하지만 위기 앞에서 우리를 묶고 있던 끈은 더 단단해졌다.

마치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메우는 일본의 '긴츠기' 기법처럼, 균열이 생긴 자리는 오히려 더 아름답고 견고해졌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부족함을 채워주며 97년 10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눈구경하기 힘든 지역이라

짬을 내어 산정상의 쌓인 눈이나마 보려 차를 몰아주는 남자.

앙상한 겨울나무 아래서 당신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문득 깨닫는다.

34년.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당신과 함께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젊었을 때는 몰랐다.

함께 있는 시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알게 된다.

한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것은 단순히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내와 이해, 용서와 배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남은 날들이 더 소중하다.

그날들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나는 당신과 함께 남은 시간을 더 아끼고 보듬으며 살고 싶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이렇게 겨울 햇살 아래서 함께 걸으며 사진 한 장 찍는 것,

평범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것,

무심코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쌓여 우리의 내일을 만들 것이다.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이제는 더 자주 해야겠다.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들을 당신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


자기야.

53년, 길지 않은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이

당신의 은은한 온기로 채워짐에 감사해.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의 날들을

더 아끼고, 보듬으며 살아가자.

언제나 고맙고

사랑해.


이 붉은 끈이 우리의 마지막까지 단단히 엮여있기를 바라며 나는 34년째 오래된 첫사랑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