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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지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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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영 Dec 24. 2023

단막극 '해지'

두 번째 이야기 

4.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 잠시 후 해지, 이루의 손을 천천히 잡는다.


해지        해지는 이 버스정류장이 좋아졌어요. 의미가 생겼거든요. 그리고 의미가 생겼다는 건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해지가 많이 생각할 거란 말이기도 해요.


 해지, 이루의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연달아 때리게 한다. 

 당황하는 이루와 달리 미소를 지으며 이루를 바라보는 해지. 


해지        금방 능숙해질 거예요.


 이루, 해지의 손을 뿌리치지만 다시 붙잡힌다.


이루         어떻게 능숙해질 수가 있어요? 사람인데….


해지         해지의 경험상 그랬어요.


 이루, 때리기로 결심한 듯 손을 치켜든다. 

 이때 무대 위 불빛이 어지럽게 흔들리더니 해지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이루        왜 웃는 건데? 조용히 해. 입 닥치라고.


 해지를 밀어 쓰러트리는 이루.


이루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병신 같아서 비웃는 거냐? 누군 이러고 살고 싶은 줄 알아?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어.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근데 한번 낙인찍힌 놈이라고 다들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너희들이 날 무슨 짓이든 하는 놈으로 몰아붙이는 거야. 알아?


 어지럽게 흔들리던 불빛이 멈추면 이루, 숨을 헐떡이며 해지를 바라본다. 

 해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이루에게 준다. 이때 들어오는 기자, 이루의 봉투를 갖고 와 돈을 꺼내본다.


 (사이)


 무대는 인터뷰를 하던 검은 방으로 바뀐다. 해지는 이루의 주위를 천천히 맴돈다.


기자        돈을 주고 때려 달라니…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 봐요?


이루        10분이었어요.


 해지, 미소를 지은 채 이루의 주위를 맴돈다. 그런 해지를 눈을 쫓는 이루.


이루        10분이었다구요. 그 돈을 벌기 위해 일한 시간이….


기자        아쉬웠다는 말로 들리네요.


이루        대충 시늉만 한 거였어요. 정말 때리진 않았다구요. 그런데도 돈을 주더라구요.


기자        그래서요?


이루        솔직히 날 한 번 더 찾아주지 않을까, 그러면 마지못해 하면서 해야지, 별별 생각을 다 했어요.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죠. 우연처럼 마주쳐 볼 심산으로 버스정류장에 가보기도 했는데 없더라구요.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일이 터진 거예요.


기자        할머니께서 당하신 폭행 사건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루        맞아요.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 빌릴 곳은 없고….


기자        정말 없었어요? 당시 이루 씨가 일하고 있던 회사 사장님 얘기를 들어보면 그 정도는 가불해줄 수 있었을 거라고 하던데….


이루        방송이니까 그렇게 말한 거예요. 빌려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덕분에 손쉽게 돈 벌려고 한 파렴치한 놈이 됐잖아요.


기자        뭐, 좋습니다. 여하튼 돈 빌린 곳이 없던 강이루 씨는 다시 한번 그 여자를 찾으러 버스정류장으로 갔다는 거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요?


이루        맞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가 있었어요.


 이루와 시선이 마주친 해지, 멈추어 선다. 기자,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사이)


 무대는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바뀐다. 


이루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요즘 날씨가 너무 춥죠?


해지        ….


이루        저기 혹시… 지난번처럼 알바 안 구하세요?


해지        ….


이루        저 다시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혹시라도 필요하시면…. 저기요?


해지        ….


이루        제가 괜한 얘길 꺼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이루, 뒤돌아 나가려 한다.


해지        한 달 동안 하루에 10분씩.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어때요?


이루        네?


해지        똑딱 똑딱 똑딱…. 해지는 기다리는 걸 매우 싫어해요. 해지하고 알바 하실래요?


이루        할게요. 뭐든 다 할 테니까 돈만 잘 주시면 돼요.


해지        얼마가 필요한데요?


이루        그게… 천만 원이요. 너무 많은가요? 아니면 칠백이라도….


해지        좋아요.


이루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해지        해지가 더 감사하죠. 이루 씨.


이루        제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


해지        돈은 내일 드릴게요. 현금으로.


이루        바로요?


해지        급하잖아요. 할머니 때문에….


이루        그건 또 어떻게 아세요?


해지        그게 중요한가요?



 미소를 짓는 해지를 보며 순간 머뭇거리는 이루.


해지        얘기는 끝났으니까 이제 시작할까요?


이루        지금요? 


해지        싫어요?


이루        아니요. 원하신다면 바로 해야죠. 아, 혹시라도 너무 아프거나 그러면 말씀하세요. 바로 멈출 테니까요. 


 두 눈을 감는 해지. 이루, 잠시 심호흡을 한다.


이루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해지        해지는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해요. 온전히 해지한테만 집중하잖아요.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이루, 해지를 때리기 위해 손을 치켜든다. 




 5. 검은 방


 작업복을 입은 이루 뛰어 들어온다.


이루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이쪽 레일에 배속받은 강이루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걱정 마세요. 일하다 도망치진 않아요. 전에도 택배 상하차 일 해봤거든요. 


 잠시 후 작업복을 벗고 핸드폰을 들고 서성이는 이루.


이루        여보세요. 사장님. 대리입니다. 말씀 주신 곳까지 왔는데 어디 계세요? …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뛰어나가는 이루. 잠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온다. 이루의 핸드폰 울린다. 전화를 받는 이루.


이루        여보세요. … 죄송합니다. 먼저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다음 주까진 꼭 납부하겠습니다. … 그럼요. 알죠. 병원비 밀리면 퇴실 조치 된다는 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 주까진 입금할게요. … 저희 할머닌 좀 어떠세요? … 그렇죠. 정신이 없으시니까…. 아, 저 일하러 가야 할 거 같아요. 할머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이루. 긴 한숨을 내쉰다. 


이루        생각이 안 났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루에 10분이었잖아요. 그렇게 일하고서 받은 돈이 이천이었는데… 기분은 찜찜했지만 혹할 수밖에 없는 돈이죠. 그래도 어떻게든 앞으로 달려가려고 하던 때였어요. 비록 남들보다 열 걸음은 뒤로 처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언젠간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할 때였거든요. 희망이 있었죠. 그때는. 근데 그 희망이 개꿈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사고가 일어났어요. 대리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깜빡 졸은 거죠. 정말 잠깐이었는데….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자동차, 추돌하는 소리 들린다.


이루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되는 거예요. 합의금을 마련할 재간도 없고, 그렇다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꼼작 없이 들어갈 판이었죠. 다 포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해지, 들어온다.


해지        해지하고 알바 하나 하실래요?


이루        어떻게 알고 그녀가 저를 찾아왔어요.


해지        어렵지 않아요.


이루        달콤한 말이었죠.


해지        금방 능숙해질 거예요. 해지의 경험상 그랬어요.


 이루, 고개를 끄덕인다. 이루 앞에 서는 해지, 이루의 손을 들어 올려 천천히 자신의 뺨에 갖다 대려 한다.


이루        그런데 말이죠. 몇 번 해주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돈을 받고 해주는 일이지만 주도권은 나한테 있는 게 아닌가? 제가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요. 그 말인즉슨 제가 굽실거리면서 그녀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거죠.


 이루,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지의 손을 뿌리친다. 해지의 뺨을 때리는 이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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