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6. 버스정류장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해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이루 돈 안 주냐? 한 달이 지난 지가 언젠데.
해지 해지가 또 깜빡했어요. 해지가 죄송해요.
이루 내가 주의 줬지. 이름 좀 갖다 붙이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구.
해지 해지가 잘못했어요.
이루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나한테 더 얻어맞으려고?
해지 사실은 해지가요….
이루 (말을 자르며) 됐고, 당장 가서 돈 가져와.
해지 그러면 해지 집으로 오실래요?
이루 내가 거길 왜 가?
해지 해지가 바로 드릴 수 있는데….
이때 이루의 핸드폰 울린다. 전화를 받는 이루.
이루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형사님.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무슨 일로… CCTV요? … 잘됐네요. 누군지 밝혀지면 바로 연락 주세요.
해지 경찰서에서 왜요?
이루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집 주소나 불러.
해지 (종이쪽지를 주며) 오시면 바로 드릴게요.
이루 너 이번에도 딴소리하면 죽는다. 알겠어?
해지 그럼요. 해지는 거짓말 하지 않아요.
이루 쓸데없는 소리 말고 꺼져.
해지, 나가면 무대는 경찰서가 된다.
이루 안녕하세요. 형사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누군지 나온 거예요? … 여자요? … 저기 형사님.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보여주세요. … 흐릿하더라도 만약에 아는 사람이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한 번만 보여주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 저희 할머니 그 일 이후로 치매까지 와서 저렇게 누워서만 지내신다구요. … 감사합니다.
CCTV 영상을 보는 이루.
이루 어디요? … 아, 여기 뒤에 숨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할머니를 처음부터 노렸다는 거예요? 대체 뭐 하는 여자인데….
순간 표정이 굳어버리는 이루.
이루 그녀였습니다.
이때 한 손에 벽돌을 든 해지, 나온다.
이루 한 손에 벽돌을 든 그녀가 할머니 뒤를 따라가더니 들고 있던 벽돌로 할머니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벽돌을 휘두르는 해지,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그대로 나간다. 헛구역질하며 주저앉는 이루.
이때 이루의 핸드폰 울린다. 전화를 받는 이루. 해지, 전화하며 천천히 걸어 나온다.
해지 이루 씨. 왜 안 와요? 해지는 준비가 다 됐는데….
이루 너 우리 할머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해지 그래야 이루 씨도 해지처럼 혼자가 되니까요.
이루 미친년.
해지 왜 그래요? 서로 좋았잖아요. 빨리 와요. 안 그러면 해지가 찾으러 갈 거예요.
비명을 지르는 이루, 핸드폰을 던져 버린다. 해지, 웃으면서 나간다.
이루 잠수를 탔습니다. 어쩔 수가 없잖아요. 그런 미친년한테 걸렸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고… 방법이 없었어요. 그저 숨죽인 채로 저한테서 관심이 없어지길 기다릴 뿐이었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잊혀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때리고 있던 그 남자처럼요. 그래. 그 남자. 그 남자는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나타나서 자연스럽게 잊혀진 건가?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그때 그 남자 옷에 박혀있던 회사 명칭이 떠오르길래 무작정 그 회사로 찾아갔습니다.
남자가 다니는 회사 직원을 만난 이루,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
이루 안녕하세요. 제가 사람을 찾고 있는데요. 여기 회사 잠바를 입고 계셨거든요. 한 50대 정도 되어 보이셨는데… 아, 손등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어요. … 성함은 잘 모르구요.
기자 (목소리만) 그때 만나신 분이 경찰서에서 이렇게 진술을 했더군요.
기자 나오면서, 진술서를 읽는다.
기자 지나가다가 들었는데 딱 장 씨더라구요.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고 하는데 얼굴이 파리한 게 안쓰러워 보였어요. 근데 그 얘기를 들은 직원이 장 씨는 얼마 전에 그만둬서 여기 없다고 하는 거예요. 속사정은 잘 모르니까 그렇게 말한 거겠죠.
이루 (안도하며) 감사합니다.
기자 그래서 고민하다가 제가 불러 세웠죠.
돌아가려던 이루, 뒤돌아선다.
기자 장 씨하고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났는데 안부가 궁금해서 와 봤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말해줬죠. 석 달 전인가 갑자기 사라졌다구요. 그랬더니 사색이 돼서 절 쳐다보는 거예요.
이루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기자 장 씨가 없어지기 전날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왔어요. 어떤 놈이 자기 일을 방해했다면서, 여자가 갈아탈 거 같다고 엄청 화를 내더라구요. 여자 집에 쫓아가 봐야겠다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고 했죠.
이루 여자요? 어떤 여자인데요?
기자 장 씨 말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했어요. 툭툭 치면 돈이 나온다구 좋아 죽더라고 말해줬더니 그 남자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는 거예요.
괴성을 지르는 이루.
기자 왜 그러냐고 몇 번을 물어봤는데도 대답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가는데, 표정이 장난 아니더라구요. 그땐 돈 빌려주고 떼먹혔나 보네라고 생각했지 그런 일에 엮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했죠. (이루에게) 그렇게 나와서 요양병원으로 전화를 건 거죠? 할머니가 걱정이 돼서요.
핸드폰을 꺼내는 이루,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으로 전화를 건다.
기자 당시 전화를 받았던 간호사분의 진술서를 보면 상당히 다급한 목소리였고,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었다고 쓰여 있네요.
이루 안녕하세요. 조복순 할머니 보호자인데요. 저희 할머니 잘 계세요?
기자 할머니는 잘 지내신다, 특히나 요즘엔 손자분 여자친구가 매일같이 찾아와서 할머니 기력이 많이 좋아진 거 같다고 말했더니 엄청 당황하더라.
이루 이름이… 이름이 뭔데요?
기자 그래서 방문자 리스트에 적혀 있던 이름을 불러줬죠. 장선화.
이루 혹시 어떤 여자였죠?
기자 그래서 그냥 평범했다고 답을 했다. 막상 물어보니까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말할 때마다 선화가 이랬어요 하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 애도 아니고…. 거기까지 말했는데 전화가 끊겨 있었어요.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루 그녀였어요. 그녀….
기자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이루 그녀가 적어줬던 집 주소로 찾아갔습니다.
기자, 나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