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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지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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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영 Dec 26. 2023

단막극 '해지'

마지막 이야기

7. 검은 집


 칠흑같이 어두운 집으로 들어온 이루, 이상한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찡그린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집안을 둘러보던 중 방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에 조심스럽게 방으로 간다. 

 잠시 후 방바닥을 기어서 겨우 밖으로 나오는 이루, 겁에 잔뜩 질린 모습이다.

 방에서 들리는 신음 소리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로 들리다가 갑자기 뚝 끊긴다. 


이루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며) 여보세요.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아니 죽어가요. … 그게 아니라… 여기요? 잠시만요. 주소가….


 주머니에서 집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를 찾는 이루. 이때 해지, 들어온다.


해지        언제 왔어요?


 놀란 이루, 핸드폰을 떨어트린다.

 이루의 핸드폰을 줍는 해지, 핸드폰에서 주소를 불러 달라는 경찰의 목소리가 들리자 전원을 끈다.


해지        봤어요?


이루        ….


해지        봤구나.


 해지, 이루를 보며 섬뜩하게 미소 짓는다.


이루        내가 지금 바쁜 일이 있으니까 돈은 다음에 줘.


 해지에게서 핸드폰을 빼앗고는 나가려는 이루.


해지        (이루를 껴안으면서) 가지 마요.


이루        이거 놔.


 해지를 밀치다가 순간 자리에 꼬꾸라지듯 주저앉는 이루.


해지        해지가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는데요.


 한 손에 주사기를 든 해지, 이루를 빤히 내려다본다.


해지        이루 씨. 이젠 해지랑 다른 알바를 해보는 거 어때요? 어렵지 않아요. 이루 씨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요. 해지가 다 알아서 할게요.


 이루에게 점차 다가서는 해지. 이루, 몸을 움직여 보려 하지만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비명을 지르는 이루. 멀리서 사이렌 소리 들린다.




 8. 검은 방


 무대는 인터뷰를 진행했던 장소로 바뀐다. 홀로 무대에 있는 이루.


이루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날 제가 본 그 남자 말이에요. 숨은 붙어 있었지만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그런 몰골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칫 잘못했으면 내가 그 꼴이 되어 누워 있었겠구나. 미안하면서도 안도하게 되는 거 있죠. 비록 이렇게 빛도 들지 않는 좁고 어두운 방에서 쥐 죽은 듯이 숨어 살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이때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이루. 해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들어온다.

 놀란 이루,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해지를 눈으로 좇는다.

 해지, 캐리어를 눕혀 열더니 안에서 이어폰을 뺏는다.


해지        이제 그만. 지금은 청력만 남아서 아주 예민할 텐데, 너무 혹사시키면 안 돼요.


이루        네가… 네가 왜 여기 있어?


해지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해서 좋죠?


이루        여긴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해지        해지는 그 남자가 방송에 나갈 줄은 몰랐어요. 


이루        기자님. 어디 계세요? 그 여자가 찾아왔어요,


 기자, 의자를 끌고 들어와 앉는다. 맞은편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대화를 하는 기자. 


이루         기자님. 저 여자예요. 저 여자가 바로….


기자        그래도 정말 운이 좋으신 겁니다. 목숨은 건지셨잖아요. 그날 버스정류장에서 강이루 씨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아마도 당신이 그 모습이 되어 끌려다니고 있었겠죠. 강이루 씨의 호의가 당신을 살린 겁니다.


이루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기자        게다가 신고 또한 강이루 씨가 해준 거잖아요.


이루        당신 대체 누구랑 얘길 하는 거야. 저 여자를 보라니까.


기자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 뻔했는데 말이죠. 장만호 씨.


 기자는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하고 있고, 해지는 캐리어에 든 무언가를 연신 쓰다듬고 있다.

 혼란스러워하는 이루, 캐리어에 천천히 다가가 그 안을 본다.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이루.


이루         저건 내가 아니야. 난 분명히 나왔어. 나왔다고. … 근데 어떻게 나왔지?


기자        어제 세 번째로 강이루 씨의 신체 일부가 발견된 건 아시죠? 비전문가에 의해 신체가 훼손된 상태에서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죠.


해지        해지는 이루 씨만 있으면 돼요.


기자        하지만 강이루 씨가 과거 온라인 사기 전과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또다시 쉽게 돈을 벌려고 한 본인의 탓이 크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돈만 주면 뭐든 한다는 그릇된 생각이 이런 결과를 야기한 것이니까요.


 이루를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이 무대의 한쪽 벽면을 채우기 시작한다.

 ‘누가 하라고 했냐?’ 

 ‘자기가 좋아서 한 거잖아. 근데 그것도 사회 탓이야?’

 ‘그런 일 당한 건 불쌍하지만 스스로 위험을 택한 것 아니야?’ 

 ‘저런 게 무슨 피해자냐?’ 

 ‘쉽게 돈 벌려다가 그 꼴 난거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그놈이 이상한 거 아니야?’ 등의 댓글이 달린다.


기자        그런데 그 여자는 왜 그렇게까지 사람에게 집착한 걸까요? 저희가 장만호 씨를 모신 것도 그 이유에서죠. 눈앞에서 목격하셨으니 누구보다도 잘 아실 테니까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해지란 여자는요. 


해지        해지 아빠는 해지를 사랑해서 때린다고 했어요. 아빠가 해지를 때릴 때면 온전하게 해지만 바라보잖아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되는 순간인 거죠.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했어요. 이루 씨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죠?


 괴성을 지르는 이루. 


기자        결국 과거의 상처가 그런 행동을 촉발시켰다는 거네요. 현재 경찰에서는 해지라고 불리는 그 여자의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어떤 기록도 찾을 수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2부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그녀의 행동 패턴에 대해서 범죄분석가를 모시고 자세한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기자, 나간다. 해지, 캐리어 속 이루를 쓰다듬어 준다.


해지        해지가 여기까지 오면서 생각해봤는데요. 해지한테만 집중을 못 하는 이유가 귀 때문인 거 같아요. 이루 씨가 요즘 들어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해지는 싫어요. 그러니까 해지가 이젠 이루 씨의 귀도 되어 줄게요. 그러니 이건 필요 없어요.


 해지, 수술용 칼을 꺼내든다. 


해지        이루 씨. 해지가 사랑해요.


 순간 무대 어두워지면, 이루의 실루엣만 어렴풋하게 보인다.


이루      왜 이 모든 게 제 탓이라는 거죠? 전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러다 피해를 당한 건 전데, 왜 제가 잘못한 거라는 거죠? 제발 부탁이니까 피해자인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왜 다들 그 여자의 이야기만 궁금해하는 거죠? 왜 제 이야기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건데요? 피해자는 저예요. 저라구요.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무대 완전히 어두워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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