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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해지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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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영 Dec 23. 2023

단막극 '해지'

첫 번째 이야기

등장인물

 이루(남)

 해지(여)

 기자(남)



 무대

 무대는 기본적으로 비어 있다.

 장소는 구체적이기보다는 대소도구 및 조명 등을 이용해 변화를 주는 정도로 표현토록 한다.



 1. 검은방

 

 무대는 빛이 들지 않는 좁고 어두운 방이다. 중앙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지 긴장된 표정의 이루,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동시에 소리 뚝 끊긴다. 잠시 후 기자, 들어온다.


이루        시작하는 건가요?


기자        긴장이 많이 되시나봐요?


이루        좀 그러네요.


기자        사실 의외였어요. 거절하실 줄 알았거든요.


이루        아마 오늘 인터뷰가 나가고 나면 돈독이 제대로 올랐다고 난리가 날 거예요.


기자        그런데도 응해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돈 때문에 그런 짓을 해 놓고 억울할 게 뭐가 있냐는 말이었어요. 하나같이 하는 말이 전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기자        순수한 피해자, 그 얘기군요?


이루        맞아요. 제가 선택한 일이니 찍소리 할 것도 없다는 거죠. 근데 솔직히 그건 아니지 않나요? 제가 돈을 받았다고 해서 그런 꼴을 당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기자        그럼 오늘 그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털어놓아 보시겠어요? 변명도 좋고 해명도 좋고 사과도 좋습니다. 어떤 이야기건 제가 들어 드리죠.


 의자에서 일어나는 이루. 기자, 나간다.


이루        어릴 때 사고를 크게 친 적이 있어요. 온라인 중고 사기로 빨간 줄이 그어졌죠. 그때도 그랬어요. 돈은 급한데 구할 데는 없고, 그러다 보니 머리가 그쪽으로 돌아간 거죠. 그래도 그 일 이후 정신은 차렸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바뀌지 않더라구요. 또 무슨 사고를 치려나 하고 쳐다보는 것만 같았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조건을 보지 않는 일만 찾게 되고 주로 하게 되는 일이 막노동이나 대리운전 알바같이 일당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가릴 처지가 아닌지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죠. 저 때문에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일하시는 할머니 생각을 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날도 대리를 뛰었는데, 돈을 더 준다는 요구에 외곽으로 나왔어요. 그렇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찾은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빠르게 굴러가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무대 안을 가득 채운다. 



 2. 버스정류장.


 버스를 기다리는 이루. 이때 멀리서 여자의 신음 소리 들린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던 이루, 멀리서 남자에게 맞고 있는 해지를 발견한다. 

 이루,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해지의 신음 소리가 계속 들려오자 핸드폰으로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켠다.


이루        여기요. 여기 사람이 맞고 있어요. 경찰 아저씨. 여기에요.


 남자, 해지를 밀치고 도망간다. 이루, 쓰러진 해지에게 다가간다.


이루        괜찮으세요?


해지        ….


이루        경찰 불러드릴까요? 


해지        ….


이루        저기요.


 아무 대답이 없자 이루, 조심스럽게 해지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이때 해지, 이루의 멱살을 잡는다.


해지        너 대체 뭐야?


이루        네? 아니 전 그냥….


해지        뭔데 해지 일을 방해해?


이루        걱정이 돼서….


 순간 멈칫하는 해지, 이루를 빤히 쳐다본다.


해지        해지를 걱정해?


 해지의 묘한 표정에 섬뜩함을 느낀 이루, 해지의 손을 뿌리친다. 해지, 이루를 바라보며 미소 짓다 나간다.


이루        그때는 이상한 여자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금방 잊어버렸어요. 사실 생각할 것도 없었어요. 제가 만난 건 아주 잠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요. 그날은 대리 콜이 한 건도 잡히질 않아서 일찌감치 고시원으로 들어온 날이었어요. 샤워를 마치고 자려고 누웠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


이루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3. 고시원 방


 이루가 묵고 있는 고시원 방. 연이어 들리는 문 두드리는 소리. 이루, 경직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본다. 

 몇 번이고 누구인지 물어보지만, 대답이 없자 결국 문을 연다. 문 앞에는 해지가 서 있다.


이루        누구세요?


 해지, 이루를 밀치며 들어온다.


이루        이봐요. 지금 어딜 들어오는 거예요?


해지        안녕하세요. 해지라고 해요. 해지하고 알바 하나 하실래요?


이루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해지        어렵지 않아요.


이루        잠시만요. 대체 누구세요?


해지        해지요.


이루        아니 이름이 아니라… 아, 당신 그때 맞고 있던 그 여자… 근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해지       그게 중요한가요?


이루       알겠으니까 이만 나가주시겠어요?


해지       돈 드릴게요.


이루       돈을 왜 줘요?


해지       해지하고 알바를 하면 돈을 드려야죠.


이루       내가 왜 아줌마하고 일을 해요? 다 필요 없으니까.


해지       해지는 아줌마 아니에요.


이루       아줌마건 아니건 상관없으니까 나가라구요.


해지      해지는 해지라구요. 왜 해지한테 아줌마라고 하는 거예요? 해지는 아줌마 아니에요. 아줌마 아니라구요. 아줌마 아니야. 아니야. 아니란 말이야.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는 해지의 모습에 당황하는 이루. 옆방에서 벽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이루        옆방에서 뭐라 하잖아요.


해지        (악을 쓰며) 해지한테 사과해요. 해지한테 사과하라구요.


이루        알겠어요. 사과해요.


해지        (악을 쓰며) 미안하다고 하라구요.


이루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차분해지는 해지.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해지        그럼 해지가 용서할게요. 해지는 마음이 넓으니까요.


이루        (어이없어하며) 저기요. 그럼 이만 나가주시겠어요?


해지        알바, 어렵지 않아요.


이루        아니, 전 일할 생각이 없다구요.


해지        조금의 시간과 힘만 들이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죠.


이루        이봐요.


해지        해지. 해지라고 불러요.


이루        여하튼 전 안 한다구요.


해지        해보세요. 금방 능숙해질 거예요. 해지의 경험상 그랬거든요.


이루        됐어요.


해지        들어보세요.


이루        됐다구요.


해지       들어 보라구요. 해지가 말해준다는데 왜 안 듣겠다는 건데요? 들으라고. 해지가 하는 말, 들으라고. 들어.


이루        (당황하며) 알겠어요. 들을 테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이루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 짓는 해지. 이루, 해지의 눈빛에 밀려 고개를 돌린다.


이루        그… 그래서 그게 대체 무슨 일인데요?


해지        그냥 몇 대 때려주면 되는 일이에요.


이루        사람을 왜 때려요?


 해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이루에게 준다. 

 봉투에는 각서 1장과 현금 30만 원이 들어있다. 봉투를 열어보는 이루.


해지        해지는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예요. 해지가 사인도 했어요. 그리고 그건 계약금 30만 원이구요. 일을 마치면 100만 원 바로 드릴게요.


이루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해지        죽여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몇 대 때려달라는 건데 뭐가 문제예요? 내일 하루 중에 딱 10분만 투자하면 되는데. 정말 싫어요?


이루        내가 이 돈만 받고 튀면요?


해지        그렇게 되면 해지는 계약금을 날리고, 그쪽은 10분 만에 벌 수 있는 돈 100만 원을 날리는 거죠. 너무 아쉬울 거 같지 않아요?


이루        (고민하다가) 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라… 상대가 누군데요? 혹시 어제 그쪽을 때렸던 그 남자예요?


해지       각서에 쓰여 있어요.


 각서를 읽어보고 당황하는 이루.


해지        맞아요. 해지에요.


 미소 짓는 해지. 이루, 불안한 표정으로 해지를 바라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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