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해지' 극작노트 5
[해지의 내면 풍경 쓰기 - 일부분]
지연인 내가 가지고 있던 예쁜이 인형하고 흡사했어. 살아있는 인형을 보는 것만 같았어. 엄만 지연이를 보면서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어. 나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미소. 엄만 예쁜 지연이만 사랑하는 거 같았어. 못난이인 나는 보이지 않는 거지. 맞아. 거들떠보지도 않았어. 그때 생각했어. 예뻐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난 받지 못하는 거구나.
난 그래서 지연이가 싫어. 아니 미워. 방실거리며 웃는 저 얼굴이 꼴 보기가 싫어. 그래서 엄마가 안 보는 틈만 생기면 지연이를 때리고 꼬집는 거야. 그러면 지연이는 울기 시작하고, 난 엄마한테 두들겨 맞았지만. 동생 질투한다고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는지. 엄만 내가 단순하게 동생을 질투해서 벌이는 일로만 생각하는 게 정말 미웠어. 내가 엄마와 지연이 때문에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난 끊임없이 지연이를 괴롭혔어.
하지만 이런 게 반복되다 보니 성에 차지 않는 거야. 차라리 나처럼 못난이로 만들어 버리면 엄마는 결국 둘 다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어서 엄마 몰래 가위를 들고 와 지연이의 그 예쁜 손가락을 잘라버리려고 했어. 물론 걸렸지. 엄마한테 미친 듯이 맞았어. 나이도 어린 게 미친 짓을 한다고, 어디서 저런 게 태어났는지 모르겠다고, 이게 다 못난 아빠 때문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시끄러워.
그런데 더 짜증 나는 건 내가 이렇게 두들겨 맞고 있어도 그냥 있는 아빠야. 엄마를 말리거나 제지하는 행동 따윈 하지 않는 거지. 그냥 있는 거야. 더 싫은 건 맞고 있는 날 바라보는 그 눈빛이었어. 안쓰럽게 쳐다보기. 차라리 보지나 말지.
지연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짜증 나는 일의 연속이었어. 지연이를 보는 사람들마다 예쁘다, 인형 같다란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나를 못난이로 만들어 버렸거든.
네가 지연이 언니니?
어머, 넌 동생 먹는 거 다 뺏어 먹니? 몸이 그게 뭐니?
씨발. 욕이 절로 나왔지만 차마 앞에서 내뱉을 순 없었어. 그랬다간 엄마한테 못생긴 게 입도 험악하다고 욕먹을 게 뻔하니까. 지연이가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의 못난이 소리는 비례했어. 그런데 무엇보다도 참기 힘들었던 건 아무도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질 않는다는 거야. 해지란 내 이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난 늘 지연이 언니라고 불리는 게 정말 싫어.
네가 지연이 언니니?
네가 지연이 언니구나?
어머, 지연이 언니는 동생이랑 전혀 안 닮았구나?
넌더리가 났어. 대체 왜? 내가 왜? 저 어린년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데. 난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지연이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들한테 대답대신 눈을 흘렸어. 그러면 사람들은 내가 못나게 군다고, 질투하는 거냐고, 너무 옹졸한 거 아니냐는 소리로 날 타박했어. 왜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건데? 왜 모든 게 내 탓이냐고? 씨발 씨발 씨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지연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난 지연이가 없어져 버리길 간절하게 바랐어. 하나님. 절 가엾게 여기신다면 아침에 눈을 뜨면 지연이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 주세요. 연기처럼 사라지게 해 주세요. 난 자기 전에 늘 이런 내용으로 기도를 했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 기도에는 아무런 응답은 없어. 하나님은 원수도 사랑한다고 했는데, 개뿔... 다 입에 발린 소리지. 아니면 내가 원수만도 못한 존재인 건가?
난 대체 왜 태어난 걸까? 뭐 하러 세상에 나와서 이 꼴을 보고 있는 걸까? 내가 이렇게 살기를 신이란 것들이 바란 것일까? 그렇다면 신들은 내가 태어나는 그 순간 날 버린 건가? 그래서 이렇게밖엔 살 수 없는 건가? 버림받은 몸이기에 잘난 이의 따가리 신세가 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결국 내가 태어난 건 잘난 지연이를 돋보이게 해주는 일인 건가? 그래서 이렇게 못나게 태어난 건가?
수많은 질문들이 끝도 없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답을 찾을 수도 위안을 받을 수도 없어. 그저 네가 틀렸다, 네가 잘못된 것이다란 소리만 들을 뿐이야. 그 누구나 날 이해해 주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아. 난 늘 튀어나온 못처럼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고. 그래서 난 지연이가 싫어. 날 이렇게 만든 그 년이 늘 꼴 보기 싫어. 하지만 그 년은 늘 날 졸졸 쫓아다녀. 언제나 나한테 살갑게 구는 저 년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난 늘 궁금했어. 그래서 일부러 동네에서 먼 곳으로 데리고 나가서 떼어 놓고 오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그 년을 밀쳐서 다치게 한 적도 있었어.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얼굴에 집어던져서 상처를 내기도 하고, 일부러 차도로 밀어버린 적도 있었어. 하지만 내가 사고를 칠 때마다 엄만 동생하나 제대로 못 돌본다고 어릴 때나 지금이나 어쩜 그리 똑같냐며 내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지. 늘 나만 때리는 엄마를 볼 때면 새엄마라는 생각이 들 만큼 화가 났지만, 더 열받는 건 그년이 매번 내 편을 들어줬다는 거야. 씨발. 지금 누굴 동정하는 건데?
내면풍경은 인물의 속마음을 날것으로 적어 내려가야 한다.
욕을 섞어서 그 상황 속에서 최대한 진솔하게 느끼는 바 그대로 말이다.
물론 처음 하는 작업이라 많이 서툴렀고 각색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내면풍경 작업을 여러 번에 걸쳐서 하다 보니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향성을 잡게 되었고,
전체적인 줄거리도 다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