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린 Jun 26. 2024

초라함

또는 찌질함

이것저것 만들어 팔아볼까 해서 다시 꺼낸 내 미싱은

손가방. 파우치. 키링 등등 그야말로 잡다한 잡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때로는 손바닥만 한 파우치를 만드는 데에 꼬박 이틀이 걸리기도 하고,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아서  버린 작품도 한 보따리쯤 된다.

그만큼 이러저러 고민이  많아 작업 속도가 매우 더디다.


필요한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내 취향과 결이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우연히라도 입소문이 나서 지인을 제외한 모르는 사람들이 사줬으면 하는 기대감.

이러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다 보니 아주 간단한 박음질도 쉽게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만든 샘플들을 지인과 남편에게 보여주면 나쁘지 않은 반응들이다. 하지만 그게 다다.

더 이상의 반응은 없다.

그 이유는,

굳이 필요 없는 물건들이거나, 매력적이지 않거나

혹은 정말 별로인가 보다.


지인들이 몇 개 구매해 준 탓에 아주 잠깐 주제넘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지인구매는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금방 현실을 자각했다.


그래도 나름 연구개발의 과정 속에 있다 생각하고 천천히 정진할 계획이 있었다.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오늘 유난히 현타가 세게 와서 잠을 설치고

이렇게 외로운 성토를 해본다.

현타의 순간은 이렇다.


현타 1.

부자재가 없어 동대문에 갔다.

동대문에서는 나만 느긋했다.

모두가 바쁜 걸음, 바쁜 통화 중이다.

그러는 와중에 무엇을 사러 온 건지 잊어먹고

길도 잃었다.


현타 2.

야심 차게 만든 샘플이 시장에 이미 있다.

만들 때 나름 만족했고 기대감에 가슴 뛰었다.

하지만 나는 한발 늦었다.

맹세코 시장 물건은 본 적도 없지만..

어쩌면 무의식적인 카피질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의심하고 자학했다.


현타 3.

남편이 조언한다.

내가 사업에 자질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유행하는 아이템을 카피만 하려고 하고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

평생을 먹고 살만한 아이디어  하나 내보라며,

내 상품에는 그런 기발한 한 끗이 없다고 한다.

나 잘되라고 하는 소리 같은데 오히려 주저앉고 싶다.

다리도 풀리고 내 정신력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머리를 쥐어뜯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재봉틀 앞에서 가슴을 찢고 울부짖는 모습이라도 연출했어야 저런 소리를 안 들을까.


좋겠다. 사람 초라하게 만드는 재주 있어서.


나는 또 애들 앞에서 부부싸움이 일어날까 봐 참고 또 참다가

여기 이 대나무 밭에 외쳐본다.

정말 찌질하다. 오늘까지만 찌질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