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야반도주

남아있는 자의 절규

by 직장인M

우리 팀에 입사 십 년 차 팀장이 있었다.

그는 격무에도 묵묵히 할 일을 하던 성실한 사람이었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업무 과중에 대해 항상 미안해하고 도움을 주려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회성을 문제 삼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업무 능력도 언제나 폄하되기 일쑤였고 곁에서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인정받지 못하는 팀장이었다.

일한 지 얼마 안 된 나보다는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들이 더 정확하겠지만, 나로서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 반감이 생기곤 했다.


그런 그를 가장 괴롭게 하는 건 그의 상사이자 나의 상사였다.(동일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의심과 불신이 가득했다. 그러니 상사에게 보고하고 진행하는 것이 두려워 혼자 결정하고 진행하는 일이 잦았고 또한 그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상사는 미움과 불신이 더 쌓여만 가는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 중심에 서있는 나는 더욱더 괴롭기만 했다.


그러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그가 상사의 폭언에 못 참고 사표를 던진 그날부터였다.

그를 항상 못마땅해 하던 상사도 적잖게 당황했고, 나 또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 생각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가 필요했다, 이기적인 마음에 상사에게 그를 잡아달라 부탁했고 다행히 사표는 반려되었다. 사표 반려 후, 그는 사표라는건 평생에 내본적 없는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본인이 아직 팀에서 중요한 위치라는걸 확인하고 싶었던 일종의 이벤트로 , 남은 자들은 생각했다.


그렇게 무사히 지나가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는 첫 번째 사표에 써넣은 마지막 근무 날짜에 세 딱 2주 지난날 말도 없이 사라졌다.

수리되지 못한 사표에 적힌 날짜보다 2주 연장근무를 해준, 그의 배려심에 박수라도 쳐줘야 하나.


방심한 상태에서 당한 봉변은 충격이 더 크다.

대안을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여파가 매우 컸다.


오랜 직장 생활 경험으로 봐서, 회사는 어떻게든 돌아간다

사람하나 없어졌다고 망하는 회사는 없다.

하지만 남은 사람의 멘털은 망해간다. 촘촘히.


그를 이해하려 했던 내 안의 아주 작은 동정심이 분노의 불씨가 돼서 날마다 회력을 당긴다.

평생에 알고 있던 모든 욕을 다 기억해 봐도 마땅한 욕이 없다.

그가 남기고 간 (이라고 쓰고 '싸지르고 간'이라고 읽는다) 일들을 처리하며 늘 궁금하다.

더 큰 타격을 주고 싶었던 치밀한 그의 계획이 있던 걸까, 아니면 순수한 충동적 결정인 걸까.

전자이면 어떻고 후자이면 어떨까. 어쨌든 나는 지금 눈앞에 쌓인 일들을 초인적인 힘으로 쳐내고 있다.


그와 동시에, 빌어먹을 내 안의 선한 사마리아 유전자는 고민한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이 상사가 아니라 나였던가. 그래서 나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건가. 그렇다면 미안하고.


욕을 하던가 미안해하던가 한 가지만 하자.


나 자신.

너.

병신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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