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되찾을 수 있어요
학교마다 추진하는 행사들과 프로그램들이 있다. 예를 들어 몇 군데에서는 대학 면접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한 도움을 주기 위해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도 오라고 하는 학교도 있고, 대표로 교육적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공문을 보내기도 한다. 나의 옛 학교에서 공문이 왔다. 면접을 위한 프로그램을 그곳에서 주관한다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기를 바랐지만, 막상 옛 학교의 이름을 들으니 순간 아주 신 사탕을 입에 넣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난 더 이상 외고에 소속된 사람이 아닌데 내가 다녔던 곳의 이름만 보이거나 들리면 신경이 곤두선다.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하고, 옛 생각이 나기도 해 머리가 복잡해진다. 하교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왜 옛 학교를 잊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힘들었는데, 그래서 전학까지 감행했던 곳인데 도대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문득, 외고에서의 친구가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여기서 더 도망가면 갈 데가 없어. 우리가 언제 외고에서 받는 교육을 다른 데서 받아보겠어." 고개를 끄덕이던 나 자신도 떠오른다. 친구들은 외고를 떠나 전학 가는 걸 포기라고 생각했고, 버티지 못한 것으로 치부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버티고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하지만 나는 우울증이 나를 삼키기 전에 탈출했고,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하면서 이제는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외고에서 배웠던 것들을 전학 온 학교에서 써먹을 기회가 많았다. 난 깨달았다. 내가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건 그곳의 친구들, 거기서 얻었던 경험들, 내가 부은 노력들, 발표 경험들, 대회 성과와 그곳에서 느꼈던 자부심과 소속감, 뿌듯함 뿐이라고.
생각보다 내게 큰 가치들이었지만 사라진 게 아니다. 아직 내 안에 남아있고, 성과물들은 내 컴퓨터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나도 삭제시키지 않고 따로 모아두었다. 거기서 받았던 상장들도 아직 집에 있다. 체육복과 교복도 있다. 친구들의 사진도 있다. 반 친구들이 그립지만 마음속으로 응원하면서 같이 미래를 도모하던 그 느낌은 가슴속에 넣어두고 있다. 결국 지금의 나에게 다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가끔 드는 씁쓸함은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이겠지. 이렇게 옛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내가 뒤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을 보고 달리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깨고 자꾸 뒤를 보고, 옆을 보면서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를 살아야 하는데 자꾸 과거와 미래에 붙들려 있었다.
잠시 무기력해져서 하천 옆 산책로를 계속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공부를 왜 하고 있더라?' 최저를 맞춰야 하는 대학은 딱 하나, 한 달 남짓 남은 지금 이 시기는 달려야만 하는 시기, 하지만 내가 갈 대학은 이미 정해졌고 최저를 맞추는 일만 하고 있는 내게는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예전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준비했더라? 내 초심이 뭐였지?' 기억났다. 마무리를 잘 짓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걸로 부족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자문을 구했다. 답변이 왔다. 나와 비슷한 상황을 거쳐간 인생선배의 진심 어린 조언이 왔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답변에 한 문장이 눈에 유독 띄었기 때문이다. 남들과 나 자신을 비교했을 때, 내가 항상 안 되었던 이유는 잘해오다가 마지막에 지쳐서 손을 놓아버리는 습관 때문이라는 말 때문이다. 성장배경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나는 머리가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항상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던 제일 큰 이유를 이 사람은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표현해 놓은 것이었다.
잘해오다가 끝에 가서 지쳐서 손을 놓는 습관, 내가 항상 엄마한테 등신이라는 말을 듣던 이유. 단순히 체력 탓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눈물이 났다. 내가 이제까지 수능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받고 힘들어도 절대 손은 놓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 와서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 끝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라톤에서 달리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쓰라려서 울고 있는데 다시 일어나서 걷기라도 해야 하는 지금 이 시점, 나는 그래도 완주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포기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