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향해 다시 걸어가자

산뜻한 발걸음

by 칼미아

오늘부터 동생에게 수학이랑 영어를 가르쳐주게 되었다. 대신 대가로 영미권 선생님들과 화상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약간 앞이 깜깜하다. 내 동생은 워낙 활발하고 자리에 오래 앉아있질 못한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벌써부터 스케줄을 다 엎어버리려고 한다. 나도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못 찾아뵀던 선생님들도 만나러 가는 등 할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수업시간을 늘리라고 하는 엄마와 줄여달라는 동생 사이에 끼여서 죽을 지경이다. 말 그대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질 때 내가 그 새우다. 하루에 6시간씩 하라는 엄마와 주말에는 약속 있어서 못 한다는 동생. 환장하겠다.


머리가 너무 아팠지만 가까스로 대충 스케줄을 짜고 나는 어제 동생을 데리고 쇼핑을 했다. 화장품을 다 새로 샀고, 학용품과 옷은 나중에 돈을 더 모으고 나서 사기로 했다. 동생을 데리고 노래방에 가서 쓰레기 전 남자 친구를 버리기 위한 노래들을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만화카페 가서 밀린 웹툰도 다 보고 만화방만의 특유 음식들을 먹으며 잠도 잠시 잤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앞으로 나갈 준비를 조금씩 하는 느낌이다. 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하는 일들을 전부 다 하면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대로 하다 보면 절반 이상은 거뜬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 정리를 도와준 친구에게는 2월이 지나 내가 성인이 되면 술을 사기로 했다. 그전에 빨리 만나고 싶긴 하지만 동생 과외로 인해 바빠져서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17일 이후에 일정을 잡기로 했다. 친구 얼굴을 어떻게 볼까 싶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녀가 버린 남자의 고백을 받아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두 번째는 내가 그 사실을 몰랐지만. 전 남자 친구이자 지금은 그냥 남사친인 애는 내게 카톡으로 거의 석고대죄를 했다가 지웠다를 반복했다. 나는 그냥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줬다. 그리고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제대로 경고해줬다. 그나마 친구로 남게 해 준 내게 감사를 표하면서 걔는 연락을 멈췄다. 이 정도면 정신 차렸겠지.


어쨌든 나는 모든 걸 뒤로하고 이제 앞으로 갈 일만 남았다. 다시 내 일상을 되찾은 느낌이고 나 자신을 찾은 기분이다. 어쩐지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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