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에 잡혀 살지 않기를 바라며
문예창작학과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국제통상학과 국립대를 기원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국제통상학과를 가게 되면 나중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취업전망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긍정회로를 돌렸다. 곧 이 선택이 더 좋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평한 건지 저주인지 나는 또 선택을 하게 되었다. 국립대 문예창작과를 붙은 것이다. 그리고 사립대 국제통상학과도 붙었다. 둘 중 하나만을 택해야 했다. 내가 그렇게 울고불고 원했을 때 오지 않았던 문창과가 내가 마음을 다 정리한 후 온 것이다. 심지어 문창과는 부모님이 극구로 말리고 졸업하고 뭐 해 먹고 살 건지 계속 물어보던 과였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뭐해먹고 살 거냐는 질문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왜냐하면 국립대라는 소리를 듣고 바로 사립대 예치금을 빼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립대 국제통상학과 발표를 기다렸다. 대기번호 10번까지 올라온 상태였고,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다. 붙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위에 대학은 바라지도 않았으니.... 하지만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국립대 문예창작학과를 가게 되었다.
분명 과거에 내가 죽도록 원했던 내 꿈의 시나리오였는데 왜 지금 난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엄마는 표면으로는 수고했다고 했지만 나를 옆집 오빠랑 비교했고 아빠는 자신의 친구 딸과 비교하며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가 공부시키지 말라고 했을 때 들었어야 한다며 아빠의 기대는 서울이나 적어도 지방 최상위권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외고에서 나왔을 때... 농약을 먹고 자살하려고 했다고 하셨다. 내가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해서 집에 왔을 때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아빠의 말.."그냥 죽어버리지.. 왜 살아 돌아왔냐." 이 말은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빠도 나도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갔고 노후도 없다는 부모님은 동생을 우리에게 떠맡기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내가 대학 가는 시점으로 산으로 잠적하시겠다고 하셨다. 밥을 먹으며 동생에게 물어봤다. "너는 커서 뭐 하고 싶은데?" 동생은 모르겠다며 일단 댄서를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동생의 작은 키를 바라보며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내 일이 되어버리니까 앞이 깜깜했다.
솔직히 이 말은 하고 싶었다. '아빠, 내가 아빠 친구들 보여주려고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그 언니랑 비교할 수도 없는 게 조건과 환경이 다 틀리잖아요. 그리고 오빠랑 나는 인생 이제 시작인데 벌써 저희 인생 끝났다고 하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지만 아빠의 성격은 나와 같아서 과정에 칭찬해주는 엄마와는 달리 결과 때문에 주변의 시선 때문에 아주 힘들어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오히려 화를 내게 되었다. 혹시나 오늘까지 발표가 남았냐는 마음에 내게 뭐 하냐고 넌지시 물어보는 아빠의 전화를 짜증 내면서 끊었다. 나는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과거가 나를 너무 잡고 있었다. 가슴에 그었었던 상처가 따가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가슴에 창을 낼 수 없는 걸... 나 때문에 아빠가 죽을 뻔했다. 그래도 아빠와 나를 생각하면 가장 좋은 것은 현재에 만족하며 앞으로를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아빠도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감정형이라서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 고장 나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