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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Oct 27. 2023

알면서도 힘든 것들....

모두 파이팅 하며 삽시다!!

 편입을 왜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다. 여기에 계속 머물다간 취직은커녕 이력서조차 건네보기 힘들어질 테니까. 잘 나오는 학점, 내 글을 좋아해 주시는 교수님, 막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들... 모든 게 완벽하게만 느껴지는 이곳에서 나오기 싫다. 마치 현실은 잊고 사는 가상세계에서 막 첫걸음을 떼려 하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또 의미를 부여하고 노력하게 되겠지. 사람들이 삶을 살아내기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하는 이유는 지옥 같아도 의미를 붙여 가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며 어떻게든 살아가기 때문이다. 편입은 간절하지 않으면 반수나 재수를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들 말한다. 나는 지금 간절하지 않지만 간절한 상태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의미를 붙여가며 졸업하고 나서의 내 모습을 항상 억지로 되뇌면서 이게 아니면 죽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마치....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던 고3 때의 내 모습과 비슷하게 되고 말 것이다. 


 엄마에게 독서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편입에 도움이 하나 안 될만한 것이라고 현재 내가 다니는 과도 변변찮고, 자소서에 차별성도 없을 건데 도대체 편입하려는 대학 교수가 나를 왜 뽑냐고 말했다. 한 마디로, 시간 낭비할 바엔 스토리가 지어지는 동아리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괜히 내가 하고 싶은 거 들어갔다가 나중에 편입 공부할 시간마저 날리지 말라는 얘기다. 나는 지금 대 1인데, 왜 우리 엄마는 고3 때 그 모습 그대로 나에게 똑같은 얘기를 하는지.... 고3 때 자소설을 쓰기 위해 모든 게 대학에 가기 위해 짜였던 삶이었는데 지금 그걸 되풀이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걸 하소연하고 앉아있을 순 없다. 이 모든 것은 내 탓이기 때문이다. 내가 애초에 고등학생 때 정신 차리고 공부했으면 지금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 편입을 위한 동아리 활동을 고려해야 할 상황도 안 생겼을 것이고, 자유롭게 연애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다. 아무것도 못하고 늘어지기만 하는 폐인이 되겠지...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엄마에게 그냥 독서 동아리가 아니라 독서 토론 동아리라고 포장하며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고3 때 마지막 선택은 내가 했었던 것처럼 그 선택으로 인해 지금 고생을 하고 있지만 후회하지는 않기로 했다. 나는 꽤 만족하니까. 하지만 나는 타인도 중요한 사람이라 내 가족 전체가 만족하지 않으면 성공했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스스로도 언젠가는 이런 환상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사회 직전 지옥을 맛보고 현실감각을 키워야 한다는 걸 안다. 스스로가 살짝 미워져 눈물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친할머니의 장례식에 가기 위해 집으로 내려가서 사춘기로 힘들어하는 동생을 마주했다. 고3 때의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엄마와 오빠는 그녀가 춤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을 반대했고 나만 지지해 주었다. 나 또한 동생 나이로 돌아간다면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그렇다고 공부를 아예 놔버리는 것은 싫어서 공부는 열심히 챙기라고 했다. 


 점점 오빠를 닮아가고 있다. 오빠도 내가 이 나이 때 똑같은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이다. 현재 나의 현실감각은 오빠와 엄마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딱 동생과 오빠의 사이 정도다. 동생 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해야 하는 것들도 포기할 줄 모른다. 양손에 뜨거운 감자를 쥐고서 저글링을 여전히 하고 있다. 동생 나이 때부터 이 짓을 시작해서 아직까지 그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동생에게 이러쿵저러쿵 조언할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그래서 동생에게 차마 춤을 포기하고 공부나 하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포기해 가면서 하기 싫은 것을 강요받는 느낌이 얼마나 그지 같은 지 아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서 내 선택을 후회하면서 그때 어른들의 말을 들을 걸 생각하는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간사하고 아이러니 한가... 어른들은 맞는 말만 한다. 그래서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어른들도 이런 잔소리들을 할 때 우리가 어떤 마음인지 모르고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싫다 하고 마음대로 나갈 걸 알아도 그게 현실이기 때문에 맞는 말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인들도 겪어봐서 우리를 이해하지만 그건 그거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하지만 어른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 잘 사는 부류가 있으면, 그 말을 절대 안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적성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아서 책임을 지겠거니 하고 놓아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에 어른들은 놓지 못한다. 모든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엄마는 20살이 된 나에게 아직도 학교 활동에 힘쓰라고 충고한다. 이럴 때 가끔은 아직도 엄마 눈엔 아직도 내가 15살로 보이나 싶어서 서운하기도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고 부모에게 반박을 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 너무 분한 사실이다. 부모는 맞는 말만 한다. 아니라고 느껴지는 말도 언젠가는 사실이 되어 있어서 얄밉기까지 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수긍하면서 나 또한 어른이 되어간다. 삼 남매 중 둘째, 그것도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매 사이에 태어나면 이렇게 거울치료가 가능하다. 그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어서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되지만, 요즘 들어 그 덕분에 내면적으로 폭풍 성장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문예창작학과생이어서 그런지 엄마랑 이렇게 가끔 말다툼을 하고 나면 억울하다가도 드는 생각이 이렇게 절절한 이야기는 글 소재로 꼭 써먹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지금 학과가 만족스럽다는 사실을 착각이라고 환상이라고 이제 이 달달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어야 하는데 엄마 오빠처럼 현실감각이 뛰어난 냉철한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데 내 마음은 아직도 지금의 내 동생처럼 환상과 현실 사이의 달달한 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어른이다. 참 애매한 나이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철이 애매하게 들면, 과거처럼 또 애매한 결과가 나오고 이에 대해 또 좌절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둘 다 놓고 싶지 않다. 행복과 현실... 둘 다 놓고 싶지 않다. 슬슬 편입을 준비하면서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며 과거의 지옥이 반복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엄마와 오빠는 내가 우울해지는 게 충분히 힘들지 않고 몸이 편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행복해서 잊고 있었다. 엄마와 오빠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현실 세포가 너무 발달해서 절대 감정적인 위로 따윈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지나치게 감성적인 나 같은 사람에게 쓴 약이 되어준다. 덕분에 나는 환상에 빠져 살지 않고 현실을 바라보며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다. 다만 그 현실이라는 약이 너무 써서 눈물이 난다는 게 문제다. 어떻게 저렇게 눈물 한 방울 없이 덤덤하게 묵묵히 해 내가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지만 그런 점은 나도 닮는 게 좋겠지? 어쨌든 나도 동생도 우리 가족도 어중간한 고민으로 힘든 모두가 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정해진 답이 이미 있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올만한 어중간한 고민이 주는 묵직하고 기분 나쁜 고통을 반기는 자는 아무도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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