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내 보려고요
부모님 집에 살면서 생긴 가장 큰 바람은 내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부모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자존감이 내려가게 만든다. 실은 엄마와 부딪히고 싶지 않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모든 걸 다 내어주시는 헌신적인 부모였으니까, 하지만 헌신적일 수로 보상받고 싶어 하는 마음도 누구보다 컸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겁이 났다. 엄마가 내게 걸었던 기대와 미래에 엄마의 헌신에 보답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그로 인해 위축되고 점점 무능해지는 것만 같은 압박감이 싫었다.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편한 마음을 가지려고 했는데 내 극단적인 성격은 나를 우울증으로 다시 내몰았다. 생각해 보니 엄마와 떨어져 있었을 때 엄마와 가장 사이가 좋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내게 있어 양날의 검 같은 존재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내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아낌없는 조언을 주신다. 하지만 힘든 날에는 내게 짜증과 험한 말들을 쏟아내신다. 이해는 가는데 현재 상태로는 그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도 나는 버겁다. 그 결과 새 대학을 가겠다고 집으로 내려온 나에 대한 자책이 생긴다. 나는 나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변하고 싶은 마음도 정말 크다. 그리고 성급하고 조급하다. 어쩔까, 이런 모습의 나도 나인데. 바뀌려고 하면 할수록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 일부러 외면했다. 하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기에 그러려고 노력 중이다. 영어 문법 공부, 감정 일지 쓰기, 독서, 요가 등 전보다는 다양한 것들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조급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만 슬로우 모션 기능이 걸린 것 같다. 하지만 과거를 후회하거나 슬퍼하고 조급해한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가끔 답답해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 근본은 내가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신이 조금씩 돌아올수록 스스로를 소중히 대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까지 내 성격 자체가 장애 같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스스로도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내 성격과 기질 내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마음먹고 일어섰다.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제대로 된 방법을 몰랐던 나는 세상과 동떨어지는 그 느낌이 싫었다. 21살,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 단점 투성이지만, 내 인생이기에 아직 실수하면서 배울 수 있다.
하루에 수 만개의 실수를 한다고 해도 움츠러들지 않을래. 인생이 살기 쉬운 것이 아니겠지만,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선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선물 상자를 뜯어 무엇을 담을지 고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것. 미래의 21살의 나를 용서해주고 그때 살아있었음을 고마워하게 되는 그 날까지 조금씩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일어서야 한다. 매일 일어서고 주저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불안보다는 설렘을, 우울보다는 기대를 선택하기로 했다. 내 인생이니, 이제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눈치보지 않기로 했다. 못해도 못하는 대로, 잘되면 잘되는 대로 살아가기로 했다. 달려나가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런 평온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체득했다.
깨닫는 것과 체득하는 것은 다르다. 그 사이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무지막지하게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니 그 간격이 커도, 한 마디로 인생을 사는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 나는 앞으로 많은 날들을 더 살아가야만 한다. 그 과정 중에 행복이 들어있으면 좋은 거고, 아니더라도 내가 소소한 행복을 사이 사이에 책갈피처럼 끼워넣으면 된다. 그럼 그 책갈피를 보고 원하는 페이지를 펼쳐 볼 수 있겠지. 심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현대다. 하지만 한숨만 쉬며 일시정지 상태로 머물고 싶지 않다. 그냥 눈 감고 다이빙하듯이 이리저리 도전해볼까. 우울증이 나아지는 걸 느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현실과 상상은 다르지만 그 기분을 잃고 싶지 않다.
과거는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지만, 현재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모토1 :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거니까 눈치볼 필요가 없다.
모토2 : 과거/ 미래는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 불안할 필요가 없으며 현재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모토3 :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자 -> 어찌보면 인간은 실수를 하려고 태어난 존재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워나가고 수정해나간다. 그걸 하지 않으려 하면 발전은 없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쉽지 않다. 실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실수에 대한 인식이 그닥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토1을 사용해서 눈치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숨을 한 번 크게 내몰아쉬고 앞으로 나아가면 색다른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나는 인생이 다크 초콜릿이라고 자주 생각한다. 영어로 bitter sweet한 맛. 쓴 맛 뒤에 달달한 맛이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한 통을 다 비우며 더 원하게 된다. 더 이상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결과에 따라 내 인생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과정을 즐기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다. 항상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는 사람도 존경할 만하지만 강력한 역경을 마주쳤을 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다.
하루 하루를 버티며 살아나가는 모든 사람이 진정한 강자들이다. 힘들어도, 불안해도 가끔은 좌절해서 힘든 시기가 있어도 언젠가는 툭툭 털어내며 다시 달려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