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상태에서의 작은 도전
나는 요즘 TED강연을 열심히 듣는다. 주제는 주로 정신건강과 소통, 내 안에 있는 결핍들을 그나마 위로해 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버스에서 TED를 듣고 있는데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 학교 영어선생님은 TED로 교재를 만들어 우리에게 영어강연 과제를 내주셨다. 그때 당시 나는 내 친구와 함께 20분짜리 강연을 준비했었는데, 해리포터를 통한 위기를 맞이하는 자세가 주제였었다. 우리는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해리포터 덕후였던 것이다. 나는 해리포터 영화가 집에 DVD로 다 있었고, 원서 또한 있었지만 각 책마다 한 번씩 읽고 끝나버렸다. 읽는 것도 좋았고 가끔씩 내가 읽는 걸 녹음해서 들어보기도 했는데 내 발음은 물론, 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TED강연을 보며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위로와 객관적인 통찰을 얻었다.
주로 내가 흔히 아는 강연의 시작은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마음이 부러진 것과 같다는 비유를 쓰는 것이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 우리는 병원에 가라고 한다. 그저 스스로 이겨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리면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스스로 이겨내야 하고, 고작 그런 걸로 힘들어하냐고 한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았으면 함부로 얘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 평가원에 따르면, 21년 기준 우울증 환자수 91만 3841명, 1인당 진료비 56만 4712원. 계산을 해보면 약 5160억 5697만 8792원가량의 비용이 나가는 셈이다. 국가에서도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이런저런 조치를 하기 시작한 것을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 그 심각성에 대한 고찰을 더 하려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과 관점,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우울증을 질병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엄마만 해도 게으름이라고 치부해버리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몸이 아프고, 입 안이 마르고, 가끔은 땀도 많이 나며 사람들 눈 마주치는 게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화상영어 강사 채용에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1차 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다. 작은 성취의 시작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2차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크게 상심하지 말라고 평소처럼 하라고 하셨다. 나도 잘 안다. 잘하려고 더 애를 쓸수록 긴장을 더 많이 하게 돼서 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자가 임상 실험 보고서 작성자다. 실패건 성공이건 내 보고서의 연구자료로 착실히 쓰일 뿐, 좌절은 더 이상 비중을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심리학자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내 멘탈 관리부터 시작한 나는 이 기회를 통해 더 성장할 것을 안다. 지금 상태가 어떻든 도전하는 나 자신이 좋다.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 내가 주체가 되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삶, 나를 구성하는 중심이다. 이 중심은 나를 계속 나아가게 만든다. 내일 있을 면접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마음수양을 할 것이다. 불안을 낮추고 집중을 하는 오픈 포커스 브레인 기법 중 '합일형 대상주의'를 시도해 볼 생각이다. 마음이 가벼워진 채로 도전하면 결과가 어떻든 얻는 게 있다. 우울증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잃었고, 또 작고 다양한 것들을 얻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바뀌진 않는다고 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내 한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의 나도 수용해 주고, 앞의로의 나를 사랑하며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