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온 기회
화상영어 원어민 강사가 되기 위해 넣은 지원서, 1차 합격 통보가 메일로 날아왔다. 기쁨도 잠시, 나는 바로 다음 단계인 모의 수업 준비를 했다. 원래 나는 하루에 50분씩만 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그날엔 6개의 수강권을 써서 300분의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현직 강사인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했다. 모의 수업 면접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보자 각각의 선생님들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자질, 수업을 하는 도중의 팁,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 등을 알려주셨다. 중간중간에 프리토킹을 하면서 관심사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지만 나는 이왕 1차를 붙은 거, 2차도 바로 합격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연달아 6개의 수업을 하루에 해서 그런지, 요가를 다녀온 후, 내 에너지는 바닥을 쳤다. 그래서 모의 수업 관련 자료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짧은 복습을 후다닥 하고 면접을 봤다.
생각보다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되길래 기분이 좋았다. 합격하든 탈락하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떨어졌던 화상영어 강사직의 기회를 얻은 것 자체가 기뻤다. 그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안일을 한 번에 다 해버리고, 장렬히 소진되었다. 잊고 있었다. 나는 아직 우울증이 완치되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에 힘을 쏟고 나니, 무기력이 또 찾아왔다. 그렇게 잊어버리다가 나중에 결과가 오면 그에 맞게 행동하자 결심하고 도서관에 가서 컴퓨터 엑셀 연습을 하려고 했는데, 메일이 왔다. 채용팀에서 나에게 내린 결론은 '재심사'였다. 합격도 아니고 탈락도 아닌 '재심사'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주어진 기간은 3일, 그동안 채용팀에서 보내준 내 결점들 (문법, 문장, 발음 등)을 보완해야만 했다. 나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가진 영어에서의 결점들을 짧은 기간 내에 수정해나가야 한다. 역시나 첫 단계 때 했었던 것처럼 화상영어 수업을 많이 잡아서 하며 선생님들께 피드백을 받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래의 나라면 바로 합격을 못 했다며 망연자실하고 재도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기력한 상태에서 재도전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손으로 일구어낸 기회를, 그것도 우울증 회복 중인 상태에서 해낸 무언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과정 자체에 얼마나 설렜는지 잊을 수가 없다. 덕분에 화상영어 수업도 많이 받았고, 영어로 면접을 즐겁게 받았다. 후회에 머무르기보다는 방안을 생각할 때다.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벅차기도 하지만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긴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때가 20대 초반인 것 같다.
이제야 깨달았다. 불안감은 내가 억지로 없앨 수 없다. 그리고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과도하지 않게 컨트롤하는 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 그 임무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편안해지고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전부 실수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걸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힘들어하면 나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더 즐겁게 노력해 보기로 했다. TED강연에서 보니, 동기라는 것은 복잡한 것이라 했다.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중 내재적 동기를 발휘한 일이 더 오래 지속되고,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중간에 멈춰 서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멈춰서는 것 또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실수지만 앞에 말했듯이 사람을 실수를 통해 배운다고 했으니 과정을 즐기며 나아가는 것을 습관화하면 되는 것이다. 내게 동기부여를 해 줄 요소들은 내 주변에 아주 많다.
그렇게 하나 하나 해나가다 보면 언젠간 이렇게 노력한 나 자신에게 감사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뒤돌아보면 아픈 과거는 그저 내 열정의 추억거리, 아픈데도 나아가려 하는 내 모습, 내 방식을 찾아가려 학원에서 뛰쳐나와 나만의 방식으로 영어에 열의를 쏟아붓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내 자신감을 다시 찾았고, 힘들더라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고 몽돌처럼 계속 깎여 결국에는 둥글둥글한 사랑스러운 모습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예전 브런치 프로필의 이름은 '초긍정 오뚜기'였다. 이 이름은 내가 고등학생 때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썼던 이름이다. Roly-Poly-Optimist 그 대회에서 나는 내 아픔을 털어놓고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 과정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 발표했다. 마음을 다 내려놓고 내 이야기를 남에게 나누기 시작하니, 무대는 나만의 테라피, 앞의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관중이 되었다.
기대 안 한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나는 그 당시의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영어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 나중에 TED강연에 나가보는 것, 그게 내 꿈이었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너무 아팠다. 가장 답답한 점은 그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고,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모든 일을 내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남들이 미워지고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안 좋은 일들도 여러 개 있었지만 세상에 힘든 일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그쳤다. 하지만 이젠 나 자신 그대로를 수용하는 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안다. 부족한 나도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은 속도가 아니더라도 끝까지 가다 보면 어느샌가 세상은 나 자신으로 꽉 차게 되고, 그 인력에 주변 사람들도 모여들게 된다.
이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을 연구할 때다. 연구에서 끝나면 안 되고 꼭 실생활에 적용해 보면서 결과를 봐야 한다. 우울증이 걸린 후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내게 올 기회도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과거에 쌓아두었던 노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기회는 생겼다. 앞으로 나 자신을 꼼꼼히 분석해서 지켜낼 것이다. 그게 삶의 1순위 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이 마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