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체력을 보완할 방법
몇 개월간의 우울증을 겪으면서 이제 살고 싶다 정도가 아니라 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어졌다. 하지만 초반에 너무 힘을 쏟으면 점점 지쳐서 나중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알기에 나는 페이스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여전히 나는 폭식을 하고 있고, 어떤 날은 꾸준히 해오던 것 몇 개를 빠뜨릴 때도 생겼다. 하지만 자책하지 않기로 하고 다음날 다시 이어가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꿈이 생기고 무언가에 집중하면서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에만 큰 에너지를 쏟는 것에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다. 원어민 강사 면접 준비를 하는 시간 동안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에너지의 총량 법칙 따위가 적용되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점점 내 에너지의 용량이 일정 부분 정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핑계 같아 보여 고개를 저으며 나 자신을 더 몰아붙이고 싶어 졌지만 그렇게 하면 오히려 나에게 손해라는 걸 알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내 뇌의 상태를 짐작해 보자면 거저께 면접 때문에 잠을 설쳤고, 면접 준비한답시고 화상 영어 수업을 300분을 연달아 받았다. 그다음 날에 면접 준비 때문에 못한 동생 과외를 1시간 30분씩 나눠서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떨어지는 체력에 답답해했다. 우울증 초기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고 다음날 아침이 오는 게 싫었다. 요즘은 하루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조급증이 나 다음날 아침이 오는 게 싫다. 시간에 쫓기는 느낌인데 아직까지 내 몸은 반응속도가 느리고 정신은 가출할 때도 많다.
우울증을 통해 얻는 것도 많지만 반복해서 겪고 싶지는 않다는 게 내 결론이다. 주위 내 또래 중 벌써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조급증은 한층 더 발전한다. 취업에 정해진 나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에 나이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허비한 시간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새로운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뒤쳐진 만큼 2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게 세상 사람들과 우리 엄마의 시선이었고, 나는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어쩌라는 건지 참 답답했다. 가끔은 너무 힘들게 사는 부모님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받아보려 했으나 오히려 내 미래는 부모님보다 더 암담할 것 같아서 우울해졌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동기부여를 받으려 노력하고 계속 뭔가를 해나가려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는 나 자신으로 리셋된다.
지금 내게 희망은 아침이 되면 일어나는 기분의 전환이다. 이 느낌, 이 느낌을 기억하고 있으면 전날 하루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음날 이어나갈 수 있다.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 어떤 말인지 안다. 하지만 세상이 느린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기에 조금은 무섭다. 알을 깨고 나온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꾸준히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감정기복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낮에는 밝게, 밤에는 쉽게 지쳐버리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빠는 잠시 생각하다가 매일마다 내게 블루베리 스무디를 갈아주겠다고 하셨다. 베리류가 기력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하시면서. 비타민 섭취, 음식을 통한 기력 보충,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운동은 요가 외에 다른 걸 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나는 심리학 공부, 영어 공부, 컴퓨터 공부 등 할 께너무 많아졌다. 멀티 태스킹이 잘 안 되는 나는 또다시 멘붕에 빠지지 않기 위에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하나도 잘 안 될 때가 많다. TED강연에서 '헤일리 하드 캐슬'이라는 강연자는 '정신 건강의 날'을 만들어 정신건강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학교에서는 정신건강 위생을 위해 가끔씩 쉬는 날들을 준다. 재정비할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단기간에 급성장을 하면서 빠릿빠릿한 사람을 선호하는 성향을 가졌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느린 사람이다. 체력도 그 느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배우는 속도도 더뎠고, 인간관계도 더뎠다. 하지만 끈기는 있었다. 언젠간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응어리들을 다 풀어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7살 때부터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남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아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어려워했고, 나 또한 외로움은 많이 타면서도 타인이 어려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도전 안 하는 상태는 또 싫어서 남들과 어울리고 싶다. 나는 아는 게 많아지면, 지식을 쌓으면, 좋은 학벌을 가지면 사람들이 다 다가오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공부를 택했지만 선생님께 질문을 하는 것 자체에서 막혀 버렸다.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잘 나왔지만 고등학생 때에는 내 발전이 막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걸 온전히 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외국어 고등학교를 나오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놀라웠다. 아빠는 자살시도를 할 마음이었으며 엄마는 집안을 발칵 뒤집었다 내려놓으셨다. 이해는 갔다. 하지만 난 그때 이미 지쳐 있었다.
내가 타인에게 마음을 닫게 된 이유는 내가 힘들 걸 타인에게 말해봤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일도 힘들었는데 그런 삶을 살아가는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은 답답해서 내 사주를 보러 가셨고, 나는 섬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오셨다. 섬 위에 큰 별 하나가 떠 있는 형상, 혹은 열매가 많은 나무인데 흙의 양이 너무 적은 형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나는 사주를 맹신하지 않는다. 내 힘듦은 심리학적으로 풀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퍼시잭슨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 운명을 직접 만들어 나가는 거라고.
여태껏 지난 4달 동안 잘 먹고, 잘 쉬고, 많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원하는 정도는 이게 아닌 게 욕심이었다. 이제 조금씩 발을 떼고 나아가기 시작해서 더 달리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는 내가 약물 자해를 한 것에 대해 후회하게 만들었고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대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나는 항상 다시 일어났으니까. 그리고 내 인생을 새로 개척할 의지가 있다. 내 발목을 잡는 건 내가 멈춘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이 나를 지독히도 괴롭힌다. 하지만 이때 필요한 게 자기 수용이란 걸 안다. 그 당시에 내가 살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선들. 열정은 있었지만 쉽게 지치는 나 자신을 보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내 삶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왕 태어난 거, 제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
효도도 해보고, 자유도 느껴보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이루면서 힘든 것조차 버티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내가 지향하는 삶이다. 그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심리학을 배우기로 마음먹었고, 다시 1학년이 된다면 교양과목으로 듣고, 2학년 때는 복수전공을 하고 싶다. 후회도 많이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으니 이제는 투지만 남았다. 오빠는 잠도 많이 자면 습관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라. 과제는 미리미리 해놓고, 커피는 계속 마시면 내성이 생긴다고 작작 마시라고 한다. 오히려 그게 더 피곤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하는데 내가 이 방법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근데 정말 커피는 못 끊을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잠이 많은 성향이 극도로 싫어서 별의별 잠을 쫓아주는 것들은 다 섭취했다.
졸음껌, 핫식스, 커피, 이클립스 등 내 몸을 점점 망치고 있다는 생각도 못했고, 피곤해질 때마다 양치도 하려 했는데 공부보다 그게 더 귀찮았다. 하지만 난 조언대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조언대로 할 생각이다. 21살의 난 정서적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귀중한 기회를, 내 삶을 내가 챙겨 나가며 하루하루 버텨나갈 것이다. 엄마가 저렇게 힘들어하면서도 3명이나 낳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은 내게 남매를 준 엄마에게 참 고맙다. 오빠에게선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동생에게서도 마찬가지다. 성향이 달라서 자주 비교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힘들 때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는 게 보이는데. 내향형이라서 성격이 이래서, 체력이 저래서 등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
그저 더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을 뿐. 깨지지 않고는 몽돌이 될 수 없다. 두렵지는 않지만 그 깨짐을 더 많이 경험해 볼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조급해질 뿐, 울고 싶지 않다. 강인해지고 싶다. 나는 강한 사람이다. 아픔을 내 고난을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결국에는 사랑한다. 내게 이런 고난이 온 것은 이유가 있다. 반드시 이유가 있다. 이겨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정신 차리라는 신호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내 신념은 믿는다. 신이 존재하건 없건 나는 나 자신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매일매일 내적으로 성숙해지고 있고, 나는 그런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언젠간 나도 그때를 추억으로 떠올리며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