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며 발견한 나 자신의 모습
원서 트와일라잇의 첫 부분을 읽고 있다. 뱀파이어와 인간은 천적이다. 어찌 보면 에드워드의 생각처럼 공생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인공 벨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호기심과 경이를 가지고 에드워드가 속한 세계인, 뱀파이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뱀파이어에 대한 무서운 소리들은 전부 허상이라고 여긴다. 내가 가지는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오늘 카페에 가서 트와일라잇의 나머지 부분을 읽고 독후감을 쓰러 갔다. 그러다 카페에 간 김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나의 옛 절친은 학교에서 자신이 느끼는 고민을 쏟아냈다. 21살들의 고민은 다 비슷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중심이 되어 내년에 삼 학년이 되면 취업준비도 해야 하는데 과제도 해야 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고 알바도 알아봐야 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나는 문예창작학과에서 보낸 1년을 절대 헛되이 보낸 1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행복했고 학구열이 불타던 시기였다. 자존감이 한없이 올라가던 때였고, 나 또한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 사람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친구들과 달리 나는 내 전공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고 그만한 용기도 그땐 없었다. 그래서 난 결국 다른 길을 택하기로 했다. 너무 무서웠다. 지금껏 소속된 곳 '학교'라는 곳이 있다가 사라지니까 뭘 해야 할지 처음에는 몰랐다. 힘들다고 해도 학교에서 버티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자책을 하게 되었고, 우울증이 왔다. 하지만 얻게 된 것도 있었다. 바로 '나 자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왜 고생을 무릅쓰고도 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행복에 목매달지 않게 되었다. 20대를 굳이 재밌게 보낼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 한 마디로 더 이상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다. 힘들게 보내고 30대에 안정을 찾는다 해도 상관없다.
이제는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란 것을 깨달았으니까. 내게 꿈이 있다는 게 감사하고, 앞으로 닥쳐올 시련을 대비하기 위해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니 나만 불안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불안하고 바빠서 미루게 되는 건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정말 원하면 하면 된다. 그리고 그 정도로 바쁘면 남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안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내가 계속해서 훈련을 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여하튼 새로운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불안과 고통을 피해서는 안 된다. 벨라도 무서웠을 것이다. 에드워드라는 존재가 처음에는 짜증이 났고 나중에는 관심이 갔고, 나중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강해졌다. 두려워도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는 편견 없이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다.
니체가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살라고. 그건 아마도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불안과 두려움을 뒤로 한채 시도하면 조금은 가볍게 도전의 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 대하는 거대한 두려움. 나는 아이였는데 어느덧 취업을 해야 하는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돌아가는 것 같고 내 시간만 한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불평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불평하고 후회해 봤자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다면 내 감정들을 내가 선택할 수밖에. 두려움과 불안함 보다는 호기심과 재미를, 회피보다는 도전을, 후회보다는 만족을 택해야겠다. 그건 20대가 되어도 30대가 되어도 내 나이가 어떻게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나이에 따른 성장을 믿지 않는다. 모두 다 각자의 삶과 각자의 속도가 있다.
그러니 세상이 나에게 느리다고 다그치면 나는 당당하게 말하리라. "그 기준은 누구의 것인가. 이 삶은 누구의 것인가." 물론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두드리며 울 때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다시 일어나서 도전할 게 뻔하니까 그 사이의 과정은 좀 생략하거나 짧게 만드는 훈련을 할 수밖에. 앞으로의 내 삶의 도전들 앞에서 나약해질 때면 나는 21살, 2024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몇 달이 남은 2024년이지만 내게는 너무 길고도 짧았던 2024년, 벌써 후반을 달려가고 있다. 이제야 자신감이 생긴 것 같은데 어째서 시간은 이리 빠르게 흐르는지. 그래도 나는 나만의 시계를, 나만의 속도를 사랑한다. 끝에 가서는 반드시 빛을 발할 속도와 시간이니까. 에드워드와 벨라의 시간이 달랐지만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