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심리학에 입문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책에는 여러 심리학자들이 나오고, 그 중 나는 세 학자가 마음에 든다. 융, 아들러, 에릭슨. 나는 환경과 어렸을 때의 성장 배경이 성격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게 평생의 성격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경험이 적었거나, 아니면 과잉보호를 받았든, 그게 아니고 학대를 받았든 사람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이미 자신 안에 형성된 부정적인 자아를 없애고 새로운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인사이드 아웃2'에 나오는 라일리의 자아처럼 말이다. 그녀의 자아는 불안에 의해서 계속 변한다. 그리고 기쁨이와 불안이는 라일리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영향을 줄 순 있지만 감정 그 자체가 그 사람 자체를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생각, 혹은 기억과 학습들이 그 사람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복합적인 존재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감정도 수시로 변하고, 생각도 수시로 변하고, 환경도 변하기 때문이다. 이미 형성된 인격은 잘 뽑아지지 않을지 몰라도 머릿속에 깊히 박힌 상처의 기억들이 있어도, 새로운 기억과 경험, 환경으로 덮어쓰면 책에 나오는 내용처럼 현재에 초점을 둠으로 인해 과거와 미래를 다시 써내려갈 수 있다. 아무리 아프고 고장난 과거라는 생각이 들어도 현재에 집중하며 성장해 나간다면 내 과거는 그저 내 성장을 위한 풋풋한 과거일 뿐,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것은 찬란한 미래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 더 찾았다.
나는 성장 자체를 좋아하고, 아늑한 카페에서 창문으로 내리쬐는 태양이 주는 포근한 느낌을 좋아하고 그 아래에서 책을 읽으며 사고하는 것을 퍽 좋아한다.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마음의 평온함을 되찾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게 말했다. "힘들 때마다 누구를 찾아 힘듦을 털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책에서는 감정을 담아내줄 대상이 필요하기도 하다고 나와 있었다.)하지만 언젠가 털어놓을 사람이 없으면, 혹여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너를 이해해줄 대상이 없는 거잖아.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할꺼야?" 할머니는 내게 힘들면 언제든지 털어 놓으라고 하셨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다년간 겪어 오시던 외할머니는 나를 보면 안타까워 하셨다. 그리고 나는 힘들 때 할머니를 뵙고 싶었다. 하지만 털어놓는다고 항상 기분이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죄책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힘든데 내가 보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만약 할머니께서 어느날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랬기에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단련하며 정신과 선생님께도, 상담 선생님께도 하소연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소연 보다는 내가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해나가고 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에 초점을 맞춰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정신과에서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나온 결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너무 힘들때는 내 감정을 다 쏟아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습관이 되게 둔다면 안된다. 그러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다. 내가 심적으로 힘들 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 확신, 내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내 감정적인 부분을 다룰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그러니 회복 탄력성이 돌아온 것 같을 때는 스스로에게 의존해보록 하자. 스스로에게 묻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계속 접하도록 하자. 과거의 학자들과 성인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책과 대화를 하면서 내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그들 또한 한 때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그리고 어두운 과거가 있었기에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음을 이해하자.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게 내게 많은 도움이 됐다. 독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던 내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지만 과거의 내 자신을 놓아주기로 했다. 과거의 나를 붙잡고 있으면 내 어깨가 너무 무거워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짊어지게 하는 짓이다. 굳이 하소연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은 느낀다. 그 점이 아플 때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이고, 가장 답답한 부분이다. 아플 때는 모두가 안다, 그래서 다들 쉽게 털어놓으려 하지 않으려는 거겠지. 그리고 나중에서야 전문가를 찾는다. 의지할 때가 주변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들이 함께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엄청난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들어주겠다고, 희망적인 태도를 지속해서 보여주면 커다란 자원이 된다. 하지만 그 점을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야 할 마지막 단계, 또 하나의 작은 성장의 콤마를 찍을 때가 된 것 같다. 힘들 때 적었던 유서도, 계획서도 다 태워버렸다. 과거의 고통에 대한 집착 또한 불과 함께 타버리고 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 아는가. 그 재가 쓰레기가 아니라, 다시 새로 피어날 불사조 새끼라는 것을. 어렸을 때 즐겨보던 해리포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덤블도어 교수는 해리에게 재에서 새로운 피닉스가 태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자. 뜨겁게 타오른 것은 쓰레기통에 버릴 대상이 아니다. 새로운 자양분이다. 나는 불사조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꽃을 피우고 싶다. 내 마음속에 새로운 꽃을 피워 그 꽃을 지키기 위한 단단한 보호막을 만들고 싶다. 그 보호막은 언제든 치워질지도 깨질지도 모른다. 어린왕자가 답답해하던 것처럼 나도 답답해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결국 어린왕자는 장미를 떠나 깨달음을 얻고 다시 돌아온다. 장미를 비로소 이해한다. 장미는 사실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돌봐주는 어린왕자가 좋으면서도 짜증나는 것은 그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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