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을 써보자면...
신간 에세이를 내고 나서 가족과 함께 포항 바다를 보러 갔다. 풍랑경보가 뜨고 밖은 폭우로 인해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2박 3일 동안 여행을 한 게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토요일에 나는 문득 통창으로 보이는 성난 바닷가를 바라보다가 이내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책을 내고 나면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얘기와 교수님께 꼭 연락하라는 얘기, 그냥 친구로서 건넨 말이었지만 나는 왠지 모를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요동치는 바다를 바라보다 이내 교수님께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내가 쓴 또 다른 책의 원고와 함께 말이다. 교수님이 내주셨던 방학 과제가 담겨있는, 내가 가장 큰 공을 들여 쓴 책이었다. 보내고 나서 한 동안 답장이 오지 않아서 교수님께 내가 실례를 범한 게 아닌지 또 안절부절하게 됐다. 이미 떠난 학교였지만 이기적 이게도 난 교수님의 제자로 남고 싶었다. 교수님은 장문의 카톡을 내게 보내주셨다. 응원과 위로를 포함한 장문의 카톡은 내게 큰 힘이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책을 읽고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을 확고하게 해 주셨다. 멀리 있어도 언제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어른이 계신다는 게 든든했다.
이제까지 나만 모두가 내게서 마음을 돌렸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간을 카톡으로 홍보하다가 옛 인연들과 다시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게 되었고,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그들에게 털어놓고 다시 친목을 다질 수 있었다. 마음이 한결 편했으며 모두 내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이럴 거였으면... 진작 연락을 할 걸 그랬다. 나는 그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내가 예상했던 대로 나의 예기불안은 허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으니 눈물이 나왔다. 내가 내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맞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안 좋게 바라볼 거라는 것도 다 내 가정이었고, 벽을 세운 것도 나였다. 따뜻한 카톡들의 폭격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나는 요즘 계속 읽어나가고 있는 '웃따 심리상담사'님의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라는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나와 내 상담 선생님이 서로 나눴던 대화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가 상담을 받은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뜨끔하는 부분들이 나올 때마다 놀라기도 하면서 마음이 아주 편하기만은 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 결핍과 부족함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 즉, 자기 수용이 정신건강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았기에 천천히 천천히 책을 나눠서 읽었다. 받아들이는 방식도 내 방식대로, 한 번에 책을 완독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눠 읽더라도 끝까지 가보겠다는 게 내 목표였고, 짧은 가족과의 여행이 끝난 후, 나는 책을 완독 했다. 그리고 내 성격에 대한 저주를 그만하게 되었다. 동생을 보며 시기심을 느낄 때도 있고, 나는 왜 오빠와 동생과 다르게 소심하게 태어났나 원망도 했다. 하지만 내 성격에 좋은 점은 나만이 찾을 수 있고, 찾고 나면 참 묵직한 보석같이 빛난다. 틀린 성격은 없다는 책의 메시지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 앉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내가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교수님께 카톡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피해왔던 인연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기로 했고, 그 첫 단계를 해냈다.
자격지심과 열등감과 수치심 때문에 시도도 안 하던 일이지만 막상 세상에 내 부족함을 드러내 보이고 난 후, 책을 쓰고 교수님께 원고를 보내드린 후, 나는 비로소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부족해도 지금 당장 망하거나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걸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교수님은 내 책을 문학적으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이보다 더 솔직한 자신과의 대면은 없을 거라 하시면서 말이다. 나를 배려해 주시느라 객관적인 평가를 못하신 것 아닌가라는 내면의 비판자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교수님은 전에 내 과제에 빨간색으로 코멘트를 붙여주실 때도 그렇게 응원과 용기를 주시던 분이었다. 교수님이 보내신 카톡은 교수님의 진심인 것이다. 도망친 내가 부끄러웠지만 나는 영원히 교수님의 제자로 남기로 했다. 훗날 꼭 다시 찾아뵐 것이다.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며 더 단단해진 나 자신을 데리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