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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Sep 04. 2024

데미안을 읽고 나서

2 회독의 새로운 맛

  데미안을 읽은 건 이번 처음이 아니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자 신비한 분위기를 풍긴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싱클레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데미안이 제시하는 새로운 질문들과 삶의 태도에 싱클레어와 함께 놀라 하며 싱클레어가 겪는 심경의 변화를 그대로 따라간다. 나에게도 데미안 같은 친구가 있다. 문창과에서 만난 그 친구와 공통으로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얘기하면서 색다른 해석들과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게 즐거웠다. 그 세계에 있는 동안은 걱정과 근심 따윈 잊혔다. 하지만 작품과 문학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며, 나 또한 싱클레어처럼 혼란을 느꼈다. 내 안에서는 항상 무언가가 답답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때론 싱클레어가 하는 고민들을 내가 하기도 했으며 나는 나만의 데미안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데미안은 책에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한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개념과도 같은 존재였다. 나의 데미안은 때로는 친구이기도 했고 때로는 교수님이 데미안이 되어 주기도 했다. 

오빠가 버리고 간 소중한 '데미안' 소장용으로 내가 가짐.

 데미안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하늘은 맑건만'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물론 결이 살짝 다르지만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점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싱클레어처럼 나 또한 방황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부모님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나름대로의 반항을 했다. 그러면서 가끔은 거짓말을 하기도 하면서 우월감을 느꼈다. 일종의 잘못된 쾌감이었다. 하지만 점점 자기 확신의 크기를 키워가면서 제대로 된 성찰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학교에서 과제에 치여 살며 자신이 과제를 하기 위해 대학에 온 것인가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나는 자기만의 행복 압정을 만들라고 조언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우울에 좋다는 향수도 추천해 주고 플레이리스트도 공유해주고 할 수 있는 제일 간단한 행동들을 알려 주었다. 대부분의 지식은 웃따 심리상담사님의 영상에서 얻은 것이지만 그 친구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고 있었기에 적용시켜 도와주자, 그녀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에게 자퇴는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자퇴가 답이 아닌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친구가 자퇴가 하고 싶은 시점과 그녀가 느끼는 감정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그래서 더 막고 싶다. 나는 고등학생 때 전학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즉,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대학생 때, 멈추는 것 또한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왕 멈춰 섰다면 정지보다는 일시정지가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획 없는 멈춤은 위험하다는 것과 자기 자신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므로 일상의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은 나는 이제 당당하게 살기로 했다. 내 인생이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힘든 시기가 와도 그때는 멈추는 것보다 억지로라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생겼다. 어떨 때는 그냥 버텨야 한다는 말처럼 말이다. 


 나는 데미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기중심이 단단한, 그렇다고 큰 일을 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자신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자, 새로운 관점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단한 인물 말이다. 데미안이 되지는 못해도 점점 변해가는 싱클레어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대에 따라 변해가는 싱클레어의 삶은 참 흥미롭다. 내가 겪는 것들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계속해서 타인에게서 데미안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고 스스로 나만의 데미안을 만든다. 무너져 내릴 때마다 '질문'을 던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 하고,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힘을 기르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없애지 않을 것이다. 현재는 책에 대한 호기심을 점점 키워가고 있고, 호기심을 매개로 세상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바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저 달달 외워야 나중에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것들이 많다.


 데미안에 이런 문장이 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이 다가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선생님의 관점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데미안은 우리 안에 있는 선과 악 둘을 다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가야 한다는 그 시대에는 조금 급진적인 사고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란 싱클레어에게 이는 신선한 충격이자 위험한 사고였다. 하지만 그게 위험한 사고라는 기준은 아무도 만들지 않았다. 싱클레어의 성장배경과 환경에 의해 생긴 싱클레어의 무의식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싱클레어는 점점 변하게 되고, 죄책감과 후련함을 반복해서 느끼고 고독함과 해방감을 느낀다. 데미안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리워한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여러 감정들이 요동친다. 그리고 그 감정들을 나만의 견해를 줄이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답답하게 느껴진다.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것, 의문을 가지는 것, 세상에 물음표를 마구마구 던지면서 틀을 깨는 것, 그러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는 과정이 괜찮음을,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걸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일종의 위로를 얻었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나는 내 신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끊임없이 깨지고 구르며 질문을 던지며 다듬어 나가고 싶을 뿐이다. 데미안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엄청난 사랑과 찬사를 받은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도 아니다.  명석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질문을 던지며 비판한다. 내면이 단단한 인물이다. 싱클레어는 그런 데미안에게 매료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전에는 완벽한 데미안이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으나 차라리 점점 변화하는 싱클레어가 되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가진 편견, 안 좋은 것들 조차 나를 구성하는 것이니까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고칠 점은 고치고 변화를 도모하려면 스스로 노력을 해야겠지만 싱클레어처럼 해방도 느꼈다가 답답함도 느끼는 게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플레이 리스트 : Quarter Life Crisis  - Taylor Bick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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