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을 읽고 나서...
가장 좋아하는 책에 대한 소감
유년기를 지탱하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 되려면 반드시 무너뜨려야만 하는 기둥들에 생긴 최초의 균열이니까.
: 오은영 박사님이 자식이 부모를 이겨보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정서적, 경제적 독립도 '분리'에서 일어난다.
그래, 그때의 나는 분명 표식을 가진 카인이었는데, 수치심보다 우월감을 느꼈다. 나는 내가 죄를 짓고 불행하기 때문에 아버지보다,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 나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는데 우월감의 크기보다는 수치심의 크기가 더 컸고, 그 우월함도 얼마가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들이 슬프거나 불행하거나 반항하고 싶을 때 특별하다고 잠시 느꼈다가 이내 현실을 자각하고선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것일까.
아버지는 나의 학교 친구가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 게 놀랍다고, 그러나 이런 사고는 당연히 배척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경고했다.
: 이 경고에 대한 판단은 싱클레어에게 달려있다. 사람은 누구나 급진적인 사고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사고하는 것이 자신의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셨을 싱클레어 아버지와 힐러리 클링턴의 아버지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나의 부모님 역시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딱히 마땅한 지침도 없는 사춘기적 충동에 대해서 모른 척하셨다. 나를 관리하고 내 길을 찾는 것은 나 스스로 해내야 할 일이다.
: 난 좀 달랐지만 갑자기 성인이 되어 고삐를 놓으시는 듯한, 통제된 말이 마구간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안했다. 지침은 과유불급이지만 기회와 경험은 아닌 것 같다. 특히 통제받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경우에 더 그렇다.
유년 시절이 공허해지며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사랑했던 모든 것이 곁을 떠나려고 하며, 돌연 고독과 죽음처럼 치명적인 추위에 빠지는 것이다.
: 그 이유 때문에 자기 계발과 성장은 중요한 것이고, 혼자 있을 때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불꽃같은 쾌락은 한순간이고, 성과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의 내면과 생각은 사랑의 대상보다는 돌봄의 대상으로 이성과 감성의 혼합물이다. 따라서 고독과 죽음으로부터 우리의 멘탈을 지키기 위해선 그 둘의 균형이 중요하다.
데미안은 좋은 학생이었지만 누구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지 않았다. 가끔 데미안이 선생님이 심한 도전이나 비아냥으로 여길만한 비평이나 항의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 직접 물어보지 않았기에 모르겠지만 아마 데미안은 그저 새로운 사유를 제시해서 모두의 시야를 확장시켰다고 할 것 같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이 다가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선생님의 관점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 한 때 문예창작학과생으로 있었을 때 진정한 학문에 있어서의 수용의 기준은 자신이 세우는 것이고 반드시 자신의 것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며 조언은 참고 정도로, 받아들일지 말지도 결정권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비판은 여전히 어렵다.
"그럼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 거야? 너는 사람이 자유롭지 않다면서, 또 사람의 의지를 집중시키면 목적한 바를 이룬다고 말했어. 그건 모순이잖아. 내가 내 의지를 지배할 수 없는데, 내 의지를 뜻하는 대로 집중시킬 수 있을까?" -> "질문을 하다니, 좋았어!!"
: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나도 매우 궁금하다. 사람이 의지를 집중시키는 순간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할 때,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는 걸 해낼 때라고 하는 것이 데미안의 의견이다. 사람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라면 원하는 걸 이루기 어렵고 간절하지 않다는 말일까. 그 와중에 자유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 간절함인 것 같다고 추측한다.
오직 데미안만이 내가 성서 이야기와 교리에 대해서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유희해 보고, 창의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가 제시한 해석을 나는 언제나 흔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였다.
: 나도 내 작품이나 타인의 작품에 대해 해석을 해주던 친구들이 있었다. 지식과 지혜의 융합 및 발전을 위해 사람들과의 만남은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그 나머지 것들을 모조리 악마적인 것으로 취급하니까 이쪽 세상의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지. 신은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찬양하면서, 생명을 탄생시키는 성을 아예 묵살하거나 악마적이라고 단죄하다니!!
: 전형적인 흑백논리를 반박하는 듯한 느낌이 들며, 세상을 단편적으로 바라보면 그만큼 내가 작은 사람이 됨을 알려 주는 것 같다. 참고로 나는 무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