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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Sep 05. 2024

내적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책과 함께 떠나는 실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데미안'이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헤르만 헤세'다. 처음 데미안을 읽었던 때는 고3 때였다. 처음 읽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말 그대로 내 고리타분한 관념들을 깨 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한 권을 하루 만에 다 읽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재밌는 사실은 오빠가 대학 때 읽었던 책들을 버리려고 놔뒀는데 '데미안'책이 그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나만 알고 싶었는데 베스트셀러인 것은 조금 섭섭하긴 했다. 하지만 2 회독 차에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떨림을 준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보통 한 번 다 읽고 나면 다시 그 책을 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21살의 나는 19살의 나와 다른 관점으로 이 책을 해석하고 있었다. 싱클레어가 겪는 방황이 내가 겪는 방황과 겹쳐 보였고, 그가 하는 고민들이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그저 신비로운 판타지 소설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철학적이고 삶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가이드북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금이 나에게는 고독하고 힘든 시간이지만 그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내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정말 즐기며 책에 대한 감상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는 것에도 설레하며,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경향도 있는 '과대자기'성향이 존재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의식 과잉도 조금 있지만 책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재정립해가며 불안을 겪는 데미안과 싱클레어를 통해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 작가 '헤르만 헤세'또한 그런 시기를 겪었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오늘 데미안의 끝부분을 심도 있게 읽기 위해 맥도날드에 가서 평소와 같게 치즈버거와 1000원짜리 드립 커피를 시켰다. 창가에 앉아 세로토닌을 활성화시키며 좋아하는 잔잔한 음악과 함께 책을 읽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에 쓸쓸함은 저 멀리 가시고 두려움도 사라졌다. 옷을 거의 다 빨고 널어놓은 상태라 반팔이 없어서 9월 기념으로 긴팔로 무장을 하고 갔기에 몇몇 사람들이 나를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원래라면 어떻게 해서든 반팔을 찾아내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마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로토미 요시히고'의 '인정 욕구 버리기'에서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버릇을 고치기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짝짝이 양말을 신고 과하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고 길 한복판에 있어보라고 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시선을 거두고 자기 갈 길 바쁜 걸 확인할 수 있다고. 문제는 내가 오늘 그 실험을 해보려고 다들 반팔을 입는 사이에서 긴팔에 긴 청바지를 입고 나갔는데 내가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남들의 시선이 의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아무 신경도 안 쓰이는 나, 기분이 다운될 때는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이는 나, 둘 다 전부 나이다. 


 컴퓨터 학원에서 선생님은 자신이 가끔 카톡으로 보낸 질문에 답장을 못 할 수도 있으니 그때는 인강을 참고하되, 가장 좋은 건 자신에게 물어보는 거라고 말하며 내가 먼저 손 들었을 때 다른 학생을 먼저 봐주게 되었을 때도 기다리려 달라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다. 물론 예민한 성질은 남아 있어서 조금은 신경 쓰였지만 그것은 어떻게 반응해야 선생님이 크게 신경 쓰지 않을까에 대한 것이었지 나 자신이 불쾌해하는 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엑셀로 인해 예민해져 있는 상태여서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났지만 이런 별 것 아닌 일에 대해 사람들이 내 표정이 어둡다고 할 때마다 당황해한다는 걸 알았기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포커페이스가 안 된다. 당황할 때의 표정도 꽤 어둡다. 이건 오빠도 마찬가지고 아빠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가면이 덜 형성된 걸 수도 있지만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단지 나는 지쳤을 때의 무표정이 상대에게 어둡게 비칠 뿐이다. 


 그때마다 상대에게 달려가서 내가 예민한 기질이어서 원래 표정이 좀 그렇다고 설명하고 싶진 않다. 정말 내게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고는 그렇게 해명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웃는 연습은 평상시에도 하고 있다. 컴퓨터 학원에서 다른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지내려 노력하고, 힘든 파트를 배울 때도 '힘들거나 빡칠 때 웃는 자가 일류'라고 습관적으로 미소 지으려 노력하고 있다. 뭐 그 모습은 거의 하회탈과 같지만 내가 내 표정과 감정을 인지했다는 것 자체에 가산점을 주고 싶다. 심리학이 좋은 이유는 이래서이다. 내 기질은 잘 변하지 않지만 성품은 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사회적 가면과 페르소나를 잘 다듬을 수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고, 그 방법들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면 들어맞는 것들도 있지만 들어맞건 말건 그런 쪽으로 해결책이 있다니 나는 왜 진작 심리학에 관심을 더 깊게 가지지 못했던가.

 

 심리학자가 되기 위해선 많은 난관들이 적혀 있었다. 인터넷에 쳐보기만 해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해보고 싶은 일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는 그러고 나서 후회하는 모험가다. 잠시 쉬어갈 때는 좀 과하게 쉴 때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가질려고 머리를 굴린다. 엄마가 관찰하고 말해준 바에 의하면 그렇긴 한데, 그래서 때로는 불효녀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해맨 시간들 조차 기쁘게 느껴진다. 마치 싱클레어가 된 느낌이다. 마지막에 데미안이 죽고 싱클레어 안에 데미안의 존재가 스스로 들어서게 되어 합일되는 경지에서 싱클레어는 더 이상 나처럼 타인에게서 데미안을 찾지 않는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요즘 중요하다고 하는 '메타인지'가 아닐까. 그 능력을 찾아가는 과정을 싱클레어는 겪은 것이고, 나 또한 스스로 터득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플레이 리스트 : The River - Aur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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