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을 대하는 자세
21살, 내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렸다. 몇 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복구가 힘든 구멍이. 그 공허한 구멍을 채우려 애를 쓰느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결국 깨닫게 되었다. 그 구멍은 내가 평생 채워나가야 하는 구멍이란 걸. 그건 아마 내가 죽기 직전까지 해야 할 일, 존재의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이유는 이 구멍이 내 존재와 근간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채워나가기로 했다. 꽉 차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니까. 끝까지 가보고 싶으니까. 그 끝을 보지 못하더라도 나는 단지 궁금하니까. 갈 이유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그렇게 한 발짝 내디딘 것이 작은 도전들이었고 그중 하나가 컴퓨터 학원에서의 국비지원 강습을 받는 것이었다. 거기서 나는 오빠와 동갑인 언니를 만났고, 그 언니와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같이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고, 그 언니를 통해 내가 가족들 말처럼 별난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도 이 세상에 꽤 있고, 단지 좀 적을 뿐이란 걸 알게 되었다.
성향이 독특하다는 말, 인생 2 회차냐는 말, 성숙하다는 말, 전부 들어본 말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작은 아이가 나는 전혀 성숙하지 않고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피터팬으로 지내고 싶다고 외치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내 마음에 큰 구멍을 냈고, 결국 동굴을 만들고 말았다. 스스로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그 작은 아이는 드디어 있는 그대로 수용받았고, 결국 구멍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메꾸기 시작했다. 나는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통해 공허함을 달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면 대학교 1학년 때도 내 주변엔 그런 친구들이 꽤 있었다. 어둠 속에 갇혔을 땐 그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구멍이 메꿔지면서 나는 나 자신과 더 친해졌고 그만큼 타인을 대하는 것이 편해졌다. 자기 확신도 생기고 세상에 대한 용기도 자라났다. 내게 성숙하다고 멋지다고 해주는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친구였다.
가족은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지만, 그 사랑은 너무 정직했기에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메세지가 강했다. 남한테도 그런 메세지를 받지 않은 게 아니다. 다만, 객관적으로 나의 좋은 점을 봐주는 고마운 사람이 생겼을 뿐이다. 나도 그 언니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다. 대화할 때 꽤 주변을 많이 둘러보는데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걸 눈치챘는지 언니는 자신이 공간을 탐색하는 것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다. 어디를 가기만 하면 나는 본능적으로 두리번거리며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혼자 감탄하고 혼자 뿌듯해지기도 한다. 이게 사색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니와 내가 통하는 부분이었다. 남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걸 우리는 유심히 보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은 꽤 빨리 돌아가기에 천천히 구경할 여유는 없다. 적어도 나는 아직까지는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하지만 언니를 보면 내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언니처럼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이성을 만나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며 세상에 대한 면역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지금도 여러 도전을 통해 알아가고 있으니까 적어도 예전처럼 죽도록 불안하진 않다. 조급함을 덜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예측이 가는 시간이었다. 타인을 통해 솔직하고 아름다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나에게 그 언니는 참으로 고마운 인연이다. 진심으로 뭐든 응원하고 축하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잘 통하고 서로의 결함과 관심사, 특성, 생각까지 비슷하니 말이다. 나도 그 언니도 MBTI를 맹신하진 않는다. 하지만 만날수록 왠지 유사과학도 과학으로 쳐주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답답함도 없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행복함이 오랜만에 다시 피어올랐다. 오래 유지하고 싶은 친분이다. 비록 우리 오빠뻘 언니지만 마음이 잘 통하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