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꺼내야 할지 모호할지라도...
ITQ시험을 치러 고사장에 갔는데 학원 사람들을 만났다.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학원 사람들은 나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준 고마운 분들이었다. 친해졌던 28살 언니뿐만이 아니라 30대 초반 언니, 그리고 화가이신 분, 옆자리에 앉던 말 수 적은 남성분까지 우리는 전부 같은 강사님 아래에서 스파르타 교육을 받으며 준비를 해나갔다. 시험 당일은 문제를 같이 예상했고, 서로의 긴장을 조절해 주었다. 이런 표현이 좀 웃기게 들릴진 몰라도 이런 대화가 오갔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긴장 안 되세요?"
나 : "저는 긴장되기보다는 더워서 빨리 들어가고 싶어요, 그리고 긴장하면 제대로 못 할까 봐 그냥 편한 마음으로 치려고요. 강사님 말만 믿고 피벗 테이블 말고 부분합이랑 정렬만 나온다고 믿을 생각이에요."
"제가 시험을 많이 쳐본 결과 긴장을 너무 안 해도 나중에 시험칠 때 뒤통수를 맞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긴장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긴장을 아예 풀고 갔다가 망했던 전적들을 떠올렸다.
"그렇네요, 조금은 긴장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물론 그 정도를 조절하기는 힘들다. 긴장을 너무 하면 키보드 위에서 손을 떨 것이고, 긴장을 너무 안 하면 그 언니 말대로 문제를 보고 당황하여 망칠 것이다. 미리 걱정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되기에 그냥 긴장감만 유지하기로 했다. 그렇게 서로 문제를 예상하며 서로 복습을 시켜주고 있는 동안, 화가이신 분이 오셔서 분위기를 풀어놓으셨다. 항상 밝던 그분은 연습이 잘 안 될 때도, 모르는 게 생겨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밝게 웃었다. 시험에서의 태도와 자세도 긴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분은 우리에게 포도를 나눠주시면서 시험 치면서 힘들었던 점을 토로하셨다. 물론 밝은 미소는 유지하고 계셨다. 덕분에 나는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긴장을 서로 맞춰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날 ITQ 시험을 치면서 내가 연습 때는 못했던 부분을 해냈다. 시험 당일이어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학원사람들과 분위기를 풀면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나는 괜찮다고 타이머 보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고 마음을 먹으며 체감상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을 때는 불안을 역이용해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마우스의 섬세한 컨트롤을 위해 힘을 조절하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작은 것 하나하나 디테일을 따지며 답안을 작성했다.
쉬는 시간마다 30대 언니는 안일해지지 않게 계속 어려울만한 부분을 복기시켜주었고, 화가 분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보이시며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주셨다. 나머지 한 분은 시험을 다 치고 나와서 나와 어려웠던 부분과 쉬웠던 부분에 대해 얘기를 했다. 어제는 10월에 시험을 치기로 예정되어 있던 친한 언니가 잘 치라고 톡도 보내줬었다. 시험을 칠 때, 나는 역대 답안을 작성한 것 중 가장 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좋은 감정이었다. 이렇게 시험 전 문제지를 보고 복기하는 것도 좋지만 아는 사람들끼리 감정을 서로 공유하며 문제도 서로 복기시켜 주는 것을 통해, 즉, 대화를 하며 시험 전 멘탈 준비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스터디를 하는 이유를 대략 알 것 같다. 물론 나는 저번주에 28살 언니와 함께 학원에서 스터디를 했다. 결과적으로 3시간 연습하고 나머지 시간은 서로를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수다를 떨고 밥을 같이 먹었습니다.)
모든 시험이 끝나자, 나는 오랜만에 시험에 대해 후련한 감정을 느꼈다. 실수한 부분은 전혀 없다는 느낌이 들면서 자신감이 차올랐다. 무엇보다 끝나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수고했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 학원 사람들과는 좋게 헤어지면서 월요일에 다시 학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직 컴활 수업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강사님도 분위기를 잘 풀어가시면서 우리에게 지도를 잘해주셨다.
생각해 보면, 내가 스스로 한 선택인 컴퓨터 학원 등록을 하지 않았으면 이 분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배움에 대한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었을까? 더 좋은 점은 내가 ITQ를 배우고 난 뒤, 컴퓨터를 실제로 더 잘 다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식당에 있는 메뉴판이나 과자 봉지에 붙어있는 로고만 봐도 어떤 도형에 어떤 효과를 넣어서 만들었는지 보인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남아있는 국비지원금으로 같은 학원에서 포토샵 등 다른 것들도 열심히 배워볼 생각이다. 세상에 배워서 쓸모없는 것은 거의 없는 듯하다. 물론 미리 배워서 좋을 게 없는 게 세상에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구분할 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배움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무엇보다 꼭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배우는 걸 즐기면 결과가 어떻든 효율적으로 얻는 게 많아진다는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대학도 똑같다. 이미 원서를 접수했으니 내 손을 떠났다. 이제 합격발표는 나중의 일이니 대학 들어가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도 해보고(책 출판하는 일) 내 나름대로 준비도 하고 싶다.(공부를 좀 더 해서 수업 들을 때 잘 따라가고 싶다.) 물론 내 욕심일지 모르지만 욕심도 내 감정 중 하나다.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나도 사람인데 욕심이 없을 리가 없고 부정적인 감정과 불안, 걱정이 없을 리가 없다. 그걸 인정하고 나면 방법을 찾는 내 모습이 보인다. 감정이라는 베일에 가려있던 내 자아를 찾아내서 문제를 해결하고 감정은 보물처럼 손에 쥔 후, 때로는 자랑도 하고, 전시도 하면서 함께 나아가면 된다. 인사이드 아웃 2에 감정들이 구슬을 강에 띄우고 뉴런과 연결시키는 것처럼 말이다.(그게 뉴런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