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으로 채워나가는 자아
무기력해지면서 인터넷만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내 나이 때에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자아를 찾은 사람들의 책들에 눈길이 갔다. 충동적으로 나도 전부 내려놓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나도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올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그럴 여건도 없었고, 이 상태로는 그렇게 따라 할 수도 없었다. 답답했고 뭐라도 하고 싶었고 내 상태를 부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멀리 이국으로 떠나고 싶었고,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당장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몇 개월동안 은둔을 선택했다. 그 결과 심적으로 고통스러웠고, 당장 집 밖 100M 거리도 그때의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서서히 집 밖에 나가고 싶어 졌을 때, 나는 우리 동네에 있는 거의 모든 카페를 돌아다니며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마시며 글을 쓰기도 하고 때론 공부도 하고, 카페에 있는 디저트로 사치를 부려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욕구를 다시 한번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동네라도 잘 알기로 했고, 그 결과 '행복도시 김해 ; 컬러 스탬프 투어'를 동생과 함께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 근처의 녹색 코스에 다 가서 스탬프를 받아오기 바빴지만 하면 할수록 내가 가는 장소들이 궁금해져 들어가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억압됐던 긍정적인 감정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다. '호기심, 설렘, 기분 좋은 흥분 등'. 나는 내 동네에 그렇게 많은 가 볼 곳들이 있는 줄 몰랐다.
카페 거리가 새로 리모델링이 되고, 봉리단길이 생기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모습과 다양한 체험과 축제가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슬로 시티이자 행복도시인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이 작은 동네를 벗어나 더 큰 데로 가고 싶다고만 생각해 왔던 나의 고향이었다. 나가기 시작하니까 이를 보고 나의 변화에 좋아하시던 부모님은 더 먼 곳들도 차로 데려다주셨다. 그렇게 해서 다른 코스들도 다니며 스탬프를 찍으며 구경했고, 내 고향 토박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닐 정도로 내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외국으로 가고 싶기도 하고 꿈을 펼치러 핀란드로 떠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 자아를 되찾기 위해서 당장 먼 곳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 가까운 곳이라도 괜찮았다. 나는 그렇게 내 도시 안에 있는 명소들과 카페들에서 수많은 사진을 찍었고, 내가 쓰고 있는 책에 자료로 사용했다. 행복한 순간들이었고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고향에서 이젠 떠나고 싶지 않은 고향이 되었다. 그저 작고 답답하다고만 느낀 학원과 사교육의 성지라고만 느꼈는데 내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우리 도시의 새로운 마스코트도 마음에 찰떡같이 들어서 굿즈를 모으고 싶어졌다. 나는 지금은 '김해'를 더 잘 알게 된 것만 해도 행복하다.
* 김해시민은 기념품 증정이 안 됩니다. 유의하세요, 관광안내소까지 갔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저도 이때 알고 싶지 않았어요ㅠㅠ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 이거 꼭 해보시길 추천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