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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Nov 22. 2024

꽁꽁 굳어버린 마음을 말랑하게...

진심을 내보이면 무방비하지 않을까...

 성격 검사지를 건네받은 그날, 나는 상담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그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알고 마음을 열어요? 저는 의심부터 하게 되는데요. 저랑 친하게 지내다가도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들이 많았어어요. 그리고 과거에도..."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그건 직접 겪어보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과거의 너는 지금의 네가 아니야." 이런저런 일 때문에 인간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그건 나를 포함해서다. 나는 나 조차도 믿지 않고 있었다. 상처받을 게 무서워서, 결국에는 나를 떠나갈 거라는 생각 때문에 친구를 사귄다는 행위 자체가 쓸모없게 느껴졌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점점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내 마음은 꽁꽁 굳어갔다. 부모님은 내가 자꾸 스스로를 가둔다고 했다. 나는 경계심이 강한 고양이 마냥 발톱을 세우고 아무것도 문제가 없어도 할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워낙 만만치 않은 세상이라서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건 맞지만 그렇게 지내다 보니 조금은 삭막한 인생을 사는 것만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렇게 살 거면 외로움을 안 타면 되는데 외로움은 지독하게도 탄다. 

   나는 손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아니, 인간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이기적이기에 나 또한 친밀한 관계를 저버리고 잠수를 탄 적이 많다. 고쳐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상처받기 싫어서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하거나 마음을 여는 게 쉽지 않다. 과거에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름 잘 포장했다고 생각한 고등학생이었었다. 인관관계는 그때까지 나한테는 그저 커다란 숙제일 뿐이었다. 내 진심을 보이면 타인이 나를 만만하게 볼까 봐, 나를 이용해먹을까 봐. 특히 눈치가 그리 발달하지 못한 나에게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이 맞기에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고, 처세술을 다지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떠나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면 무서울 게 없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혼자 있는 데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길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갈색인 산을 바라보며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저 산은 단풍이 너무 심하게 들었는데요." 

아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저거 다 시든 거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많이 상한 장송들이 이루고 있는 산이었다. 보기만 해서는 이처럼 진실을 볼 수 없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인지, 죽어가는 장송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애초에 방법은 부딪쳐 보는 것, 그 하나다. 타인의 의견을 물어보면 그건 험담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므로 참고자료로만 써야 하는데 그게 내 의견이 되어 버리면 공범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라고 하는데, 누구보다 그러고 싶은 게 나다.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써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 명백한 사실 때문에 모두 머리를 싸매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피하기만 하면 결코 알 수가 없다. 타인에 대한 데이터를 쌓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나는 내가 직접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했다. 내 절친은 입이 조금 험해서 말이 거칠지만 속은 여린, 나랑 잘 맞는 친구다. 주위에서 뭐라 해도 나는 그 친구가 그 친구이기 때문에 좋다. 그러니 난 내 친구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말을 듣고 누군가로부터 멀어지는 건 뭐, 개개인의 선택이지만 나는 딱히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자세라고는 보지 않는다. 타인이 내 친구와 지내본 것도 아니고, 그 관계는 나와 내 친구의 것이다. 멀리 있어도, 바빠도, 미워도, 나는 내 친구가 좋다. 그러면 그걸로 된 거다. 그 친구가 이전의 내 친구들과 같이 필요할 때만 찾아와서 다 쏟아내고 나중에는 날 버릴 거란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그 친구는 내 이전의 친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타인도 마찬가지다. 보기만 해서는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리고 일단 부딪혀보고 대화를 나눠보는 게 그 사람을 파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머릿속에서 백날 굴려봤자 사람 속은 절대 모른다고 알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윤하'는 내가 왜 좋아하는가. 만나본 적도 없고, 고작 한 거라곤 그녀의 앨범을 사고, 그녀의 노래를 듣는 것뿐인데.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좋으니까. 노래가 좋고, 가사가 좋고, 가수의 표정과 표현력이 좋으니, 서로 알지는 못해도 팬으로서 행복한 것이다.

  인관관계도 이렇게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것이길 바라지만 그걸 기대하기에 나는 세상에 대한 의심이 아주 많다. 그래서 방어기제를 펼치기로 했었고, 그 결과 외로워졌다. 그래서 다칠지언정 용기를 내서 과거의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고 사과도 하고 화해도 하고, 인스타도 하는 등 여러 가지를 하기 시작했다. 인간관계도 결국 노력이다. 내가 시간을 들여야 하고, 자주 만나러 가야 한다. 공짜로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 이후 쟁여놓은 다이어트 보조제를 다 털어먹고 빈 박스를 재활용 박스에 던져버렸다. 돈은 일단 아까우니까 말이다. 사실 다이어트 효소라고 하는 게 맞는데, 과대광고에 또 속고, 후기에 또 속았다. 인생은 눈치 없는 사람이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 알고 있는데 거기다 붙는 동생의 한 마디. "그럴 줄 알았다, 또 돈 쓰레기통에 처박을 줄 알았다니까."

    정말 화가 나지만 애써 억누르며 나는 속으로 좋은 인생경험했다 치고 이제는 광고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사람으로서 또다시 모든 걸 의심하고 신중하게 살펴보기로 했다.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고 버리고, 이런 것들이 너무 싫다. 하지만 나 또한 그런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면 내 딴에는 그런 적이 없는데 모르고 타인에게 상처 준 부분도 있었기에 그냥 머릿속에서 날려버리기로 했다. 타인의 간섭도 타인의 자유니까 인격모독 빼고는 다 놔두기로 했다. 적어도 이 시기에는 썩은 장송으로 가득한 산이 아닌 단풍이 울긋불긋 든 산을 바라보고 싶다. 현실을 마주하기 싫다는 게 아니다. 최대한 좋은 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고 친구들의 힘듦을 보고, 오빠와 부모님의 힘듦을 보고, 직접 힘듦을 겪음으로써, 사람에 대해 굳어버린 마음을 녹이고 싶다. 조심하면서도 다가가 보고 싶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시도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아도 내게는 탄력 회복성이 있으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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