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 에세이
다들 내가 별나다고 했다. 작은 일들에, 다른 애들은 그냥 쉽게 넘길 일들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알고 보면 표현은 다 안하고 있을 뿐, 다들 힘들게 살고 있다고. 모르는 사실이 아니다. 내가 우울할 때 유난히 주변사람들은 행복해보이고 교실은 왁자지껄 한 것은 내가 너무 우울한 티를 내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내가 행복하지 않을때 억지로 웃어보이지 못한다. 이게 내 최대 단점이다. 울고 싶을 때 눈물을 참는 것도 현재 상황과 상관없는 표정을 짓는 것도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우울한 티를 내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냥 그때 내 감정이 그랬을뿐. 항상 밝은 친구가 내게 해준 말이 있다. "기분이 안 좋더라도 웃어야 해." 처음엔 그 말이 단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배려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웃는 게 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웃음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아파서 힘들어하는 이에게 그걸 요구하는 것만큼 아픈 건 없으니까. 감정적 모순을 불러 일으키는 행위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분을 숨기려고 오히려 밝게 지내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노력하는 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억지로 노력하려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마음은 곧 외로움으로 바뀐다. 흔히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고 대화도 많이 하는데 왜 항상 외로울까 싶을때가 있다. 그건
그 많은 친구들 중 자기자신이 빠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빠졌다. 웃고 행복해하는 군중들 속, 나는 몸만 있지 영혼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부정할 필요가 없다.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내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짜 웃음을 지으며 살았다. 웃는 연습도 계속했고 끊임없이 나는 행복하다고 되뇌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감정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내가 슬프거나 힘들때 그렇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고, 결론은 지금은 슬퍼하고 있을 시간조차 없으니 내 감정을 무시하자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마음은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 찝찝한 감정을 안고서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다하면 또 할 것을 찾았다.
엄마는 우울할 시간이 없게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하셨다.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우울증에 걸려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뭔가 몰두하려고 더 노력하다가 오히려 힘이 빠져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는 것을. 자신이 그런 상태임을 받아들이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계속 일어나라고 뭐라도 하라고 하며 한심하다고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아주 힘들 것이다. 하지만 꼭 기억했으면 좋겠는 부분은 이걸 이겨내려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는 것만 해도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정말 그런가하고 받아들이면 안된다. 우울증이 결국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사람들 말이 아닌 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다. 걸렸을때 다른 사람이 이거 해보고, 저거 해봐라고 했을때,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은 그런 말들을 밀어낼려고 한다. 결국 내 안의 자아가, 내 자신이 하겠다고 조금씩 힘을 내야 우울증은 서서히 자리를 비켜준다. 일시정지 버튼을 시작버튼이 되도록 누르는 건 남이 아닌 나 밖에 못하는 일이다. 우울증이 계속해서 일시정지를 누른다면, 그걸 있는대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시작 버튼을 우리 스스로가 누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