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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Dec 08. 2024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읽고 나서...

  이치조 미사키의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라는 책을 읽었다. 처음으로 읽은 일본소설이었는데 몰입감도 높고 슬퍼서 마음에 들었다. 히노, 도루, 와타야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들과 도루의 아버지, 누나와 같은 조연들로 전개되는 이야기. 사랑이야기이지만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란 병을 매개체로 사랑을 더욱 가치 있게 나타낸 소설로 생각된다. 히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일기장과 노트에 쓰여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지워달라고 와타야에게 부탁한 도루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었을 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물론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이런 장치가 필요할 듯 하지만, 내게 있어 관건은 그래서 도루는 자신의 바람대로 히노의 사랑과 내일을 지켜주었냐는 것이다. 와타야가 결국에는 도루와 관련된 그림과 글을 주지만, 감정만 가지고 있는 히노는 그를 기억해 내기로 결심하고 결국 힘든 길을 택한다. 내일의 히노도 앞으로의 히노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그 약속은 갑작스러운 일로 중단되고 말았다. 도루는 히노에게 큰 영향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 했지만 여전히 감정이 남아있는 히노가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작가의 표현력이다. 담백하고 언뜻 보기에는 기교를 부린 것 같지도 않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느꼈던 몰입감과 서사, 묘사력은 대단했다. 특히 대사에서 주인공들의 절제된 마음과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마음이 잘 느껴져서 애가 탔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줄 수 있구나. 그리고 도루도 자신의 상태를 알고 혼자서는 울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자신도 히노와 자신 사이의 사랑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을 것인데 끝까지 그녀만 생각하는 것을 보고 여간 대단한 순애보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청결감과 위생감을 정확히 비교하면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은 그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며 누나와의 관계성을 잘 나타내는 장치가 되어 주었다. 꾸밀 수 있는 청결감과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위생감은 엄연히 다른, 도루에게는 무척 중요한 구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파이더맨 - 노웨이 홈'이 떠올랐다. 피터 또한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들을 지킨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방식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나중에는 그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슬픈 생각을 가지고서 말이다. 선행선 기억상실증은 대뇌의 해마가 손상되어 새로 겪는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질병이라고 한다. 히노가 그러한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복선을 쌓아가며 서서히 독자에게 알려주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히노가 왜 복선에 해당하는 그러한 행동들을 했는지 서서히 이해가 가면서 안타깝고 슬픈 감정도 점점 증폭되었다. 

    항상 일기의 다음 페이지를 담당하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히노는 이제 과거에 치중하며 당분간 살아가야 하는 건가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마음속에 두고 충분한 애도를 거치면서 좋은 쪽으로 승화시키는 게 히노와 이 이야기가 흘러갈 듯한 전개이다. '상실뿐인 세상에서 도루는 분명히 거기 있었다. 마오리 안에서 도루는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마오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 애는 그런 표정인가. 마오리가 그린 도루는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다정한 얼굴로 마오리를 지켜보던 그날 그대로 지금도 거기서 웃고 있었다.' 이 부분이 마지막 구절이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생각한 구절이다. 여전히 히노의 마음에 남아있는 도루는 다정하고 그녀의 영원한 온기가 되기에 있어서 충분한 것 같다. 어쩌면 히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결국에는 그 사랑 자체를 다시 찾음으로써 가장 큰 것을 얻은 게 아닐까. 영화도 보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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