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뒤에 맛본 달달한 온기
대학 충원 합격 발표가 내일 나온다. 긴장한 건 아니지만 살짝 우울해져서 오늘도 나도 모르게 카페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마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우울증 약이 말을 안 듣는 건지도 모른다. 괜스레 친구가 보고 싶어 졌고, 아직 소속도 없는 나 자신과 새로운 대학에서의 미래가 두려워졌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 주책맞게 화장실로 향해 조용히 울었다. 예민함이 극치에 달할 때였다. 진정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갔는데, 내가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 옆에 자그마한 귀여운 머그컵에 카푸치노가 들어있었다. 난 분명 시키지 않았다. 이벤트인지는 몰라도 내게는 그 어떤 말보다 그 작은 머그컵이 위로가 되는 듯했다. 한동안 머그컵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는데 이런 호의를 받아본 건 처음이어서 그냥 매장 이벤트가 아니라 누군가 베푼 호의라고 확정 짓기로 했다. 이벤트라고 해도 타이밍이 너무 좋다. 위로로 다가온다. 오늘은 약 기운으로 인해 졸고 싶지 않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 잔이나 마셨다. 인스타그램 속 친구들은 저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울적해지는 참이었다.
반복되지만 어느 정도 안정되어 행복까지 느끼는 삶이 되었는데 집안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다. 30대가 되어가는 오빠는 번아웃이 왔고, 사춘기 여동생에, 안 아픈 곳이 없어서 심히 걱정스러운 부모님까지. 이상한 부담감도 생겼고, 돈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다. 푼돈이라도 계속 모으고 싶어졌다. 조급해지기 시작하니 불안과 우울이 따라온 듯했다. 마음을 다스리는데 의외로 도움이 된 건 '필사'였다. 하나는 '글씨를 수놓다'에서 낸 필사 노트, 하나는 '꽁달'님이 내신 필사 에세이집이다. 둘 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쓰다 보면 마음속의 답답한 심정도 많은 생각도 잠시나마 사라진다. 인증을 받는 재미도 있다. 이런 자그마한 행복들로 작게나마 마음에 연고를 발라본다. 조급함과 불안감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들었다. 평생 함께할 테지만 그 뒤에 행복과 평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너무 조급할 건 없다. 1월로 달려가고 있는 시간 속에 요가의 끝도 다다르고 있다. 처음에는 죽기보다 운동이 싫었지만, 이제는 요가 선생님들이 그리울 것 같다. 원장님은 어떻게 항상 그렇게 웃고 계신지 궁금했다. 하지만 곧 그 미소에 전염이 된 듯 기분이 좋아졌다. 요가를 하면서 우울이 사라지고 기분이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교수님과는 아직도 안부를 묻고 지낸다. 다른 학교에 간다고 해도 나는 애초에 처음부터 교수님을 교수님으로만 대한 것이 아니라 '좋은 어른'으로 대했기 때문에 연락을 이어가고 싶다. 그동안 나는 안 될 거라는 말만 듣고 살아왔었는데 응원을 해주고 내 글을 좋게 봐주신 그분은 사물을 바라보는 내 감각에 만점을 주셨다. 그 감각을 잊지 말라고 하셔서 항상 유지하려 애쓴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정말 고맙다고, 자퇴했을 때 맨 처음으로 연락해 줘서 고마웠다고, 설명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서 죄송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나를 응원해 준다. 나는 미안함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좋은 친구들만 뒀는지 모르겠다. 계속 연락을 이어가자고 하고, 나와 함께한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고 해주었다. 그래서 더 힘들다.
좋은 감정들이 고독으로 바뀌는 듯한 현상을 겪고 있다. 새로운 시작은 설레지만 과거를 뒤로 하고 나아가야 하기에 아주 조금 준비가 덜 됐다. 2월 중순에 내 친구와 내 생일의 중간 날짜에 그녀의 자취방에서 외박을 하기로 하고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다. 내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기에, 서로 이해하고, 대 2병을 둘 다 지겹게 겪어 서로를 도왔기에. 나는 그 친구의 때론 거친 말투와 화와 고민에 대해 예민하지 않다. 뭐든 잘 되길 바라고 해주고 싶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소설로 녹여냈던 신간 산문책을 선물로 주었었고, 친구는 감동을 받아서 울었다고 한다. 성공이다, 일단 한 명을 울렸다. 이어가고 싶은 우정이다, 그렇다면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내가 직접 찾아갈 생각이다. 다시 만날 때는 지친 모습보다 더 밝아진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