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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을 읽고 나서...

by 몽도리

이 책을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건 단지 영미문학개론 수업에서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Tale heart)'가 본문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수업 때 우연히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내가 이 작품에 느낀 감정은 그저 혼란스러움 뿐이었다. 호러장르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나는 더군다나 1800년대에 쓰인 책을 받아들일 문학적 소양조차 없었다. 다만 그때 당시 선생님께서 이 작품을 모티브로 짧은 영상을 제작하라는 숙제를 내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만드는데 소름 끼쳐서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 때 또다시 만나게 된 이 '에드거 앨런 포'아저씨는 이제 내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이 정도면 영미문학에서 정말 유명한 인물인 것이 입증된 것이겠지. 그래서 단편선을 읽었다. 그리고 이 분의 글쓰기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강의에서 이 분의 지분은 2회 차로 끝났다. 하지만 단편선에서 여러 가지 작품의 공통점을 통해 저자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니 '고자질하는 심장'도 이해가 가는 듯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다.) 우선 단편선에서 '검은 고양이', '고자질하는 심장', '모르그 거리의 살인사건'이 세 가지 단편을 가지고 감상문을 써보려 한다.

우선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보자면 1800년대 사람으로 작가이며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써 단편도 공포와 환상을 주제로 여럿 쓴 호러장르 대가이다. 그 시대에 호러와 추리 분야를 주 측으로 정한 게 신기하다. 내가 아는 그 당시의 소설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서 그런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의 문학성은 내가 들은 수업에 따르면 먼저 프랑스에서 인정받아 미국에서도 재조명되었다고 한다. 그는 소설도 운율을 실어 시처럼 쓰며, 자기만의 인간 자체에 대한 심리분석이 소설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대체로 소설에 정신질환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시사하고자 하는 바가 숨어있으며 대부분 사회인식에 대한 비판이다.

검은 고양이라는 단편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아끼는 고양이를 죽이며 죄책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만 결국 고양이를 벽에 파묻어 버린다. 그리고 비슷한 고양이를 보자 그것이 화자를 자극하여 그는 그 고양이를 죽이려 하다 자신을 말리는 부인을 죽여버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를 묻은 같은 벽에 파묻고 만다. 자신 안에 있는 선과 악에 대한 정의는 사회가 흔히 만든 이미지와는 다르다. 스스로 만든 기준과 형상이다. 고자질하는 심장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는 노인에 대한 특정한 살인동기도 없이 그저 그의 눈이 자신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죽여버리고 이미 죽어서 멈춘 노인의 심장이 뛴다고 착각하며 이명을 느끼며, 스스로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입증하려 하고 과도하게 활성화된 감각기관을 통해 보통의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들에 극도의 예민함을 표한다.

살인동기도 없고 목적도 없는데 우리는 결국 단편을 다 읽고 거꾸로 추론해서 원인인 '눈'에 대해 분석하게 된다. 이것이 보편적인 우리의 '인과관계'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사회가 만들어낸 통념 자체를 억압이라고 비판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그 당시 감각기관을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즉 이성에 대한 지각을 시사하는 것은 상당히 현대적이고 새로운 관점이라고 하셨다. 흠... 그 당시 사람들은 뇌가 아니고 심장을 중추 감각기관으로 인식했고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면서 상징적 메세지를 넣는 게 대단하다고 하셨다. 심장은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기관이다. 보통 사람들은 심장이 피를 온몸에 전달하여 우리가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걸 안다. 하지만 뇌가 그 명령을 내린다는 것을 그 시대 사람들은 알 턱이 없었다.

이 작품을 독자는 읽으면 읽을수록 화자가 벗어나려고 하고 피하려고 하는 사회적 통념을 지켜야 한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저자가 바란 효과가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을 잘 읽는 방법은 그 작품이 우리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르그 거리의 살인사건에서도 화자는 뒤팽과의 대화를 통해 독자들은 가지지 못할 통찰력을 제시하며 모순과 상상력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의 작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끔찍하지만 이를 통해 깊게 생각해 볼 주제가 많고 심오하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자신의 생각을 넣는 글재주가 부러울 정도였다. 여전히 읽으면 처음에는 조금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문학에서의 아이러니, 공포, 재미, 가독성, 고정관념 타파, 자신의 메시지 전달, 복선 암시 등 여러 장치를 잘 넣은 것을 통해 뛰어난 작가라는 것에 납득이 갔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될 수 없겠지만 수업에 나오게 되면 적어도 생소하지는 않고 조금 반가울 듯하다. 인간의 고뇌와 보통 사람들은 하지 않는 고민들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나누고자 한 그는 과연 자신의 세계를 타인과 얼마만큼 나누고 싶어 한 인물이었을까. 마치 단골은 이해를 해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바로 이해하기 힘든 느낌이다. 타인과 문학을 통해 닿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럼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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